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하지만은 않은 입주, 다양한 고충들
13. 평안하지만은 않은 입주,
돈을 또 내라고요?
입주를 위해 가장 먼저 관리사무소를 방문했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문 앞에 쓰인 번호로 전화를 해 입주 사실을 알리자 선수관리비를 냈냐는 말이 돌아왔다. "수.. 무슨 비요?"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하자 관리소장님이 이리 오겠다 했다. 말씀인즉슨 부동산 계약과는 별개로 입주 명목으로 지불하는 금액이 이 선수비라는 것이다. 이 돈은 내가 1년 뒤 나가게 되면, 뒤이어 들어올 세입자에게 넘겨받는 것이라고.
또 한 번의 무지를 깨달았다. 모든 게 다 돈이었는데 여기서 또 돈을 써야 한다니. 그것도 20만 원이나? 여기까지 오는데만 해도 크고 작은 지출이 수없이 있었기에 또 돈을 쓸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누구든 이런 게 있다고 내게 좀 말해줬더라면. 왜인지 억울한 심정으로 돈을 이체했다. 이후 작성해야 할 몇 가지 것들을 쓰고, 간단한 입주 설명을 듣고, 리모컨과 카드키 등 물품을 받았다.
다른 가족들 역시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을 뿐, 이것에 대해 아는 이가 없었다.(그러나 이 선수관리비는 내가 내는 것이 아니라는 걸 며칠 뒤에 알게 됐다.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왔고, 그 돈은 내가 아닌 집의 소유주인 회사에서 내는 것이라 돈을 다시 돌려주겠다고 했다. 부랴부랴 사본을 캡처해 보내고 며칠이 더 지나서야 20여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14.
욕실 청소는 제외라니요
입주 청소는 회사 건물에서 집 계약을 마친 즉시 시작되었다. 가족들이 집을 보러 왔을 때는 청소가 한창이었다. 훗날 잡음을 방지하고자 첫 방문 날 집 곳곳의 하자 사진을 찍어두었지만, 몇 장 더 찍어두고 인사도 드릴 겸 음료를 사들고 다 같이 방문했다. 그제까지만 해도 괜찮아 보였던 천장 마감재가 볼품없이 떨어져 있었다. 원래 떨어질 것이었다는 듯한 부실한 내부에 기분이 허했다. 진행 시간이 늦어지는 관계로 하자 사진을 찍어 보내주겠다는 사장님 말에 줄줄이 집을 나왔다. 그리곤 차를 타고 직장 근처를 둘러보고, 밥을 먹으러 식당에 왔다. 메뉴는 내가 없이 못 사는 감자탕. 보글보글 끓는 감자탕을 먹기 시작하자 또 다른 문제가 터졌다.
입주 청소와 관련해서는 시작 전부터 작은 소음들이 있었다. 이것 역시 너무 급해서, 경험이 없고 서툴러서 발생하는 경우였다. 밥을 먹는데 전화가 왔다. 샤워 부스 배수가 되지 않아 욕실 청소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는데 들은 대로 물이 내려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문제가 생겼다는 건 이해했는데, 해결방안을 몰라 머리가 또 멍해졌다. 사장님은 첫 입주에 아직 하자 수리 기간이니 담당 직원이 와서 해결을 해야 청소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주말이었기에 그분들이 없었다. 오늘 당장 입주해서 살아야 하는데 청소를 못 한다니. 곧바로 관리사무소에 문의 전화를 했다. 오늘은 안 되고, 월요일이나 되어야 가능할 것 같으니 그곳을 제외하고 청소를 받으란 답변을 받았다. 오늘내일 우리 네 식구가 씻어야 하고, 그다음 날은 첫 출근인데 샤워를 못 한다니. 이게 또 무슨 난리인지.
