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작곡 오태호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홍성민'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bjBUZeIRm7 I? si=KoequN007 EdcFvsC
기억날 그날이 와도
그땐 사랑이 아냐
스치우는 바람결에
느낀 후회뿐이지
나를 사랑했어도
이젠 다른 삶인 걸
가리워진 곳의 슬픔뿐~인걸
- 홍성민의 <기억날 그날이 와도> 가사 중 -
홍성민은 1987년 데뷔했습니다. 그룹 공중전화로 <사랑이 그리운 날들에>라는 노래였죠. 그룹 공중전화는 1987년 결성된 록 밴드입니다. 오늘 소개할 노래의 작사, 작곡가인 오태호가 기타를 맡았고 그는 보컬과 키보드를 담당했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오늘 이곡도 받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오늘 소개할 노래는 그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의 타이틀 곡입니다. 단 한 장의 솔로 앨범만 남겼습니다. 그렇지만 이 한 곡의 노래가 그의 이름 석자를 알렸죠. 전형적인 원히트원더형 가수라고 봐야 할 것 같네요. 이후 프로젝트 밴드 휴먼에이드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현재는 이 땅에 없는 사람입니다. 2007년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가 급성 노출혈로 쓰러졌고 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후 사망했습니다. 그의 나이 향년 44세였죠.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에는 비화가 있는데요. 원해 오태호 씨가 홍성민에게 주려고 했던 곡은 가수 이승환이 불러서 히트를 친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였다고 하네요. 녹음 하루 전달 이승환 씨가 이 노래를 달라면서 붕장어 한 접시를 대접하는 바람에 곡 주인이 바뀌었다고 하네요. 아까비. 하하하. 그리고 하룻밤만에 완성한 곡이 바로 이 노래라고 하네요. 노래에 좀 우여곡절이 있죠.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제목이 '기억날 그날이 와도'입니다. 뭔가 그날이 와도 시큰둥하게 반응하겠다는 작은 의지 같은 것이 느껴지죠. 화자는 왜 이런 마음을 먹었던 걸까요?
'변치 않는 사랑이라/ 서로 얘기하진 않았어도/ 너무나 정들었던 지난날/ 많지 않은 바램들의/ 벅찬 행복은 있었어도/ 이별은 아니었잖아' 부분입니다. 화자는 이별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남들처럼 식상하게 변치 말자, 영원히 사랑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상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했었죠. 상대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곁에 있는 그 자체가 좋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소망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본 적 없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네 모습처럼/ 날 수 없는 새가 된다면/ 네가 남긴 그 많았던 날/ 내 사랑 그대 조용히 떠나' 부분입니다. 화자는 날 수 없는 새를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외롭고 고독한 존재. 그것이 마치 날개는 있으나 날지 못하는 새를 연상시키죠. 그러면서 화자는 체념합니다. 더 이상 떠나는 사람을 잡을 이유를 찾지 못해서겠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기억날 그날이 와도/ 그땐 사랑이 아냐/ 스치는 바람결에 느낀 후회뿐이지/ 나를 사랑했어도/ 이젠 다른 삶인 걸/ 가리워진 곳의 슬픔뿐~인걸' 부분입니다. 가사가 참 멋진 것 같아요. 사랑도 같이 있어야 사랑이지 멀어진 후에는 사랑이 아니라 후회가 된다는 의미로 읽히네요. 한 때 사랑했어도 지금은 어딘가에서 다른 삶을 사는 이를 보는 것은 덮여 있던 슬픔을 꺼내 보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흑흑.
음. 오늘은 가사 중 '이젠 다른 삶인 걸'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헤어질 때 우린 '이제 각자의 길을 가자'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들어보셨나요? 관계라는 것이 삶의 일정 부분은 아니 혹은 아주 많은 부분을 공유해야 가능한 건데, 이 말은 이제 공유된 부분이 없이 따로따로 잘 살자는 말이 되죠.
그러다 문득 지난 연인이 떠오르는 날이 있습니다. 시간도 한참 지났고 다시 만날 일은 더더욱 없는 상황인데도 말이죠. 엄연히 '이제는 다른 삶인 걸' 알지만 추억을 더듬어 보는 거죠. 여러분들도 그럴 때가 있으신가요? 너무도 많은 시간이 흘러서 완전히 다른 인생 경로를 탔을 거라 어림짐작만 할 뿐이죠.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그 인연이 아주 우연한 혹은 기가 막힌 타이밍과 장소에서 다시 이어지곤 합니다. 몇 년 아니 몇 십 년이나 흘렀는데도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감춘 채 살아가다가 결국 만나서 그동안 걸어두었던 마음의 빗장을 풀고 서로를 부둥켜 안죠. 하하하.
우린 누군가를 만나기 전 다른 시간과 시대에 태어나 다른 장소와 교우들을 벗하며 그리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이며 직장이며 뭐 이런 것들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서 자기 나이만큼의 다른 궤적을 그리다 서로 교차하게 되죠. 그리고 그중 일부는 보자마자 혹은 점점 스파크가 터지곤 합니다.
