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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el Feb 20. 2023

뉴욕에서 패션모델이 되려면?

미국 취업비자 O1 발급을 위한 절차들

몬트리올에서 모델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원대한 목표는 바로 뉴욕에 에이전시를 구하는 것이었다. 대도시인 만큼 모델들도 많지만 일도 많아 가장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곳이 바로 뉴욕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처음 가본 뉴욕. 고작 하루 동안 돌아다녀 보았지만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곳이었다. 젊은 시절 꼭 한 번은 이곳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달 전 드디어 뉴욕 에이전시를 구했다. The Lions Management. 파리에 있었던 시기라 직접 대면하지는 못하고 줌으로 만났다. 나란히 앉아있는 세 분과의 인터뷰였다. 에이전시의 특성은 바로 모델로서 일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개성과 관심사를 살려 함께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방향이나 혹은 연예계의 다른 분야로도 진출하고 싶으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고 좋았다. 그리고 바로 내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나의 특성이나 취미는 무엇인지, 이제껏 모델로서의 활동을 어땠는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등의 심도 있고 총체적인 질문들을 연이어 받아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솔직하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후 캐나다와 스페인에서의 학교생활을 통해 세계적인 문화를 접해온 배경과 건강한 식생활과 운동으로 몸과 마음을 가꾸는 것에 대한 열정을 어필했다. 어떤 브랜드들과 일을 했냐는 질문에는 머릿속이 하얘져  제대로 답하지 못했지만 이미 내 사진들을 본 후이니 괜찮기를 바랐다.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인터뷰였지만 워낙 크고 명성 있는 에이전시라 과연 나처럼 새내기인 모델을 원할까 싶어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통화를 끝내고 집에 가는 길, 단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바로 나와 계약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메시지를 받자마자 파리의 궁상맞은 전철역에서 혼자 온 얼굴이 환해지는 순간이었다. 믿을 수 없다, 그야말로 I can't believe it!이라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사실 진짜 계약서를 받고 사인하기까지는 그로부터 몇 주가 걸려 완성된 계약서가 내 눈앞에 있을 때까지 믿을 수 없었다. 직접 뉴욕에 가 에이전시에 갈 때에야 비로소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에이전시를 구하는 것은 뉴욕 입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취업비자를 따내야 한다. 패션모델들을 위한 비자는 바로 "O-1B: Individuals with an extraordinary ability in the arts or extraordinary achievement in motion picture or television industry;"이다. 

O-1 Visa: Individuals with Extraordinary Ability or Achievement

The O-1 nonimmigrant visa is for the individual who possesses extraordinary ability in the sciences, arts, education, business, or athletics, or who has a demonstrated record of extraordinary achievement in the motion picture or television industry and has been recognized nationally or internationally for those achievements.

출처: https://www.uscis.gov/working-in-the-united-states/temporary-workers/o-1-visa-individuals-with-extraordinary-ability-or-achievement


한마디로 보기 드문, 놀라운, 비범한 능력을 지닌 외국인들을 위한 비자이다. 넘치는 모델들 속에서의 유별난 능력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보통 유명한 잡지에 출판되었거나 럭셔리 브랜드들과 일한 경력이 있거나 세계 곳곳에 에이전시가 있거나 하는 바로 능력과 성과에를 뒷받침해야 한다. 나는 모델 일을 시작한 지 아주 오래되지도 않았고 아직 패션쇼를 하지도 않았지만 운 좋게 지방시, 까르띠에 같은 브랜드 캠페인에 나타났던 이력이 있어 그래도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뉴욕의 에이전시가 나와 계약하고 싶다고 결정했으면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었으니 까이 지 않을까 했다. 

비자를 신청하는 방법을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미국 에이전시를 구해 계약을 한다.    

     에이전시 내에 비자를 담당하는 에이전트와 변호사에게 필요한 서류들을 보낸다. 서류 체크리스트는 여권 사본, O-1 Bio, Worldwide Agency Statements, Recognition Letter Signatory, Tearsheets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류가 모두 구비되면 변호사가 비자 신청을 한다.    

     비자가 승인되면 미국 대사관에서 인터뷰 날짜를 잡는다.    

