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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el Mar 06. 2023

3일 만에 맨해튼 집 구하기


이제야 3월의 시작이라니! 시작부터 박진감 넘치는 2023년이었다. 두 달만 지났다는 게 안 믿길 정도로 벌써 여러 일들이 많았다. 몬트리올에서 일하다 급하게 런던으로 떠나게 되었다. 얼마나 지낼지도 확실하지 않았던 터라 옷도 넉넉하게 싸지 않고 캐리어 하나만 달랑 들고 가 부족한 대로 3주 넘게 지내다 돌아왔다. 그리고 입국한 지 딱 일주일 만에 다시 출국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뉴욕으로. 




La Guardia 공항으로 착륙 준비할 때 보이는 맨해튼




미국 취업 비자 O1을 받으러 런던까지 다급하게 다녀온 보람이 있을 정도로 국경을 넘기는 순조로웠다. 몬트리올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는 몬트리올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한다. 뉴욕에 내려서는 아무런 추후 절차 없이 바로 짐 찾는 곳으로 나간다. 심사 때는 어디에 거주하나, 미국에는 무슨 목적으로 가느냐라는 질문이 다였고 미국에서 패션모델로 일할 수 있는 비자가 여권에 있다고 하자 바로 확인하고 통과할 수 있었다. 


대부분 캐나다에서 유럽으로 넘어가거나 한국으로 가는 장거리 비행 여행을 했던 터라 뉴욕으로 가는 한 시간 반 남짓한 비행은 아주 짧게 느껴졌다. 새벽부터 일어나 짐 싸기를 마무리해 워낙 피로해 잠에 빠지려던 찰나 이미 도착하고 있었다. 


체크 인 했던 캐리어 두 개도 재빨리 나와 uber를 타러 공항 주차장 2층에 위치한 app based pickup area로 향했다. uber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시간 때라 택시가 조금 더 저렴하다고 들었지만 해외여행을 다닐 때마다 값을 높여 받으려는 택시기사들에게 속아 넘어간 경험과 현금보다 항상 카드를 사용하는 습관과 팁을 얼마나 해야 할지 골치 썩고 싶지 않았던 터라 손쉬운 uber를 택했다. 무거운 캐리어도 전혀 꺼리지 않고 번쩍 들어 트렁크에 실어주는 드라이버를 만나 안도하고 맨해튼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길의 외곽지역이 정돈되고 쾌적한 나라를 찾기란 꽤 어렵다. 아마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길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전경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탁 트인 바다와 뻘, 농지가 보이고 공사현장과 공장들이 곳곳에 있고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보이는 고층빌등들이 솟아있는 것이 기억난다. 파리 CDG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딱 봐도 위험하고 낙후되어 보이는 동네들, 쓰레기더미들, 녹슬고 헐어가는 싸구려호텔들, 고전적인 파리 특유의 건축물들이 대부분인 arrondissement 안으로 진입해야 머릿속에 그렸던 낭만적인 파리의 풍경이 나타난다. 런던의 Gatwick공항에 내렸을 때는 일단 런던까지 너무나 멀어 당황스러웠다. 차를 타면 한 시간 좀 더 걸려 100 파운드 가까이 나오는 거리으나 다행히도 기차를 타면 거의 같은 시간 안에 갈 수 있었다. 캐리어가 하나만 있었기에 비교적 손쉽게 기차에 타 시골 같아 보이는 한산한 주거지역을 한참 지나야 도시에 들어섰다.


뉴욕 공항에서부터 도심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불우하고 위험해 보이는 동네들을 가로지르는 길이었지만 오래되도 개성 있어 보이는 점포들과 사람 사는 맛이 나는 풍경들이 보였다. 브루클린과 가까워지자 저 멀리 맨해튼의 고층빌딩들이 보이고 교통이 혼잡해지며 정말 뉴욕에 도착했구나 싶었다. 늦은 오후라서 인지 워낙 차가 막혀 45분 정도 걸렸지만 막히지 않을 때는 20분 내외의 가까운 거리라고 한다. 







뉴욕은 위험천만하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 도착할 때쯤 어수룩해지자 긴장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혹시나  엉뚱한데 도착해 혼자 캐리어들을 끌고 헤매는 위기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숙소 앞에 도착할 때까지 구글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짐을 내리고 문 앞에 서자 곧 숙소 호스트가 내려오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하고 4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으로 20kg이 넘는 캐리어 두 개를 끌고 올랐다. 스튜디오 아파트먼트에 들어서자 비로소 안도감이 들었다. 3일 만에 급박하게 구한 숙소였지만 예상보다 훨씬 넓고 아늑했다. 이번에도 운이 따라주었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캐나다로 행했을 때부터 나는 집을 구하는데 꽤나 제주가 있었다. 캐나다의 서부 한 도시로 갈 때는 맨 처음이니만큼 걱정이 많아 최대한 안전하고 싶어 홈스테이를 구했다. 젊은 캐나다인 부부가 호스트 하는 곳이었다. private bedroom에서 지내며 화장실은 함께 쓰고, 아침으로는 집에 구비되어 있는 시리얼이나 과일을 챙겨 먹고 점심으로는 밖에서 먹던가 집에 있는 재료들로 간단히 싸 먹을 수 있고 갓 만든 저녁 식사까지 제공되는 것들을 모두 포함해 한 달에 $800였다. 아직 영어에도 능통하지 않고 어렸던 때라 외롭고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걱정이 많은 때였지만 친절한 호스트 부부 덕에 편안한 첫 한 달을 보낼 수 있었다. 핸드폰 개통과 은행계좌 계설 때도 함께 가 도와주었고 친척들과의 식사 모임, 심지어는 교회에도 초대받았었다. 다운타운에서 영어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어 한 달 후에는 다운타운 안에 위치한 곳으로 옮겨가게 되었지만 아직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 곳이다. 


