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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t Jan 07. 2024

기능에서 상징으로

제랄드 젠타  &  레트로 솔로 이야기


Gerald Genta


1931년~1967년, 무명시설     


제랄드 젠타(Gerald Genta)는 1931년 5월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인이었고 어머니는 스위스인이었습니다.     


그는 보석세공 및 금세공인으로서의 교육을 받았고, 20세가 되던 1951년에 당시 크로노그래프로 유명했던 시계회사인 유니버셜 제네브(Universal Genève)에 취직해서 3년 정도 일했습니다.   

  

유니버셜 제네브의 폴라우터

그 회사에서의 마지막 해인 1954년, 스칸디나비안 항공이 개척한 북극권 항로를 기념하여 의뢰한 폴라우터 (PolErouter, 나중에 PolArouters로 이름이 바뀜) 디자인을 맡게 됩니다. 이 시계는 젠타의 공식적인 첫 번째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젠타는 나침반에서 모티브를 얻어 화살표 모양의 핸즈를 선보였는데, 이는 당시의 여러 시계들의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오메가나 글라이신 등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가 디자인한 시계는 크게 호평을 받았지만 젠타는 조직생활이나 시간에 얽매여 사는 것이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이후 15년간 프리랜서나 계약직 시계디자이너로 살아갑니다.     

서로 비슷비슷했던 당시 시계들

당시 시계업계의 주인공은 복잡한 기술이 집약된 무브먼트였습니다. 다이얼이나 케이스는 무브먼트가 걸치는 옷 정도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조사들은 출처도 모르는 디자인을 여기저기서 가져다 쓰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좀 잘 팔린다 싶은 시계들은 서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장에서 시계 디자이너라는 역할과 전문성은 존중받지 못했고, 젠타는 떠돌이 보부상 같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디자인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집에서 스케치를 하다가 어느 정도 모이면 시계업체가 몰려있던 브라쉬스, 라쇼드퐁, 비옌같은 곳에 차를 타고 가서 Piaget , Corum, Audemars, Omega, Vacheron 등 모든 시계회사를 찾아다니며 장당 CHF 10~20에 디자인을 팔았습니다. 그렇게 CHF1,000 정도 벌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게 그의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1968년~1980년대, 전성기     


1968년(37세), 유니버셜제네브(Universal Genève)를 위해 디자인한 Golden shadow가 국제 다이아몬드상을 수상합니다.                                                                   

Golden shadow & Golden Ellipse

이를 계기로 파텍필립(Patek Philippe)이 Golden Ellipse의 디자인을 의뢰하면서 1969년(38세)에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인사무소인 Gerald Genta SA를 설립하게 됩니다.     


1972년(41세)에는 오데마피게(Audemars Piguet)으로부터 의뢰받은 Royal Oak가 크게 주목을 받으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Royal Oak


그리고 1976년(45세)에 업계 최고의 브랜드인 파텍필립(Patek Philippe)이 Nautilus를 발표하면서 이를 디자인한 젠타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Nautilus



이에 힘입어 그가 운영하는 Gerald Genta SA는 2개의 공장에 직원이 250여명이나 되는 규모로 성장합니다.


Gerald Genta SA


Gerald Genta SA는 로얄오크나 노틸러스처럼 시계를 디자인해주는 prototyping, 기획부터 제작까지 시계를 대신 만들어주는 private label, 자체브랜드의 시계를 생산하는 3개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젠타는 Audemars Piguet와 Patek Philippe 외에도 Hamilton, Bulova, Timex, Seiko, Van Cleef & Arpels, Chaumet, Rolex, Omega, Piaget, Corum, Vacheron Constantin 등 수많은 브랜드들과 협업하면서 3,400여가지의 시계를 디자인 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Gerald Genta SA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브랜드인 불가리와 협업한 Bvlgari Bvlgari도 있었습니다.


불가리는 1920년대부터 시계를 제작했지만 주로 여성용 시계를 주얼리의 일부 형태로 제작해왔습니다.

     

하지만 1977년에 젠타가 디자인한 Bvlgari Bvlgari가 성공하자 처음으로 남성용 시계를 대량생산하게 되었고, 1980년에 시계사업부를, 1982년엔 Bvlgari Time SA를 만들어 본격적인 워치메이킹에 뛰어듭니다.                                                             

Bvlgari Bvlgari


그리고 베젤에 브랜드명을 반복해서 새겨넣은 파격적인 디자인은 주얼리에까지 영향을 줘서 지금까지 시그니쳐로 사용되고 됐으니 젠타가 불가리에 미친 영향을 꽤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59세)부터는 prototyping과 private label을 중단하고 자체 브랜드 생산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합니다.


