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보내는 편지
괜찮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들끓던 S에게 보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년 후의 당신입니다. 보통은 편지를 시작하며 건강한지, 평온한지 안부를 묻는 편이지만 이미 알고 있으니 묻지 않겠습니다.
저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압니다.
당신은 자주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그건 당신의 버릇입니다. 다른 이의 다가올 행복과 평화는 그렇게 굳게 믿으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한 마디의 축복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넘치게 축복하는 만큼 좌절하는 당신을 압니다.
당신은 자주 감탄하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어 부족한 데 없이 넉넉히 아낄 때 생생히 살아있다고 느끼고, 길가에 자라난 풀조차 꼼꼼히 살피며 그게 어떻게 특별히 아름다운지 말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서는 아름다운 것을 찾지 못해 슬퍼하는 당신을 압니다.
당신은 그것보단 나은 사람일 수 있었는데, 그럴 수 있는 줄을 몰라서 슬픈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밖에 되지 못해 유감스럽지만,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뭐든 서서히 쌓아 올린 결과로 지금 우리가 되었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시간이 또 흐르면 나아져 있을 거라고 믿어봅시다.
그때 당신이 적었던 편지 중에서 지금까지도 제 기억에 남아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얘 너 행복하니. 난 정말 네가 행복하면 좋겠다. 좋은 꿈도 꾸고 맛있는 것도 때맞추어 잘 먹고 건강해서 열심히 힘차게 막힘없이 흐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대상이 힘차게 막힘없이 흐르기를 바라며 축복하던 당신이지만 그 축복을 지금의 제가 받아 가도 괜찮을까요. 지금 이 편지가 당신에게 닿을 리 없으니 당신은 제 물음에 대답할 수 없겠지요. 그렇다면 제 좋을 대로 해석하겠습니다. 당신은, 저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잘 살아가고 싶잖아요. 사랑하는 것들을 오래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당신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를 축복해야 합니다.
사랑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에요. 저는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사랑을 했을까 싶습니다. 자신을 소진해가면서까지 그렇게나 많은 것을 사랑하는 일을, 어떻게 했을까요. 2 년 후의 S에게는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지금도 아주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당신과 저 사이에는 미약하게나마 변화가 있습니다. 거리낌 없이 사랑해버리고, 그 무거운 마음을 끌어안는 일에 모든 기력을 써버리는 태도가 이제야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른 누군가를 저보다 더 사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 자신을 다른 누구보다 사랑하고 싶어요.
무턱대고 용감했던 그 날의 당신이 있을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약한 부분을 명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당신이 일찌감치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타인에게 함부로 대해질 위험과 거리를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봅니다. 그랬다면 시간이 흐른 지금 저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었을까요? 불현듯 책임감이 솟습니다. 이 편지를 꺼내어 읽을 2년 후의 S가 저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호수가 되어 무엇이든 비추며 무엇이든 되고 싶어 했던 당신과 달리, 저는 강이 되고 싶습니다. 너른 바다가 되기엔 외롭고, 평온한 호수가 되기에는 막힘없이 흐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고요한 듯하지만 부지런히 새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강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은 호수가 되고 싶은 자신을 좋아하는 데에 실패했지만, 저는 강이 되고 싶은 자신을 좋아하고 응원합니다.
당신은 자라서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됩니다. 이 사실을 당신이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 궁금합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기약 없는 회신을 기다리며 온 마음 실어 보낸 축복의 말들, 잘 읽었습니다. 늦었지만 저도 당신을 위한 축복을 담아 이 편지를 보냅니다.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을 의문들에 대한 답변이 되기를 바라요. 그것들은 정말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행복하세요. 힘차게 막힘없이 흐르며 살아갈 수 있어요, 당신도.
이 편지를 부치지 않겠지만 이미 당신에게 닿은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S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