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감당하기 어려운 밤이 있다. 그런 날에는 웅크려 이불을 둘둘 말고 가슴으로 꼭 껴앉는다. 마흔, 키가 백팔십이 넘는 나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이불을 둘둘 말아 안는다. 가슴속에 천 더미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섬유 덩어리가 아픈 나에겐 위로가 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 위로를 주는 이 덩어리가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지금 나를 아프게 하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흘러가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많은 것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 희미해질 것이라고. 모르지 않는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지나가고 희미하다. 아픈 것도 즐거운 것도 사랑스러운 것도 지나간다. 그러니 이불을 둘둘 말아 웅크리고 있는것도 괜찮다. 어차피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룻밤이 지나면 어른으로, 자리에 앉아서 아픈 것들과 말할 것이다. 의미가 없는 것들을 말할것이다. 아무튼 나는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