그 후 캐나다의 동부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어 첫 두 학기는 기숙사에서 보냈다. 그 대학을 택했던 큰 이유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워낙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1학년때부터 교환학생이 되기 위한 학점관리와 필수수업들을 들었고 당장 2학년 때 1년 동안 스페인 마드리드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여름방학 내내 집 구하기 대작전이 펼쳐졌다. idealista라는 웹사이트가 가장 많이 쓰이지만 직접 숙소를 보지 못하고 캐나다에 있는 상태로 확정해야 하기에 믿을만한 곳을 찾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추천했던 보다 검증된 호스트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마음에 드는 곳들을 추리기 시작했다. 스페인은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물가가 싸기로 알려져 있지만 수도 마드리드에서 저렴하고 쾌적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대여섯 명도 넘는 사람들이 한 이마트먼트를 셰어 하는 형식으로 나온 곳들도 많았고 혼자 지내는 스튜디오를 구하자니 너무 값비쌌다. 그러다 El Retiro 공원 바로 가까이 있는 곳의 private bedroom을 발견했다. 한 달에 350 유료 밖에 되지 않는 가격과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사진들에 이끌려 호스트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전직 교사였던 스페인 아주머니였다. 나와 다른 대학생 한 명이 지내게 될 예정이라고 들었다. 두 학기 내내 그곳에서 지내기로 결정했고 얼마 뒤 떨리는 마음으로 1년 치 짐을 끌고 도착했다. 마드리드의 중심가들과 바로 가까이 있지만 공원을 가로질러 위치해 있어 조용하고 평범한 현지인들이 사는 안전하고 정다운 느낌의 동네였다. 아직도 그리운 스페인의 신선하고 맛 좋은 과일가게들 frutaria와 식료품점들이 바로 코앞에 널려있었다. 내 방은 작았지만 아늑하고 깨끗했다. 다른 방에서 지낼 로마니아출신의 건축을 공부하는 예쁜 동갑내기 여학생과도 만나 금세 친해졌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점은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해 주시는 분이 오시고 빨래까지 해주신다는 것이었다. 안전하고 깔끔한 곳에서 지낸 두 학기였다. 




그리고 저번주, 뉴욕에서 갑작스럽게 한 달을 지낼 곳을 찾아야 하게 되었다. 미국 취업 비자 준비를 시작한 두 달 전부터 곧 뉴욕에서 지내게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언제 얼마나 있게 될지는 정해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였다. 그래도 뉴욕행을 고대한 지 오래라 살 곳은 어떻게든 찾도록 하고 되도록 빨리 가도록 하기로 하였다. 집을 구하기도 전에 이사날짜를 정한 셈이었다. 


하지만 뉴욕에 집을 구하기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파리 에이전시와는 달리 뉴욕 에이전시는 모델 아파트먼트가 하나도 없는 대신 집 찾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하였지만 에어비엔비 추천 리스트 등을 보내주는 것에 지나지 않아 혼자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리 건너에 있는 브루클린은 좀 더 저렴하고 residential 한 지역이여 살기에는 더 좋을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캐스팅들은 주로 맨해튼에 있다. 파리와 런던에서 무수한 시간을 지하철과 버스에서 보낸 것에 넌더리가 나 뉴욕에서까지 매일 몇 시간씩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특히나 코로나 때 발생했던 지하철역에서 일어나던 폭행사건들에 대한 뉴스를 보았던 기억이나 지하철에 대한 무서움이 크기도 했다. 다른 도시들에서도 술 취한 사람이 크게 떠들거나 노숙사들이 가까이 서성일 때면 바싹 긴장하곤 했었다. 그래서 되도록 맨해튼 안에서 집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에이비엔비에서 마음에 드는 곳들을 favorites 리스트에 담았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들을 꼽자면... 


- private bathroom: 모델 일을 시작한 뒤로 욕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욱 늘었다. 캐스팅 준비를 할 때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스킨케어루틴을 천천히 꼼꼼히 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단순히 직업적이라기보다도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온전히 나를 위한, 나를 아끼는 시간이라는 느낌으로 더욱 여유를 부리며 하는 하나의 의식에 버금가는 시간이다. 갑작스럽게 스케줄이 생길 때도 많아 어서 나가야 하는데 화장실을 다른 사람이 쓰고 있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 역시 극구 피하고 싶다. 그래서 무조건 혼자 쓰는 욕실이 있는 곳을 옵션으로 선택해 검색했다. 


