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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t Jul 14. 2024

바우하우스 시계 1

바우하우스 다이얼




Nomos Tangomat datum ref.602

Stowa Antea 390 Day-date Schwarz

Nomos Ahoi date atlantic ref. 558


브랜드는 다르지만 비슷하게 생긴 이 시계들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좀 살펴봐야 합니다.

독일 남서쪽에는 거대한 숲이 있습니다.


이곳은 나무가 너무 울창해서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Black-forest, 검은 숲, 흑림) 이라고 불립니다. 


여기에서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잃었고, 빨간모자가 늑대를 만났으며, 백설공주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이 숲 출신이라고 합니다. 


이 지역의 유명 특산품 중 하나는 뻐꾸기 시계(Kuckucksuhr)입니다. 


최초의 기록은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7세기에 등장하지만, 1767년에 시계사업을 하는 프랑스인 장 프랑수아 오트랑(Jean Francois Autran)이 포르츠하임에 회중시계 공장을 세운걸 이 지역 시계역사의 시작으로 봅니다. 


이듬해 세계 최초의 직업학교인 Goldsmith and Watchmaking School Pforzheim이 설립되고, 1840년 경에는 5천여명이 연간 60만개의 뻐꾸기 시계를 제작할 정도로 산업이 융성하면서 포르츠하임은 ‘작은 제네바’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20세기 초가 되면 이 지역에서 뻐꾸기 시계를 벗어나 손목시계를 만드는 여러 회사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가 Stowa입니다. 


스토바는 1927년 Walter Storz가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회사로 1861년에 이 지역에 설립된 Junghans같은 회사에 비하면 출발이 상당히 늦은 회사입니다. 


하지만 후발주자였기 때문에 좀 더 혁신적인 디자인을 수용하거나 정부조달 사업에 뛰어드는데 적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1937년, 랑에와 스토바가 비슷한 디자인의 시계를 출시합니다. 


이 시계는 아라비안 인덱스를 길게 늘려 바 인덱스와 통합한 것처럼 보이고, 케이스는 순수한 원통을 중심으로 불필요한 부분을 모두 없앴습니다. 

타이포그라피를 시계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사용한 점이나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순수기하학의 디자인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이 시계는 최초의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시계라고 평가됩니다. 


하지만 바우하우스(1919~1933)에서는 시계를 다룬 적도 없고 이 시계를 그곳 출신이 만들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그저 디자인 결과물만 봤을 때 누가 봐도 바우하우스 디자인 철학이 엿보인다는 것이죠. 

사실 이 시계의 가장 큰 특징인 다이얼을 만든 곳은 Weber & Baral입니다. 


Weber & Baral는 포르츠하임에 기반을 둔 당시 독일 최대의 다이얼 회사로서 랑에, 스토바 외에도 여러 회사에 부품을 공급했기 때문에 같은 시기에 비슷한 디자인이 여러 브랜드에서 발견됩니다. 


당시 시계산업에서는 무브먼트가 주인공이었고 디자인은 보조적인 역할이었으며, 디자인은 부품회사들이 만든걸 그냥 가져다 쓰는 분위기라 이 디자인이 랑에와 스토바 고유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힘듭니다. 


그저 시기적으로 봤을 때 1933년에 바우하우스가 문을 닫으면서 전국으로 흩어진 학생들 중 누군가가 Weber & Baral에 가서 이 디자인을 만든게 아닐까 추정될 뿐입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에 독일 공군에 시계를 공급하는 업체가 5개 (랑에, 스토바, 벰페, 라코, IWC)사로 압축되면서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정통성을 잇는 기회는 랑에와 스토바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사실 전쟁무기는 Form follows fuction, less is more, 타이포그래피의 중요성, 경제성과 대량생산성 등 바우하우스 정신을 구현하기에 가장 좋은 무대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1930년대 후반에 탄생한 플리거 디자인은 실전에 투입된 바우하우스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플리거도 디자인도 앞에 살펴본 바우하우스 다이얼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네요.


하지만 전쟁무기를 공급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1944년에 작성된 영국 공군이 작성한 보고서는 포르츠하임이 독일 보석 및 시계 제조무역의 중심지 중 하나로 전쟁에 사용되는 정밀기기 상당량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 도시에 있는 거의 모든 집이 작은 작업장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도시 전체를 파괴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1945년, 포르츠하임의 스토바와 글라슈테의 랑에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생산시설 대부분이 파괴됩니다. 


특히 포르츠하임은 건물의 90%가까이가 파괴되었고, 공식적으로 인구의 3분의1인 17,600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이 때 스토바의 생산시설도 모두 파괴되었고,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전통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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