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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t Feb 11. 2024

대중 브랜드의 도전

타이맥스 조지오갈리 S1





Timex는 싸구려 쿼츠시계를 생산하는 브랜드로써 명품시계가 주인공인 드라마에서 지나가는 행인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Timex는 시대가 바뀌는 지점에서 시계의 대중화에 기여한 역사적인 브랜드이고, 최근에는 고급화의 움직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이 두 가지 관점에서 Timex와 Giorgio Galli S1를 살펴봤습니다.


1. Timex


지금까지 President라는 별명이 붙은 시계들이 많이 있었지만 Timex야말로 미국 대통령들의 시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70여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토종브랜드이고, 저렴한 가격으로 누구나 찰 수 있으며, 미국에서의 시장 점유율도 상당히 높아 친서민 이미지가 필요한 대통령들에게 꼭 맞는 시계이기 때문입니다.



Timex의 오랜 역사를 들여다보면 의미 있는 시계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제 눈에 들어왔던건 1933년 미키마우스 시계였습니다.


미키마우스는 1928년에 태어났습니다. Timex(당시 Ingersoll)는 1930년에 월트디즈니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1933년 시카코 세계박람회에 이 시계를 발표해서 대 히트를 쳤습니다. 


당시는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의 영향으로 Timex와 월트디즈니 모두 부도 직전까지 갔던 시기였는데, 초딩들의 마음을 훔친 이 시계가 대공황 속에서도 3년간 200만개나 팔려나간 덕분에 둘 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시계사에서는 1984년에 미키마우스가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그 해에 Gerald Genta가 디즈니 캐릭터가 들어간 시계를 스위스에서 열린 무역박람회 Salon Montres et Bijoux에 출품했다가 쫓겨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행사는 오늘날 바젤월드의 고급버젼이었다고 하는데, 주최 측에서는 이 시계를 모욕으로 느끼고 “이 진지한 전시회에 생쥐, 표범(특히 분홍색 품종), 뽀빠이 및 기타 부적절한 캐릭터를 위한 공간은 없습니다”라고 했답니다. 



당시 스위스 시계산업은 10여년간 지속된 일본과 홍콩의 쿼츠 공격으로 초토화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점령한 로우앤드와 차별화하기 위해 스위스 하이앤드들만의 전시회를 열었는데 여기까지 하위문화라 여겨지는 만화 캐릭터들이 찾아왔으니 화가 났겠죠. 


이 일화는 당시 스위스 시계산업이 몰락했던 이유가 외부에서 발생한 기술적 침공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변화를 무시해온 스위스 내부의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예전에는 귀족 신분의 기사가 말을 타고 전쟁을 좌우했지만, 어느새 평민이 쏘는 기관총에 기사들이 전멸하는 전쟁으로 바뀌었습니다. 


즉, 기술의 발달로 귀족문화는 대중문화로 바뀌었고 만화를 활용한 팝아트는 이미 60년대부터 현대미술의 주류가 되었지만, 그분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스위스 시계의 기사들은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참호로 숨기는커녕 말에서 내려오기조차 싫었던 것 같습니다.



요맘때 Nicolas G. Hayek가 나타나 Swatch를 만들고 상업예술로써의 시계를 팔아 스위스를 구원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우리 손목에는 다른 시계들이 올라가 있었을 것입니다.


거의 확실한 확률로 그중 하나는 Timex였을 것입니다. 


Timex는 일찌감치 대량생산, 대중문화의 중심인 미국 한복판에서 탄생했고, 미키마우스 시계가 상징하듯 시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이 철저한 시장논리 속에서 성장해온 브랜드입니다. 


쿼츠파동으로 3만명의 직원을 6천명으로 줄이는 때도 있었지만 일찌감치 변화에 적응하여 카시오와 더불어 쿼츠 시계시장을 주름답는 회사가 됩니다. 


Timex는 한때 미국 최고의 기계식 시계 제조회사였으나 1982년에 기계식 시계 생산을 중단합니다. 


그리고 미키마우스가 다시 돌아온 1984년, Timex는 향후 10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스포츠시계인 Ironman을 발매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2. Giorgio Galli S1



Giorgio Galli는 Timex그룹의 디자인 디렉터입니다. 