누군가는 그걸 운명이라고도 하고 인연이라고도 하죠. 너무 늦게 만났다거나 지금이 딱 좋다거나 뭐 이런 시기적인 판단도 덧붙이고요. 완전히 다른 삶을 살던 두 사람은 사귀기로 한 다음부터 서로의 삶이 공유되죠. 어떤 이는 일거수일투족을 다 꺼내놓는가 하면 어떤 이는 보여주고 싶은 것만 선별적으로 말이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각자의 삶에 대한 공유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너무 빠르게 그걸 알려고 하면 상대가 부담을 느낄 수도 있고 너무 깊게 들어가면 그것 역시 상대는 피곤해 할 수 있죠. 그 보폭을 잘 조절하며 하나씩 꺼내보여 주는 것도 연애의 기술 중 하나죠.
그렇게 서로에 대한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진행되는 사이 각자의 삶은 이전과는 다르게 공유하는 삶의 비중이 쌓여갑니다. 특별히 자신의 무언가를 공개하지 않았더라고 상대와 보낸 시간과 추억이면 충분할 수도 있죠. 한 달에 한 번만 만나는 사이라도 만남 자체가 시간과 추억을 공유하는 일이라 공집합을 만들어 냅니다.
처음엔 자신의 삶이 누군가와 공집합을 만드는 것이 조금은 어색해서 쭈뼛쭈뼛할지 몰라도 만남의 횟수가 잦아지고 상대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수록 공집합의 영역에 있는 것이 오히려 편해지는 기현상을 경험하게 되죠.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못 견딜 정도가 되기도 하죠.
그러다 무슨 이유로든 서로가 헤어질 결심을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그동안 시나브로 늘었던 공집합은 급속도로 제자리르 찾아가게 됩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당황하는 이들이 적지 않죠. 늘 함께 가던 영화관도 어떤 장소도 이제는 같이 갈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심지는 얼굴 보는 것 자체가 곤혹스럽기까지 합니다.
공집합의 영역이 최대화를 향해 가다가 어느 순간 최소화를 향해 방향을 틀 때 그 어지러움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예상해 봅니다. 사랑을 했다가 헤어졌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껍데기를 사랑했을 뿐 공집합을 만드는 데는 실패한 것이라고 봐야겠죠. 반대로 공집합이 너무 커진 사이라면 한 방에 그걸 처분하기 곤란해서 시간을 두고 혹은 단계별로 역방향을 향해 나오는 방식을 따르기도 합니다. 공집합이 크면 클수록 그걸 비우는 데는 곱절의 에너지와 감정 소모가 필요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니까요.
어찌어찌 공집합이 비워지고 형식적으로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천양지차죠. 천당과 지옥을 경험한 자와 한쪽 세상만 있다는 것을 아는 자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문득문득 떠난 상대가 생각이 나곤 합니다. 그마저도 시간에는 장사가 없다고 점점 옅어지죠. 그 사이 그 빈자리에 다시 공집합이 생기고 다시 빠져나오고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이들도 있죠.
우리가 누군가를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할 때는 그 사람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상태인데도 그걸 의식하지 못할 때 일 겁니다. 어떤 사람을 생각히지 말아야지라고 의식하는 것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니까요.
서로가 헤어진 그 자리에서 각자의 인생길을 다시 걸어가다가 보면 영화나 드라마처럼 우연히 지난 연인을 마주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헤어진 당시에는 몇 번이고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사람도 이후의 삶을 살아내려면 그런 마음이거들랑 가슴 저 밑바닥에 묻혀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시간을 덧칠해서 더 이상 꺼내려해도 꺼내지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만 하죠. 만약 우연히 지난 여인을 본 순간 다시 마음이 동한다면 그동안의 삶이 온전히 못했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아마 그런 경우 보통은 '잘 지내네' 혹은 '예전부터 많이 수척해졌군' 뭐 이런 식의 판단만 하고 '이젠 다른 삶인 걸'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가던 일을 묵묵히 걸어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인생의 공유점이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 없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런 상상을 해 볼 순 있죠. 만약 지금까지 그 사람과 삶의 공집합을 유지했더라면 자신의 삶은 어떻게 흘러왔을까 하는 정반대의 상상 말이죠.
사랑은 연결입니다. 그 연결은 공집합을 만들죠. 사랑이 끝나면 그 연결을 끊어지고 공집합은 축소되다가 어느 순간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린 지난 시절 누군가를 사랑했더라도 한참 후에 '이젠 다른 삶인 걸'이라는 말을 읇조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은 공집합이 건재할 때 유효한 것일 테니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이틀 동안 시간은 충분했는데 브런치를 하지는 못했네요. 물리적 시간이 많다고 글을 쓰거나 잘 써지는 것은 아닌 듯하네요. 그리 시간이 없을 때도 시간을 쪼개서 글을 썼던 적도 많았으니까요. 가을이라서인지 요 며칠 기분이 멜랑꼴리 했네요. 계절을 이리 타는 거 보면 건강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