Gerald Genta SA의 시계는 그 종류가 너무 많아 컬렉션에 일정한 패턴이 없어 보이지만, 시간순으로 나열하고 비슷한 것끼리 묶다 보면 크게 3번의 스타일 구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85~1995, 젠타가 하고싶었던 시계,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이 시기의 시계들을 보면 로얄오크나 노틸러스를 디자인한 사람이 디자인한게 맞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화려한 소재와 모양을 자랑합니다.

                                                  

Gerald Genta SA에서 디자인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젠타는 기계식 시계가 쿼츠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컴플리케이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때문에 평범하게 시간만 알려주는 시계는 없고 대부분이 트루비옹, 퍼페추얼캘린더, 미닛리피터 등의 온갖 복잡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고객명단에는 유명인들이 많았는데, 특히 그 중에는 모나코왕, 모로코왕, 스페인왕과 왕비, 사우디 왕, 영국 여왕 등도 포함되어있었다고 합니다.


가격은 수만달러에서 Grande Sonnerie Retro의 경우는 200만달러로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초고가였습니다.


한마디로 당시의 Gerald Genta SA는 왕과 귀족들을 위한 시계를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1996~2005, 젠타의 시그니처 레트로그레이드     


1996년5월, 65세의 젠타는 Gerald Genta SA의 지분 51%를 지난 17년간 함께 일해온 싱가폴 시계유통회사 Hour Glass Ltd.에게 620만 달러에 매각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Gerald Genta SA의 경영상태가 파산 직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시장은 귀족에서 대중으로, 기술보다는 마케팅중심으로 바뀌었지만 Gerald Genta SA는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Gerald Genta SA는 소수의 사람에게 주문을 받아 매년 신제품 200~300개를 개발하고, 모델당 10~20개씩 연간 2천여개의 시계만 제작하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운영되어왔었는데, 이는 수주변동성이 심해서 수입은 불규칙적이고 생산 효율성이 떨어져서 비용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Hour Glass는 회사를 인수하자마자 운영방식을 완전히 바꿉니다.     


무엇보다 일반인들도 접근할 수 있도록 가격을 끌어내려 시장 확대를 시도합니다.     


이를 위해 케이스는 원형과 사각형 두 가지로 단순화하고 범용 무브먼트를 쓰기 시작하는 등 생산혁신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컴플리케이션만 고집할 게 아니라 적은 비용으로 브랜드값을 받을 수 있는 대중적인 모델을 만들기로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결과가 1996년에 시작된 Retro시리즈입니다.      


레트로 시리즈, 케이스 유형을 단순화하고 좀 더 대중적인 디자인도 선보였다.


점프아워와 레트로그레이드 미닛이라는 기능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이 두 가지를 조합한 레트로그레이드 컴플리케이션은 Gerald Genta SA가 최초였습니다.

      

Retro는 브랜드의 정체성인 컴플리케이션을 유지하면서도 젠타의 전성기 때처럼 간결하고 직관적인 형태로 완성되면서 Gerald Genta SA의 시그니쳐가 됩니다.               

                                             

레트로시리즈 리플릿



Retro는 동그란 Classic, 네모난 Solo, 디즈니캐릭터의 Fantasy 등이 출시됐는데 특히 Fantasy는 캐릭터별로 모으는 수집광이 있을 정도로 시장에서 크게 성공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성과가 나기도 전에 Hour Glass의 경영이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Gerald Genta는 다시 Bvlgari에 매각됩니다.     


2000년 매각 당시 Hour Glass는 동아시아를 주요 시장으로 하고 있었고, Gerald Genta SA, Daniel Roth SA, 그리고 두 회사의 제조시설을 소유하고 있는 Manufacture de Haute Horlogerie SA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7년부터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로 회사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매각대금 2,300만달러에 7년동안 운영수익의 1/3을 받는 조건으로 시계를 제조하는 3개 회사의 경영권을 모두 Bvlgari에 넘깁니다.     


