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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Mar 16. 2024

깊은 터널로

주말이 지나도 아버지는 회복되지 못하셨다. 응급실에 들어온 날, 그날 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중환자실은 보호자의 입실이 허용되지 않아, 그날은 병원 밖에서 잤다. 다음날 이제 아버지가 병동 (일반적인 입원 병실이 있는 곳을 병동이라고 부른다)으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아버지가 들어올 병동으로 가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 취한듯, 잠에 취한 듯 했다. 이동식 침대에서 병동 침대로 아버지를 옮기기 위해 남자 간호사 한 명을 포함해 네 댓명의 간호사가 동원되었고, 아버지는 저항했으나 이를 이기지 못했다. 아버지의 모습은 술에 잔뜩 취한 할아버지 같았다. 할아버지는 종종 술에 크게 취하셨고, 거친 욕설을 뱉으며 잠꼬대를 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한 할아버지처럼 욕을 하고 간호사의 처치에 저항했다.


나는 아버지의 몸이 그렇게 단단한 줄을 몰랐다. 이제 예순다섯을 넘은 아버지는 이전과는 달리 약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지금, 나의 뜻에 저항하는 아버지의 몸이 얼마나 단단하고 강한지를 알았다. 아버지의 노동이 나의 노동보다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는지를 알았다.


병동에서 아버지와 몇시간 정도 함께 했다. 어제보다는 조금은 의식이 있어보이는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았고, 본인의 이름도 기억하고 말할 수 있었다. 그 밖에 것들은 무엇도 불가능했다. 여기가 병원이라는 것도, 여기에 본인이 왜 있어야 하는지도, 그리고 누워있어야 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말했으나,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그렇게 몇시간이 지나고, 나는 주말동안 육아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야했고, 누나가 주말동안의 간병을 위해 내려왔다. 나는 다시 일요일 밤에 다시 오기로 하고, 자리를 떠나갔다.


올라가는 길에 아버지가 살던 집 근처를 지나갔다. 멀지 않았다. 문득, 이번 주말이 지나고 다음주가 지나도 아버지를 다시 보지 못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정확히 낙관적이었는지 비관적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모두였던것 같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리고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는 울고있었다.


"아빠가... 나한테 막 욕을하고..."

아버지의 모습에 누나는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내가 전화로 전한 아버지의 상황은 누나에게 실감이 잘 나지 않았나보다. 누나가 병원에 오기 전까지, 나는 아버지의 상황을 가급적이면 좋은 쪽으로 말했던것 같다. 안좋은 상황을 그런대로 괜찮은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버릇이었다.


 나는 전화로 누나에게 내가 지금 돌아갈 수 없으며, 아버지는 계속 그러셨으니 일단 좀 있어보라고 말했다. 주말이 지나면 누나는 출근해야 했고, 나는 병원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낼 것이고, 또 그 다음은 계획을 세워야했다. 이 시간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두웠다. 깊은 터널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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