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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VAYA Jul 08. 2024

류계영의 <인생>(feat.홍지윤)

작사 오혜숙 작곡 정의송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류계영'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2T4VFBEpoPE?si=ibk2dHRrHI2WRyn2

운명이 나를 안고 살았나

내가 운명을 안고 살았나

굽이굽이 살아온 자욱마다

가시밭길 서러운 내 인생


다시 가라하면 나는 못가네

마디마디 서러워서 나는 못가네

지는 해에 실려보낸 내 사랑아

바람처럼 사라져 간 내 인생아


아-사랑이여 눈물이여

묻어버린 내청춘이여 아-

사랑은 다시오라 나를 부르고

인생은 눈물되어 나를 떠미네


- 류계영의 <인생> 가사 중 -




류계영은 트로트가수로 2001년 데뷔했습니다. 본명은 최계영이고요. 살아온 궤적과는 다르게 웃음 많은 명량쾌활형이라고 합니다. KBS1 휴먼다큐 <이것이 인생이다>를 통해 인생역전한 케이스입니다. 2002년 방송 출연 직후 발표한 노래가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인데요. 무명가수였던 그녀를 황재현 PD가 발굴해 1주일만에 급하게 만들어진 곡이라고 하네요.

6남매 중 맏딸이라는 삶의 무게. 실업고등학교를 가까스로 졸업하기까지 그녀는 낮에는 학교로 밤에는 공장으로 향하며 피곤한 삶을 이어갑니다. 그런 고단한 청춘에게 주어진 유일한 안식처는 노래였다고 하네요. '전국노래자랑' 등 각종 노래 대회에 나가 수상한 덕분에 스탠드바 무대에 서며 언제 이름이 알려질 지 기약할 수 없는 직업 가수로의 삶을 시작합니다.

나이트 밤무대를 전전하며 생활고에서 벗어날까 싶었지만 남동생의 도박 빚이 고스란히 그녀에게 전가되며  고통의 시간이 하염없이 연장되며 낙담하게 됩니다. 등산을 하며 생의 끝자락을 겨우 붙잡고 있을 때 그녀의 손을 잡아준 것이 바로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프로그램이었죠. 그녀 나이 39세였습니다.

가사가 지난 그녀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늦게나마 가정도 이루셨다고 하는데, 그동안 고생한 삶을 제대로 보상받기를 바래 봅니다. 워낙 어려웠던 세월을 겪은 분이고 그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을 것을 보면 분명 강단이 있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인생'입니다. 제목만 봐서는 뭘 말하고 싶은지 잘 파악이 안 되시죠? 한 마디로 '질곡있는 지난 삶'을 노래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가사가 꽤 시적입니다. 너무도 짧아서 살을 붙이는 게 쉽진 않을 것 같네요. 하하하.  

'운명이 나를 안고 살았나/ 내가 운명을 안고 살았나/ 굽이굽이 살아온 자욱마다/ 가시밭길 서러운 내 인생'이 첫 가사입니다. 저는 첫 두 구절에서 기구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의미의 '아모르파티'가 떠오르더군요. 운명을 의인화해서 운명이 나를 안은 것인가 내가 운명을 안고 산 것이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죠. 그럴만도 한 것이 그녀의 청춘 시절은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산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늘 삶의 무게에 눌려 있었고 한번도 길은 평평하거나 똑바르지 않았던 것이죠.