엄연히 오피스텔 측 하자인데 답답해 화가 났다. 욕실 청소을 제외한다고 해서 청소비를 깎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업체와 관리사무실을 오가며 계속해서 중간 통화를 해야 했다. 감사하게도 소장님이 올라가 봐주셨지만 결론은 월요일에 수리를 봐야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던 감자탕 살코기는 앞접시 위에서 차게 식어있었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직접 가서 무슨 상황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다시 돌아와 보니 샤워부스는 욕실 내의 다른 부분을 청소하다 흘러 들어찬 물로 차가운 물 웅덩이가 되어 있었다. 욕실 부스 빼고는 청소가 다 진행된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부스 하나니까. 업체 사장님은 이제 거의 끝이 났으니 짐을 들고 올라와도 된다고 했다. 무거운 짐들을 네 장정이 영차영차 날랐다.
15.
뭐 하나 만족스러운 게 없는
상태를 한번 확인해 보라는 말씀에 들어가서 보았다. 옷장의 먼지가 그대로 있는 것 같았다. 몇 명의 직원이 있는데 주말이라 인원수가 적어졌고, 그 두 분 중 한 분은 중간에 본업을 하러 가야 해서 마지막엔 사장님 혼자 남은 듯했다. 두 분이 구역을 나눠서 했는데 내 눈에 보인 청소가 안 된 부분은 이미 가고 없는 분의 구역이었나 보다. 여기저기 지적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입주청소에 대한 비용을 온전히 다 지불한 것이니 어느 정도는 요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거울도 창문도 청소가 안 되어 있었다. 이 부분은 안 닦이는 거냐고 조심스레 물어본 부분들은 닦으니 전부 닦이는 곳이었다.
결국 입장 차이겠지만, 부동산에선 첫 입주니 청소할 게 크게 없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금액도 대략 기본값만 나올 거라고. 예약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정가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내부 상태에 따라 인력과 제품이 더 들어가니 어느 정도 선을 정해놓고 추가 금액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였다. 방문 후 잔금을 치를 때, 전에 들었던 금액만큼 더 보내드리면 되냐는 물음에 사장님은 이번은 그렇게 달라고 했다. 나 까지만 그렇게 받고 이후 이 건물에서 의뢰가 또 들어오면 그땐 가격을 더 높여 받아야겠다고. 이 시공사가 너무 지저분하게 마무리를 한다고 했다.
청소가 완료된 상태라기엔 닦이지 않은 창문과 상태들이 신경 쓰였다. 시간이 없어 또 다른 곳으로 가봐야 한다는 말에 얼른 보내드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인사 후 바닥을 닦는데 어찌 바닥 아래에서 계속해서 무언가 올라오는 것인지, 닦아도 닦아도 갈색 먼지가 끊임없이 나왔다. 수납장마다 남아있는 부연 먼지를 보면서 입주 청소의 범위는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졌다.(시간이 지나 엘리베이터 벽에 여기저기 입주청소 광고가 붙는 걸 보아, 지금 드는 생각은 이 건물의 입주청소를 많이 해본 곳에 의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경험이 많으면 프로세스가 더 잘 짜여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는 짐을 정리하고 엄마 아빠는 청소되지 않은 부분을 계속해서 닦아주었다. 오빠는 샤워를 할 수 없단 사실이 황당해 어떻게든 그 부분을 해결해보려 했다. 부스를 메운 물을 퍼내고 걸레로 먹여서 짜내고, 분해가 가능한 것들은 분해하고. 전문수리공이 따로 없어 보였다. 숟가락으로 고여 있던 시멘트 조각 같은 것들을 파내고 파내어도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도 부스 밖 세면대 밑에 배수구가 있어 까치발을 들고 샤워 호스를 당겨 간신히 샤워 비슷한 것을 할 수는 있었다. 새집 욕실이 오물 웅덩이가 되어있는 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후 우리가 쓸고 닦으며 보이는 집의 각종 하자들 역시 "이놈의 자식들"이란 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볼 것 없는 집이라고 느꼈다.
(다음 편)
물을 마구 뱉어내는 벽과 외풍, 직접 살아보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