     대사관에서 인터뷰, 지문 등록 등을 하고 여권을 대사관에 놓고 온다(visa stamp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비자가 들어있는 여권을 돌려받기를 기다린다.    


서류 중에서는 특히나  Tearsheets가 관건이다. 바로 이미지들을 모으는 작업이다. 포트폴리오 촬영을 위한 test shoot으로부터의 사진은 쓸 수 없고 campaign, ecommerce, editocial, show 등의 돈을 받고 한 일이나 출판된 사진들만 써야 한다. 그리고 그 클라이언트들에게서 보수를 받은 기록을 financial statement로 증명하도록 함께 첨부한다. 최소 50장의 사진을 첨부해야 하는데 나는 결국 70장 가까이의 사진을 고르게 되었다. 미국 정부에 제출하는 것임으로 최대한 화질이 좋고 실제로 광고나 잡지에 나타난 대로 사진을 찾아 넣어야 했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또 다른 것은 바로 Recognition Letter Signatory이다. 내가 성공적인 모델이라는 것을 제삼자들을 통해 보다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함이다. 클라이언트들에게도 사인하도록 요청할 수 있지만 나는 파리에서 1년 넘도록 함께 일한 Premium Models의 메인 부커에게 의뢰하기로 하였다. 사실 이러한 서류들은 미국 에이전시의 변호사가 모두 준비하고 처리하여 내가 직접적으로 해야 할 것은 없었다. 주로 클라이언트들에게 의뢰하면 답변을 받는 데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다행히 부커로부터 신속한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O-1 Bio란 미국 에이전시의 변호사가 나를 대변해 편지와 각종 서류들을 준비할 때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었던 듯하다. 언제 어떻게 모델 활동을 시작해게 되었는지, 평균적인 수입과 가장 보수가 높은 일은 무엇이었는지, 유명한 브랜드나 사진작가와 일한 경험이 있는지, 왜 자신이 모델로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지 등의 질문들이 있었다. 진솔하되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스럽게 답변하라고 적혀있었다. 자기소개서 쓰는 느낌으로 열심히 했다! 

서류가 다 준비되어 제출되었다고 들은 것은 1월 11일 무렵이었다.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전에 Tearsheets와 O-1 Bio를 완성해 미국 에이전시에 전달했고 1월 초부터 변호사가 Recognition Letter Signatory와 다른 서류들을 준비했었다. 적어도 한 달은 걸리겠지 싶었는데 1월 20일 아침에 비자가 승인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열흘도 안 되어서 벌써 승인이 되었다니! 하지만 승인이 되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이제 in-person visa interview를 미국 대사관에서 하도록 스케줄 해야 했다. 인터뷰를 위해서는 일단 DS 160 Form을 작성해야 한다. 

기본적인 신상정보와 범죄 경력 유무, 미국 과거 방문과 비자 신청 여부, 현재 신청하는 비자의 종류와 미국 입국 계획 등 여러 가지를 적고 사진도 첨부해야 했다. 정말 형식적이고 법적인 느낌이 들어 긴장을 바짝 하고 모든 정보가 정확하도록 몇 번씩 체크하며 완성했다. 

그다음은 바로 언제 어디서 인터뷰를 하는지 정해야 한다. 몬트리올에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지만 몬트리올은 긴급상황이 아니면 여권과 모든 서류를 소포로 보내고 돌려받는 데는 6주가량 걸린다고 했다. 두 달 정도나 여권이 없는 상태로 아무 데도 못 가고 발목 잡혀있는 것은 상책이 아니라고 미국 에이전시와 모두가 동의했다. 토론토와 오타와, 다른 캐나다 주의 대사관도 확인해 보았지만 대부분 두세 달 후에야 인터뷰가 가능했다. 그래서 파리와 런던, 밀라노까지 확장시켜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1월 23일, 런던에서 바로 다음 주 월요일에 인터뷰를 스케줄 할 수 있었다고 연락받았다. 런던 에이전시는 지난달 줌콜로 구하고 계약서도 썼지만 아직 한 번도 직접 만나보지 않은 상태였다. 런던에는 생전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말이다. 비자 인터뷰를 위해서 런던까지 가야 한다니! 처음에는 너무 무리스럽고 갑작스럽게 느껴져 당혹스럽고 걱정이 밀려왔지만 런던 에이전시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점점 기분이 나아졌다. 이김에 런던 에이전시와의 관계를 쌓고 캐스팅도 다니고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겸사겸사 생산적인 여행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델 아파트는 마침 꽉 차 있어 부랴부랴 호텔이나 에어비엔비를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비자 인터뷰에 준비해야 할 서류는 이미 작성했던 DS 160 Form, 비자 승인 페이지, 여권, 증명사진 등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1월 29일 일요일, 런던에 도착했다. 런던에서 일하기 위한 비자도 공항에서 받아야 했는데 에이전시에서 보내준 서류들을 보여주니 몇 분도 걸리지 않는 절차였다. 여권에 3달 동안 일할 수 있는 비자 스탬프를 받았다. 

