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생에서 한번쯤은 인정받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을까
저는 서울 소재의 모 대학 의류학과를 졸업했습니다.어렸을적에 저는 만화책을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해서 얇은 이불 한장가지고 망토처럼 둘러 슈퍼히어로가 되는 상상을 하거나 드레스처럼 둘러서 화려한 이브닝 파티에 참석하는 공주가 되는 꿈을 꾸며 혼자서도 잘 놀곤 했습니다.부모님이 맞벌이로 바쁘시고 나이차이 많이 나는 언니,오빠는 모두 학교에 가서 바쁠때여서 혼자 노는 시간이 많은 저의 궁여지책이었습니다.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해서 어쩔때는 스케치북에 바이올린을 그려 오려서 보자기에 싸서 배낭처럼 짊어지고는 낭만의 도시 프라하의 다리에서 흐르는 강을 보여 여유로움을 연주하는 방랑음악가가 되기도 했습니다.
손재주가 많고 참 엉뚱한 면이 있었던 저는 사람을 많이 접하지 않아서 인지 어릴적에는 참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이였습니다.착하고 조용하다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얹을 정도로 들었습니다.그렇게 자기의 세계를 무럭무럭 잘 키워나가던 저는 어느덧 고2의 겨울방학을 맞이하게 됩니다.그당시의 저는 같은 만화동아리의 친구 추천으로 불량공주모모코라는 영화를 보게되고 그 영화에 푹 빠지게 됩니다.영화속 사랑스럽고 사치스러운 드레스가 가득한 모모코의 옷장.저는 그 드레스들을 보고 패션디자이너가 되어야 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예술은 굶어죽기 딱 좋다 믿어의심치 않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쳐서 저는 미술을 배울수 없었고 실기전형없이 공부로 갈수 있던 패션디자인학과 즉 의류학과를 목표로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그 당시 이과였던 저는 고3의 3월모의고사때 가장 걸림돌이 었던 수리 가형을 6등급을 맞았고 수능을 목표로 공부를 열심히 1년간 꾸준히 해서 수리 나형을 교차지원으로 시험봤고 수능에서 최종적으로 1등급을 맞게되었습니다.제가 열심히 하는 것을 본 부모님도 의류학과에 가는 것을 허락해 주셨고 저는 서울소재의 의류학과 3곳에 지원해서 최종 2군데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고3기간 내내 고생을 했으니 대학교의 핑크빛 캠퍼스 라이프만 꿈꿨던 저는 학교에 다니고 크게 실망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의류학과와 패션디자인학과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실기전형이 없던 의류학과는 패션디자인과는 다르게 의류에 대해 포괄적으로 배웁니다.의복구성,패션마케팅,의복심리학,의복소재학등 여러지식들을 습득하는데 이것은 양날의 검이었습니다.패션MD나 다른 의류회사에 취직을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넓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패션디자인수업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저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디자이너의 길을 포기하고 패션MD를 하기위해 영어를 배워야하나 고민하고 있었을때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생깁니다.
그것은 바로 대학의 총장님께서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특별히 국내 유명브랜드를 창립하신 디자이너분을 학교 디자인 교수님으로 초빙해온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3학년 재학생들을 위해 디자인스튜디오라는 강의를 개설해 주셨고 저는 3학년이었기에 그 수업을 들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강의실에서 뵌 교수님은 남자분이셨고 무척이나 재밌는 분이셨습니다.유머감각이 뛰어나서 재밌는 분이 아니라 독특하고 감각적이시며 열정적이셔서 이때까지 봐온 다른 분들과는 남다르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무척이나 재밌었습니다.교수님은 자신의 디자인철학과 가치관 자신의 브랜드 창립에피소드와 디자인하는 법에 대해 아주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셨고 책에서도 얻을수 없는 값진 지식에 저는 무척이나 주의깊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은 다음시간까지 디자인을 해오라는 과제를 내주셨고 불량공주 모모코가 제 인생영화인 저는 열심히 레이스 드레스(?)디자인을 그려갔습니다.옷을 그린 바디의 비율도 엉망인데다가 레이스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본 교수님은 인형옷 같다며 다시 그려오라 하셨고 그 뒤로 저는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이었고 일주일동안 열심히 고민하며 디자인을 하고 또하고 또하다가 결국에는 그냥 문득 떠오르는 대로 그림을 그려서 디자인 하였습니다.총 네벌의 디자인을 하였는데 앞의 세벌은 무난했지만 마지막으로 그린 네벌째는 다소 난해한 면이 있는 옷이었습니다.제가 그렸지만 제가 보기에도 어느 우주제국의 제복(?)같은 느낌이었습니다.일단 과제제출일이 다가왔으니 과제를 제출했고 교수님은 검사를 하신뒤 한명한명 컨펌을 해주셨습니다.제 차례가 가서 교수님께 갔습니다. 교수님은 컨펌을 하시며 한장한장 디자인을 짚어주셨는데 앞의 세벌의 옷을 보고 나쁘진 않아라고 말씀 하셨습니다.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우주제복(?)디자인을 보고는 한동안 말이 없으셨습니다.그리고 한마디 하셨습니다.