'다시 가라하면 나는 못가네/ 마디마디 서러워서 나는 못가네/ 지는 해에 실려보낸 내 사랑아/ 바람처럼 사라져 간 내 인생아' 부분입니다. 당연히 그 참혹했던 과거의 기억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을 겁니다. 성인이었으면 자신에게 부여받은 삶을 바꿀 수 있었겠지만 그 시절 그녀는 성인에도 이르지 못한 나이로 세상에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테니까요. 마디마디가 서러웠다는 건 어느 것 하나 자신의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상황을 그리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런 삶이었으니 사랑의 사치라 여겼을 거고 꽃다운 청춘이니 즐거운 인생이니 하는 것들을 돌볼 시간도 시선도 없었겠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아-사랑이여 눈물이여/ 묻어버린 내 청춘이여 아-/ 사랑은 다시오라 나를 부르고/ 인생은 눈물되어 나를 떠미네' 부분입니다. 해석이 대략난감합니다. 워낙 은유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청춘을 제대로 못 즐겼다는 내용은 알겠고, 사랑할 타이밍을 놓친 탓에 과거가 사랑하러 다시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죠.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다는 건 화자에게 눈물 그 자체이고 가기 싫은 길이겠죠. 마지막 가사가 '떠미네'인데요. 과거에서 주어오고 싶은 한 가지가 바로 사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음. 오늘은 '운명이 나를 안고 살았나/ 내가 운명을 안고 살았나' 가사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보면 대부분 인생에서 고난의 한 가운데를 지날 때가 아닐까 합니다. '내 운명은 왜 이 모양이지?' 혹은 '운명의 신이 장난이 너무 심하네'라고 말하곤 하니까요.

노래의 화자 역시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앞길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을 겁니다. 없는 살림에 맏딸이라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 5남매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 인생의 즐거움보다는 그 반대편과 대화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나의 운명은 왜 이리 찌지리도 가난하게 태어났지', '왜 나는 부모가 해야 하는 역할의 일부를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거지' 뭐 이런 질문을 자신의 삶에 수도 없이 던져봤을 거라고 추측이 됩니다. 그리고 한 번쯤은 가족들을 등지고 편안한 혼자의 삶을 꿈꾸기도 했을 겁니다.

운명은 이처럼 가혹합니다.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 말에 순응하며 살라고 윽박지리고 있는 것 같거든요. 하지만 숙명에 비하면 약과입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바꿀 수 없는 기정사실화가 바로 숙명이죠. 그에 비하면 운명은 모나기는 해도 어느 정도는 자신의 의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이 노래의 가사 말처럼 운명은 그 대상을 안는 것을 좋아하는 듯 합니다. 자신의 말을 잘 따르고 그 울타리 안에서 고분고분한 삶을 살라고 말하는 듯하죠. 왜 그래야 하는지, 언제까지 그럴 건지, 그러면 안 되는 건지 등등에 대한 질문은 일체 사절하면서요.

이에 반해 내가 운명을 안는 모습은 그것과는 좀 다르죠. 겉으로 보기에는 운명과 내가 뒤엉켜 있어서 마치 흙탕 싸움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안은 사람은 그 운명을 뛰어넘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겠지요.

운명이 주체가 되고 내가 객체가 되는 삶과 내가 주체가 되고 운명이 객체가 되는 삶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그 차이는 말도 못하게 큽니다.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운명에게 맡겨 버린 삶은 도전과 응전이라는 매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죠. 하지만 자신이 운명의 주인이 된 경우는 운명에게 이렇게 명령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너란 운명의 장난을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운명이라는 이름을 거역할 테다' 라고요.

이 노래에서는 고단했던 지난 삶을 돌아보며 주변 상황이 화자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나 아니면 자신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음에도 그걸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며 스스로가 가능성을 차단했나 라고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간 결과는 둘 중 어느 것으로 생각해도 변하지 않지만 그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삶은 완전히 극과 극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되네요.

'기투의 삶에서 피투의 삶으로' 이 문구 기억나시나요? 우리 인생은 아무 이유없이 던져졌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의지를 통해 다시 그려나가야 한다는 의미죠. 운명이 나를 안고 산 것은 기투일 거고요. 내가 운명을 안고 산 것은 피투에 해당 되겠죠?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들의 운명에 순응하고 있나요? 아니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계신가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인생이라는 단어는 사랑만큼 한 마디로 논하기 어렵죠. 사람이 살아가는 일, 인생에는 사랑이라는 단어도 품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인생과 일생이라는 두 단어는 어감이 많이 다릅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기간을 뜻한다는 점에서는 같은데 일생은 단 한번이라는 일회성의 의미가 강조되고 인생은 뭔가 변화무쌍함 쪽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합니다. 우린 어떤 인생으로 일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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