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낯선 환경, 낯선 사람이 주는 새로운 감정
말하지 못할 고민, 속마음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하기 힘든 고민들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오히려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심각한 고민이 있을 때, 혹여나 상대방의 마음에 부담을 줄까 봐 아니면 비밀이 밝혀지게 될까 봐 말을 아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오히려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는 평소에는 말하지 못할 고민들을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따뜻한 햇살이 함께했던 6월의 어느 여름날, 독일 쾰른으로 2박 3일 여행을 떠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마지막 날 밤, 예정되어 있던 파티는 지친 몸이 거부해 방에서 푹 쉬기로 결심했다. 그러던 중 같은 방을 쓰는 두 명의 친구가 들어왔다. 전 날도 밤늦게까지 파티를 하느라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을 처음 만난 것이었는데 그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각자 자신이 살아온 나라에서의 이야기, 좋아하는 취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야기하던 중 어느덧 주제는 사뭇 진지해졌다. 고등학교 시절 가졌던 학업 스트레스, 현재 이성 친구에 대한 고민, 미래에 하고 싶은 일 등 다양한 각자의 고민거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평소에 가지고 있던,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들 사이의 고민을 자연스레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고민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나서야 각자의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간단히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버스로, 각자의 사는 곳으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안녕, 모든 일이 다 잘되길 바랄게.
작별인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타고나니, 기분이 묘했다. 만난 지 불과 하루도 채 되지 않은 친구가 잘되길 바라고, 알게 된 지 몇 시간도 안되어 내 고민을 이야기했던 나의 낯선 모습에 놀랐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나의 고민들을 털어놓아 느낀 시원함과 낯선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움이 되었다는 뿌듯함이 공존하는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
이 현상은 1975년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변호사인 직 루빈(Zick Rubin)이 논문에서 처음으로 설명한 현상으로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보다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과 같이 낯선 사람에게 사적인 일들이나 고민들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심리학 용어 중 하나인 “중요한 이방인(Consequential Stranger)”과도 관련이 있는데 이는 그리 친하지 않은 적당히 거리감 있는, 느슨하고 확장된 네트워크를 뜻하는 용어로, 나와 친밀한 사람들로 구성된 긴밀한 네트워크뿐 아니라 이러한 관계도 심리적 건강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 또한 낯선 곳으로 향하는 여행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닐까. 익숙한 공간과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는 차마 말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들.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다가 목적지에 도달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나와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이 둘이 공존하며, 가까운 사람에게는 차마 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이야기나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아픈 이야기를 해도 서로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런 관계에서 모종의 시원함과 뿌듯함을 느끼고 나는 기차에서 또 다른 “중요한 이방인”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