그는 1990년대에 Swatch Lab의 최연소 아트디렉터로 경력을 시작했고, 이후 Movado, Seiko, Citizen등과 같은 중저가 브랜드들과 협업하면서 이 시장에서의 명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가 대표로 있는 Giorgio Galli Design Lap은 밀라노에 있는 Timex 그룹의 디자인센터입니다. 


이 센터는 2008년쯤 Timex에 인수되었는데, 이후 Timex, Nautica, Versace, Versus 및 Ferragamo등 Timex Group을 전담하며 매년 400개 이상의 시계를 디자인한다고 합니다.


저가 쿼츠의 대명사인 Timex가 자사 총괄디자이너의 이름을 내걸면서 오토매틱을 출시했다는 것은 S1이 이 브랜드의 전략자산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Giorgio Galli는 41mm S1을 시작으로 가을에는 38mm S1, 이후 S2 등을 예정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싸구려 이미지가 강한 Timex에 나름 고급(?)화 전략을 구사하면서 가격대를 끌어올리고 브랜드 이미지도 제고하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그런 만큼 S1은 대범한 디자인 컨셉을 채택했습니다.


2019년 11월, 이 시계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같은 해 1월에 소개되었던 AP의 CODE 11.59가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물론 두 시계는 스타일과 구조가 전혀 다르지만 아무래도 스켈레톤 케이스라는 컨셉이 비슷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S1은 전형적인 드레스워치의 표준형 케이스에 측면 가운데를 비우는 스켈레톤 기법으로 조형감을 줘서 캐주얼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걸 Timex가 속한 로우앤드 마켓에서 수용할 수 있는 500달러 이하로 만드는 것입니다. 


Giorgio Galli는 케이스를 깍아내는 대신 금속사출성형(MIM : Metal Injection Molding)이라는 방식을 선택해서 공정을 단순화하고 최대한 단가를 낮춰 문제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더해 스켈레톤 컨셉을 케이스뿐만 아니라 핸즈, 인덱스, 로터, 스트랩까지 일관되게 적용하면서 시계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부드러운 은색판, 똑같은 크기로 배열된 인덱스나 3핸즈, 시계의 위아래를 알려주는 6시방향 루비는 미니멀한 다이얼을 연출합니다. 이는 측면의 복잡한 구조와 대비되어 보입니다.


전 특히 스트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측면과 버클쪽에 슬릿을 만들어 컨셉을 유지하는 디테일과 남는 스트랩을 슬릿에 끼워 쉽게 정리하는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드레스워치에도 러버스트랩이 잘 어울린다는 점을 보여준 그 스타일 감각이 좋았습니다. 


때문에 스트랩만 2개 더 주문했습니다. 올 여름은 이 스트랩을 가장 많이 쓰게될 것 같네요.




반면 피젯스피너를 돌리는 듯한 로터소음은 이 시계의 수준과 한계를 보여줍니다. 


로터는 종종 태엽 반대 방향으로 차르르르~ 하고 돌아가는데 손목 위에서 피젯스피너를 돌리는 느낌입니다. 


저렴한 무브먼트를 쓰면서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거친 오토매틱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디자이너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41mm라는 사이즈도 좀 아쉽습니다. 


제가 선호하는 사이즈가 38mm이다보니 처음에 봤을 때 좀 크게 느껴졌습니다. 여름에는 오히려 살짝 큰게 좋지만 S1같이 미니멀한 다이얼은 크면 좀 벙벙한 느낌이라 좀 오밀조밀하게 작게 만드는게 더 어울려보입니다. 


다행히 가을에 S1 38mm가 출시된다고 하니까 기다려봐야겠네요.



요즘에는 시계를 Business로 접근하는 대중브랜드나 마이크로 브랜드에 더 관심이 갑니다. 


Art를 추구하는 브랜드는 가격 상한선 없이 좋은걸 갖다 쓰면 되지만, Business브랜드는 가격이 가장 중요한 디자인 요소인 만큼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을 포함하여 여러가지 마케팅 전략과 기술적 혁신들이 동원되는데 그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재밌는 것 같습니다. 


Timex는 이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브랜드니까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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