그다음 날 30일 월요일, 아침 아홉 시에 인터뷰가 잡혀있었다. 

멀리서부터 줄 서있는 사람들이 보여 늦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짐 검색대는 효율적으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휴대폰이 켜져 있고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로비에서 번호표를 받아 위층으로 이동해 기다렸다. 일단 창구로 가 서류들을 확인받고 지문을 등록하고 다른 창구로 가 기다리라고 지시받았다. 처음 창구는 서서 하는 식이었는데 그다음 창구에는 의자가 놓여있어 아 바로 저곳에서 앉아 기나긴 인터뷰를 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비자 인터뷰의 예상 질문과 어떻게 Extraordinary Ability or Achievement를 어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며칠 전부터 검색해 보았던 내용들을 되새기며 긴장한 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서류를 건네고 내가 어떤 직종에 종사하는지를 물었다. Fashion model. 그러고는 이제껏 잡지에 등장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파리에서 ELLE USA에 출판된 사진을 찍었다고 대답하던 와중 지문을 등록하라고 했다. 말문이 끊진 채 손가락을 대는 찰나, 면접관은 내게 비자가 모두 승인되었고 여권은 일주일 뒤에 돌려받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인터뷰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간략하게 끝나버렸다. 지난 일주일 동안 걱정했던 것들이 모두 날아가며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 붕 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밖에 나오자 대사관은 찬란히 비치는 아침햇살을 맞아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그날 오후에는 에이전시와도 만나고 첫 캐스팅도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인터뷰는 끝냈지만 아직도 언제 여권을 돌려받을지는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처음 런던에 올 때는 일단 10일 정도 머물을 호텔만 예약했다. 혹시 모델 아파트에 자리가 생길지도 모르고 여권을 일찍 받으면 바로 뉴욕으로 갈 수도 있으니. 그래도 적어도 여권을 받는 데 일주일은 걸리겠지 싶어 다음 주 화요일까지는 확실히 런던에 있겠더니 싶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바로 다음날 저녁 여권을 이튿날에 찾으러 갈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터뷰를 한지로부터 채 48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대사관에 다시 가는 것이 아니라 지정된 우체국으로 ID를 들고 가면 된다고 했다. 캐스팅 후 수요일 오후, 여권을 돌려받았다. 우체국에서 바로 여권을 열어 비자를 확인했다. 여권 한 면을 차지한 채 자랑스럽게 비자가 붙어있었다. 이렇게 빨리 처리되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고 모든 것이 효율적인듯한 대도시 런던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당장 미국 에이전시에 소식을 전했다. 

바로 뉴욕에 가야 하나 싶었지만 뉴욕에서는 막 패션위크가 시작되는 찰나여서 패션위크를 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고 이 시즌에는 패션위크 때문에 다른 일들은 많지 않은 시점이어서 런던에 좀 더 있기로 결정하였다. 다행히 에이전시 친구분의 집에서 지내기로 해 숙소 문제도 해결되었다. 

미국 에이전시와의 첫 줌콜로부터 (크리스마스와 새해 휴일을 제외하면) 한 달 내외로 성공적으로 O-1 비자받기를 완료했다. 여러 운이 따르고 에이전시 분들이 꼼꼼히 챙기고 도와주신 덕이었다! 드디어 곧 뉴욕에 갈 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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