"생각보다는 디자인 감각이 있네요."
그 말에 저는 얼떨떨하여 교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사실 제 인생 통틀어 처음 받은 인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교수님은 그 디자인 스타일대로 컬렉션을 전개해보자며 자료조사를 해오라 하셨습니다.
그뒤 저는 집중해서 자료조사와 디자인을 연구하며 교수님께 컨펌받아가면서 디자인 실력이 쑥쑥 늘어갔고 학기말에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만들때 쯤에는 교수님께서 디자인 실력이 많이 늘고 잘 만들었다며 엄청나게 칭찬해주셨습니다.
어찌나 수업시간마다 칭찬해주셨던지 같은 수업의 학생들이 제 이름을 다 알고 도대체 어떤디자인이길래 그렇게 칭찬받냐며 구경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천성이 내성적이고 조용했던 저는 교수님께서 최종적으로 학생중 2명을 자신의 회사의 막내 디자이너로 채용하려 했는데 아쉽게도 저는 그 두명안에 들지 못했습니다.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저의 내성적인 성격이나 디자인스타일이 자신의 회사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랬을거라 생각했고 또 디자인 수업이 워낙 즐거웠고 많은 것을 배웠기에 이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마지막 포트폴리오 상담시간에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생각납니다."모브 너는 꼭 디자이너가 됐으면 좋겠다."라구요.내성적인 성격이었던 입생로랑도 훌륭한 디자이너가 된것처럼 내성적이지만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저에게 칭찬해주신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사를 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교수님이 엘레베이터 앞에서 교수실로 이동하려고 기다리고 있으셨는데 저는 멀리 있었는데 쫒아가서 인사드린적이 있었습니다.저는 당시에 수업시간이 무척이나 즐거웠기에 교수님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무의식중에 그런것이었는데 교수님이 그런것을 보고 참으로 저를 예뻐하셨습니다.
그뒤 저는 디자이너로서 잠깐 근무하다가 진로를 틀어 다른 시험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진로고민과 생소한 공부로 무척이나 힘이 들어 문득 교수님이 생각나 교수님에 대해 검색해 보았는데 교수님께서 큰 편집샵을 차리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무작정 그 편집샵을 찾아갔습니다. 사실 무척 큰 편집샵이고 교수님은 바쁘실테니 없으시겠지 하고 구경하고 오자 갔는데 디자이너는 늘 솔선수범해야한다는 교수님의 철학을 그대로 지키시고 계셔서인지 편집샵에서 정리를 하고 계셨습니다.정리에 너무 열중하셔서 교수님은 저를 못알아 보신듯 했습니다.
저를 너무 예뻐해주시던 교수님이라 제가 디자이너로서 제대로 못하고 진로를 튼다는 사실을 차마 말씀 드리기 어려웠던 저는 그렇게 잘하던 인사를 교수님께 차마 못드리고 가게를 조금 보다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저를 알아본 것인지 제가 나갈때쯤 슬며시 밖에 계셨습니다.
참으로 즐거운 경험과 씁쓸한 기억이 공존하는 추억이지만은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인정받고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나고 또 배웠던 경험으로서 무척이나 저에게 소중한 추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