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무렵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 체육시간은 늘 곤욕이었다. 운동복을 입으면 허벅지가 두껍다거나 종아리가 두껍다거나 하며 욕을 먹었다. 책상도 의자도 어떤 가릴 것도 없는 그곳에서는 움직임 하나하나가 욕먹을 이유가 됐다. 운동장은 고통스러운 공간이 됐고 나는 오랜 시간 운동복을 입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학교는 다른 애들과 똑같지 않으면 비난 당하기 쉬운 곳이었다. 공을 잘 던지거나 잘 차는 여자애들은 체육대회 반 대항전에서나 유용한 괴물 취급을 당했다. 운동을 싫어한 건 아니었지만 굳이 운동장에 나가지 않았다. 운동을 하고 싶다는 말도, 하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조금이라도 더 소속되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수치심과 조바심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 대학에 입학하고, 운 좋게도 멋진 여자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받아들여지면서 소속감이란 게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에 멈춰있던 마음은 더디지만 부지런한 성장을 시작했다. 과거의 구멍이 메꿔지자 이제 그것을 놓아버리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어디로, 어떻게 가고 싶은가는 막연했다.
어느 날, 너른 바닷가를 홀로 달려 나가는 여자를 보았다. 그는 무척 자유로워 보였다. 그 자유로움이 내가 줄곧 열망해오던 것임을 깨달았다.
달리기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나와 같은 열망을 가진 여자 친구들과 함께.
아침 7시 30분, 학교 운동장. 울타리 하나 없는 그 공간을 남몰래 침범하는 기분으로 들어갔다.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해도 간격이 금방 벌어졌고 좁혀졌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멀어질 때마다 당황스러웠다. 잠시 멈추거나 갑자기 무리해서 속도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곧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어떤 속도로 달리던지, 어떤 몸으로 달리던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며 따로 또 같이 달렸다. 달리는 궤적을 따라 발자국이 가득해졌다. 낯설던 운동장은 그때 비로소 안전한 곳이 되었다.
같이 하던 달리기는 혼자만의 달리기로 이어졌다. 혼자 달리는 동안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현재를 달리는 몸, 과거와 미래를 분주하게 쏘다니는 마음이었다. 습습- 후후- 내뱉던 숨소리는 그 둘의 간격에 비례해 불규칙해졌다. 몸이 앞으로 달려나가는 동안, 마음은 과거에서 건져 올린 수치심으로부터 이리저리 도망가기 바빴고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조바심에 허덕였다. 엉망인 숨소리, 엉망인 마음. 나는 집념보다 잡념과 가까운 러너였다.
나 하나만 의식하면 되는데, 나는 내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게 달리기로부터 도망할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친구들과 달렸던 운동장을 떠올렸다. 그리고 후우- 하고 숨을 길게 내뱉었다. 더 내보낼 숨이 없을 때까지 길게, 고집스럽게. 두 세번 반복하면 엉망이던 숨소리는 다시 제 리듬을 찾아 돌아가고, 마음의 진폭도 다듬어졌다. 달리다 보면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릴 적 나와 친구들을 교실에 묶어둔 말들은 지나간 시간만큼 녹이 슬었다. 우리는 그만큼 힘이 세져서 그것들을 끊어내고 함께 앞으로 달려나갔다. 숨이 차면 잠시 멈췄다 시작하면 됐고 벽이 나타나거든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오르막길은 조금 천천히 우직하게 달리고, 내리막에서는 금방 날아갈 것만 같이 달렸다. 서로의 속도를 존중했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졌다. 따로 또 같이 달리면서 우리는 열망하던 대로 자유로워졌다.
너른 바닷가를 달려 나가는 여자.
그를 따라 달려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