이는 제조보다 본업인 유통에 집중하여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Hour Glass의 경영적 판단과 Gerald Genta를 활용해서 하이앤드 시계브랜드로 한번에 도약하려는 Bvlgari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랄드젠타는 Gerald Genta를 사임합니다. 이때가 그의 나이 69세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Gerald Charles라는 새로운 회사를 만듭니다.     



2000년~2003년, 제랄드 샤를     


제랄드 젠타의 원래 이름인 Gerald Charles Genta에서 두 번째 회사의 이름을 따온 것인데, 이는 Bvlgari 가 Gerald Genta와 관련된 모든 디자인, 특허 및 상표를 사들여 젠타 본인도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젠타가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젠타도 회사경영에 직접 참여하기 보다는 디자인 고문으로 있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데에만 몰두했습니다.     


생전에 하나의 프로토타입을 발표했지만 젠타의 사망과 함께 회사는 운영이 중단되었습니다.


젠타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만든 Gerald Charles

                                                                       

최근엔 당시 투자자였던 사람이 Gerald Charles 20주년을 맞아 회사를 부활시켰습니다.  

 

하지만 젠타가 2006년에 만든 케이스 디자인에 저가의 평범한 무브먼트를 넣어 비싼 가격에 팔고 있어 브랜드의 정통성이나 시계의 가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2005~2010: 불가리와 젠타의 공존


Bvlgari는 2000년에 디자인과 기술을 가진 Gerald Genta와 Daniel Roth를 인수한데 이어 2005년과 2007년에 다이얼(Cadrans Designs SA), 시계줄(Prestige d'Or SA), 케이스(Finger SA)회사들을 잇달아 인수하며 최고급 시계를 위한 생산체계를 구축합니다.     


그리고 2010년까지 이들을 Bvlgari로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 시기에 Gerald Genta SA는 Bvlgari의 디자인 연구소같이 운영됩니다.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거나 판매용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보다는 과거의 작품들을 선별하여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실험하고 이를 통해 새로 구축된 생산체계를 시험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존 레트로 시리즈에 개성을 강화한 Arena시리즈

                  

그 중심에는 케이스가 경기장 모양을 닮은 Arena와 8각형인 Octo가 있었는데, 대부분 알록달록한 아르데코 스타일의 다이얼과 Biretro를 기본 특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Arena는 기존의 Biretro Classic에 초침을 더하고 필요에 따라 다양한 컴플리케이션을 복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옥토 시리즈. 불가리와 젠타의 로고가 병기되어있다.


Octo는 1994년에 출시된 Octo Grande Sonnerie Tourbillon를 부활시킨 모델인데 Arena와 마찬가지로 케이스는 고정시키고 다이얼 안에서는 여러 가지 기술적, 디자인적 시도가 행해졌습니다.

    

그러다 Octo가 앞으로 Bvlgari를 이끌어갈 주력모델로 선정되고 본격적인 브랜드 통합이 진행됩니다.

     

2010년까지 Octo다이얼에는 Gerald Genta가 새겨졌으나 2011년에는 Bvlgari 로고에 Gerald Genta를 병기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 발표된 3핸즈에서는 Gerald Genta가 사라지고 Bvlgari 로고만 표기되어 완전한 통합이 이루어졌음을 알렸습니다.     



2011년 이후, 서거와 함께 불가리에 완전히 흡수된 젠타     


2011년 3월, LVMH가 52억달러에 Bvlgari를 인수합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17일, 제랄드젠타가 서거합니다.     


2014년부터는 Bvlgari Octo finissimo시리즈가 발표되기 시작했는데 Gerald Genta가 Bvlgari에 완전히 흡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가리 옥토 피니시모 시리즈

                                                        

Bvlgari는 Octo를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뚜르비용, 미닛리피터 등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하이앤드로 가기 위한 기술적 관문들을 불과 몇 년 만에 빠르게 통과했습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컴플리케이션에 특화된 Gerald Genta SA 덕분이었겠지만 이 과정에서 젠타는 잊혀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2019년에 Gerald Genta SA 50주년을 기념하며 Gerald Genta로고가 새겨진 레트로그레이드 Arena를 하나 발표했고, 2020년에는 Gerald Genta가 별도의 컬렉션으로 분류되면서 새로운 모델도 추가했습니다.                         


