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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연 Aug 25. 2023

장남에게 시집가지 마세요

예순셋 할머니의 콩고물 수다

딸만 딱 둘인 집 며느리는 보지 마세요.


아들 결혼하기 이삼 년 전 어느 날 대여섯 명쯤 앉아 있던 사우나에서 그중 한 분이 불쑥 우리에게 무슨 혼자만 아는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처럼 생색내는 표정으로 말했었다.

왜요?

누군가 이유를 물으니 안 그래도 요즘 며느리들은 외갓집 하고만 노는데  딸이 둘이면  자매끼리 짝짜꿍이 되어 친정에만 가 놀고  장모가 딸자식밖에 없으니  아들 장가보낸 시어머니 아린 심정을  몰라 준다더라고요.


옛날 나 결혼하기 전 또 다른 누군가는 나를 붙들고 장남에게는 절대 시집가지 말라고 했었다. 제사다 뭐다 이것저것 맏며느리에게 주어지는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아세요? 게다가 요즘 맏며느리는 의무만 산더미처럼 많았지 옛날 맏며느리들 가졌던 권리는 하나도 없다더라고요. 죽을 둥 살 둥 기를 쓰고 잘해 보았자 본전인 자리가 바로 맏며느리 자리라니까요.


세상사 내 멋대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인바... 나는 우리 시어머니의 두 며느리 중 맏며느리가 되었고 사우나에서 들었던 그 충고를 무색하게 만들며 정확하게 아들 없이 딸만 딱 둘인 집  작은 딸은 나의 며느리가 되었다.


장손에게 시집와 맏며느리가 되어 지금까지 사는 동안 과연 맏며느리 자리 듣던 대로 별로구나... 나는 맏며느리감도 못 되는데... 그 자리 버겁다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으나 타고난 인복 덕분인지  맏며느리이기에 겪어야 하는 뼈저리게 힘든 일이나 특별하게 어려운 일을 참고 견뎌야 하는 사건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살림하며 바깥일하는 맏며느리를 늘 안쓰럽게 생각하셨던 시어머니, 보잘것없는 작은 일을 하여도 잘한다 잘한다 맏며느리답다 해 주었던 시누이가 셋, 난 이유 없이 형님이 좋아요 하는 손아랫 동서, 이들은 젊은 날 나에게 남편보다 오히려 더 큰 응원이며 위로였었다.


하여 장남에게 시집와 한창 더운 복중 치러야 했던 두세 번의 제사나 집안에 왕왕 있던 경조사에 드는 비용을 다른 형제들보다 조금 넉넉히 내야 하는 것쯤은 내게 별일 아니었다.


엊그제  아들 며느리 결혼 한지 딱 삼 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난 삼 년 동안 딸만 둘 인 집 며느리를 보면 겪을 거라던 심술 나는 일이나 마음 상하는 일은 천만다행 아직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하고픈 말 안 하고 속으로 꿍치고 있지 못하는 것은 묘하게 시에미를 닮은 며느리가 얼마 전

어머니 너무 오라 가라 안 하시니 저희 오는 게 귀찮아 싫어 그러시나 가끔 서운할 때가 있어요.

아 그래? 그럼 매주말 빼먹지 말고 손주 데리고 나 보러 올래? 농을 하며 웃었더니 아니요. 아니요.

며느리는  손사래 치며 덩달아 헤헤 웃었다.


요즘  나는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 남편과 자식에게 까지도 너무 가까워 뜨거워져 데이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멀어져 차가워 얼어붙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 보려 애쓰고 있다.


내 비록 그것이 나에게 쉽지 않은 일임을 익히 알고 있기는 하나...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저 미적지근한 온도의 맏며느리 시어머니가 되고 싶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갑자기 없어져 버려도  아쉬울 것 없어 빈자리 크지 않은 아내로 어머니로 친구로... 그렇게 살다 어느 날 훌쩍 떠나고 싶은 것이다.


태어날 때  활활 타는 불화로 하나를 가슴에 담고 태어난 내가 남은 시간 알맞은 온도를  잘 맞추며 살아갈 수 있을지 어떨지 내 딱히 확신은 없으나...

그저 순리대로 살지 못하면  나만 아프더라는... 아등바등해 보야 결국 그 자리더라는...  살아온 날들의 경험을 되새기며 애는 한번 써 볼 정이다.

적지 않은 내 나이에라도 한번 기대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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