- central location: 맨해튼은 워낙 커 어디 한 곳이 central 하다고 콕 집을 수는 없지만 일단 센트럴바크 북쪽의 할렘가는 피하고 에이전시는 맨해튼 남쪽에 위치해 있으니 거기서 아주 멀지 않은 곳으로. 나는 또 공원에 가까이 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어 센트럴파크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곳. 


- 마지막으로 합리적인 가격: 뉴욕에 아직 얼마나 장기적으로 있을지 몰라 처음부터 너무 값비싼 곳에 돈을 쓰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화장실을 혼자 쓰는 옵션을 찾으려니 대부분 스튜디오들이 나왔지만 괜찮아 보이는 곳들은 한 달에 $4000 - $6000을 육박하는 가격대였다. 최소 세 달이나 일 년 정도 장기간 계약을 해야지 좋은 곳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는 듯 보였다. 


에어비엔비는 한 달간 예약하면 약간의 할인이 되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단위로 책정되는 만큼 가격이 비싸고 예약 요청을 해도 웹사이트에는 나타나지 않는 사정에 따라 호스트가 수락하지 않을 수 있어 하루이틀 안에 좋은 곳을 구하기는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리뷰가 아예 없거나 몇 개밖에 없는 곳은 믿을 수 없고 리뷰가 많으면 좋은 리뷰가 있는 만큼 나쁜 리뷰도 있어 쉽게 한 곳으로 마음을 정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다 떠오른 곳이 바로 헤이코리안이라는 웹사이트였다. 얼마 전 세계여행하는 부부의 유튜브채널에서 뉴욕 한 달 사이에 대한 영상을 보았는데 그분들이 집을 찾은 곳이 바로 이 사이트에서였다. 사이트에 들어가자 원래 세입자가 사정이 생겨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할 때 대신 살며 렌트비를 내는 식의 sublease가 특히 활성화되어 있었다. 내가 찾고 있는 3월 한 달에 대한 sublease도 꽤 많이 올라와있었다. 집 사진과 대략적인 위치, 가격에 대한 정보 끝에 이메일주소나 심지어는 카톡 아이디까지 적혀있었다. 하루이틀 내에 집을 찾아야 하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희소식이었다. 

웹사이트를 둘러보기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Hell's Kitchen이라는 맨해튼의 센트럴파크 밑 서쪽부근에 위치한 곳에 있는 마음에 드는 스튜디오를 찾아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건물 4층에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사진상으로 내부가 깔끔해 보이고 특히 막혀있는 벽난로 위의 벽돌 기둥들에 혹했다. 카카오톡을 보내자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직 비어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세부사항들을 더 물어본 후 오후에 전화통화 후 최종 결정을 하기로 하였다. 통학하느라 너무 힘이 들어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학교 근처로 옮기려 한다는  한국 여성분은 사근사근했고 금세 믿음이 갔다. 사전에 직접 집을 보러 갈 수 없는 상황에서 계약금을 보내고 계약서에도 사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사기를 당할 위험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과 위치, 신뢰할 수 있는 주인이라는 직감을 믿기로 하고 재빨리 결정을 내렸다. 


문의했던 또 다른 스튜디오는 지금 돌아보니 사기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웹사이트에 기재되었던 사진은 어딘가에서 퍼온듯한 불분명한 빌딩사진과 세입자가 하나도 없었을 때 찍은 듯해 보이는 화장실 사진뿐이었다. 기재된 이메일 주소로 세부사항을 물어보니 곧 답변이 왔지만 빠른 진행을 위해 요청했던 카톡아이디는 받지 못했고 계약금 송금 정보만 돌아왔다. 그것도 상대의 이메일만 있으면 송금이 가능한 온라인 플랫폼 중 하나였다. 본명이나 은행에 대한 정보들은 필요가 없으니 간단한 만큼 안전하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 정말 사기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은 바로 이메일주소였다. 세입자를 구하는 용도로 만든듯한 뉴욕서브리즈라는 구글 메일주소였다. 신상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웹사이트에 광고를 기재하기만을 위해서 특별한 이메일주소까지 만들 터인가! 믿을 수 없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3일 만에 맨해튼 집 구하기에 성공했다. 에이전시에 가는 데는 지하철을 한번 타자 20분이 걸렸고 첫 캐스킹은 50분 거리에 있어 걸어가 보았고 센트럴파크에도 걸어갈 수 있다. 전기밥솥은 있는데 포크는 없다는 게 한국 분의 집을 빌리는 우스운 점이다. 도시 한복판인데도 소음이 심하지 않고 꽤 안전한 동네로 느껴져 안도감이 든다. 이번에도 집을 구하는데 운이 따라주었다! 




캐스팅으로 걸어가던 길에 본 High Line 으로부터의 전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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