불가리의 제랄드 젠타 컬렉션

                                         

앞으로 Gerald Genta컬렉션이 어느 정도까지 확장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제랄드 젠타의 이름과 디자인이 Bvlgari를 통해 계속 살아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시계를 기능에서 상징으로 바꾼 젠타     


1960년대까지 “기능”은 시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브랜드들은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천문대에 모여 경쟁했고, 측정 결과 일오차가 적으면 좋은 시계라고 인증해줬습니다.     


시계의 형태도 다이버, 파일럿, 레이싱처럼 여러가지 상황에서 시간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서로 다른 브랜드도 같은 기능이 같으면 비슷하게 생겼고 디자인보다는 기계적 우수성이 더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1969년 쿼츠시계의 등장으로 지금까지 기계식 시계가 중요하게 추구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습니다.     


쿼츠는 월 오차를 따질 만큼 정확했고, 기술이 점점 발달하면서 애뉴얼캘린더-크로노그래프-미닛리피터 기능을 너무도 쉽게 구현해냈습니다.     


게다가 대량생산이 가속화되면서 누구나 살 수 있을 만큼 저렴해졌습니다.     


결국 70년대에 기계식 시계는 낡은 물건 취급을 받았고 실제로 수많은 브랜드가 사라졌습니다.     


이에 스위스 워치메이커들은 쿼츠시계와 차별화된 고유한 요소들을 찾아나섭니다.     


그리고 고급 기계식 시계만이 가진 자산들을 뽑아내어 Haute horlogerie (high-art of watchmaking, 시계 제작의 고급 기술)라고 이름 붙입니다.     


이 자산들은 수 백년간 쌓아온 역사와 이야기들, 예술적 가치, 기계적 정확성과 복잡함이 주는 아름다움, 정교한 마감, 장인정신 등이었습니다.               


파인워치메이킹의 대표브랜드 파텍필립의 무브먼트


                                                   

문제는 이를 어떻게 보여주느냐입니다.     


Haute horlogerie가 강조하는 가치 대부분이 추상적이고 감성적이거나 케이스 속에 숨겨져 있어 눈에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Geneve Seal 같이 인증을 하는 방법이 등장했지만 필요한건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이었습니다.     


이때 홀연히 나타나 스위스 시계를 구원한 인물이 바로 제랄드 젠타입니다.    


젠타는 기계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워치메이커들과 달리 시계를 ‘기능적 보석’으로 봤습니다.     


즉, 손목시계는 그 위치로 보나 형태로 보나 나를 표현하는, 즉 남들에게 보여주는 장신구이지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은 부차적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젠타는 그 전의 어떤 것과도 닮지 않으면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아이콘을 만드는데 집중했습니다. 6각형, 8각형, 12각형, 원 같은 4각형 등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던 기하학들을 하나둘씩 선점하면서 강력하게 차별화해나갔습니다.     


젠타가 디자인한 노틸러스와 로얄오크


예를 들어 8각형의 두꺼운 베젤을 보면 누구나 오데마피게를 연상합니다.     


오데마피게는 엄청난 기술과 전통을 가진 하이앤드고, 이를 손목에 올리면 그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를 ‘입는’효과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콘은 너무 단순하고 명확해서 오히려 다른 브랜드가 따라할 수가 없었습니다. 젠타의 디자인은 이런 식으로 작동되었습니다.                    

                                              

그래서 쿼츠파동으로 타격을 입은 수많은 브랜드가 1970년대에 그에게 디자인을 의뢰하거나 그의 디자인 전략을 따라하기도 합니다.     


마침 쿼츠 시계는 가격과 이미지가 모두 저렴해지면서 고급스러운 상징을 찾는 사람들이 다시 전통적인 기계식 시계로 돌아왔습니다.     


그 결과 고급 기계식 시계들이 전통적이고 지루한 디자인틀을 벗어나 아이콘화되기 시작했고, 시계가 제공하는 가치도 ‘기능’에서 ‘상징’으로 완전히 전환되었습니다.      


레트로솔로


덕분에 2000년대 이후 고급 시계시장은 크게 발달했습니다. 쿼츠파동에서 살아남은 회사들은 아이코닉한 디자인과 강력한 마케팅으로 무장하고 보이지 않는 가치를 팔아 막대한 부를 거머쥐며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 쿼츠보다 더 기능이 뛰어난 스마트워치가 등장했지만 고급 시계시장은 거의 영향이 없었습니다. 고급시계는 이제 미술과 예술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그 시작이 제랄드 젠타였기에 디자이너의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는 시계업계에서 그의 이름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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