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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Mar 11. 2023

나의 글쓰기 동료에게

안녕하세요, H. 오늘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기를 바랍니다. 이번에는 글쓰기를 주제로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군요. 그렇다면 저는 H에게 질문을 던지고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언제 가장 글이 잘 써지나요?

저는 아침 시간에 일어나서 쓰는 글을 좋아해요. 요즘에는 그보다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못 하고 있지만, 꾸준히 아침 글쓰기 루틴을 이어갔을 때의 경험이 무척 소중하게 남아있습니다.  그 시간에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고요히 존재할 수 있어요. 키보드 타자 치는 소리만 벽에 부딪혀 돌아오고, 솔직히 자신도 뭘 쓰고 있는지, 그래서 이게 전부 다 말이 되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일단 쓰고 보는 시간이요.


간밤에 어지러웠던 꿈 이야기도,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전날의 소회도 아주 편안하게 써 내리게 됩니다. 이어진 낡은 감정의 고리를 끊어내면 새하얀 백지 같은 마음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요. 글쓰기가 꼭 명상 같을 수도 있는 모양이지요. 게다가 같은 날 오전 8시에 쓴 글과 오후 4시에 쓰는 글은 영 다른 맛이 납니다. 신기하지요. 그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어요.


언제 글이 쓰고 싶나요?

저는 길게 산책하고 들어온 직후에 글을 쓰고 싶어져요.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이 정말 많은데 평소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잘 살피지 못하게 되잖아요. 이파리 하나도 꼼꼼히 들여다보면 새롭게 느껴지는데 말이에요. 속에 너무 많은 감정이 한데 얽혀있어 답답할 때도 긴 시간 동안 공원을 걷고 나면 실마리가 보입니다.


그러면 글을 쓰고 싶어져요. 새롭게 떠오른 감상이나, 그동안 정리된 생각을 글로 꺼내어놓고 눈으로 읽고, 소리 내어 읽고 싶어집니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제 것이 되는 것 같아요. 휘발되어 사라지는 잠깐의 공상이 아닌 정말 제 생각이 되고 제 말이 되고 제 글이 되어요. 저는 그로부터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낍니다.


언제 “쓰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이 강해지나요?

저는 제가 쓴 글에 대한 화답을 받았을 때 그렇습니다. 타인의 진지한 반응을 확인할 때에요. 내 글이 그렇게 조잡하지는 않구나, 내 글도 글로 받아들여지는구나, 내 글이 누군가에게 어떤 느낌을 줄 수 있구나. 제가 바라던 반응을 보았을 때는 짜릿하기까지 하고요. 그런 순간, 그런 감정들이 모여서 저를 자꾸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럼 나는 더 써도 되지 않을까? 계속 이렇게 써도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듭니다.


사실 존귀한 글, 그렇지 않은 글, 분류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아직은 움츠러들고 조심스러워집니다. 분노클 친구들과 같은 글동무들과 함께 쓰는 경험은 그럼에도 나아가기를 택하는 용기를 줍니다. 언제나 고마워요.


지난주 가족들과 강화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어느 순간 차 안에 흐르던 힙합 노래를 끄고 가족 모두가 아는 버스커버스커의 음악을 틀었어요. '여수 밤바다'가 흐르기 시작하고, 아빠가 반가워하며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사실, 모르는 노래는 그냥 소음이거든."


노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만의 이야기에 갇혀버리면 자의식 과잉이 드러나는 글 밖엔 써지지 않는 것 같아요. 나만 아는 맥락, 나만을 위한 글. 자기만족에서 그치는 글. 이런 글로는 타인의 마음을 동하게 만들 수는 없어요. 정말 제가 원하는 건 그런 건데 말이에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저는 “경계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를 구성하는 이야기는 제 모든 정체성, 각각의 경계가 모인 교집합, 그 위에 적혀있기 때문이에요. 확장은 중심부가 아닌 가장자리에서 일어나지요. 그곳에 서 있는 제게 확장하는 글쓰기는 필연적입니다.


'선선'으로서의 글쓰기는 제가 가진 이야기 하나하나 실을 달아 제 몸 바깥으로 꺼내놓는 과정입니다. 저는 발견되고 싶습니다. 제 삶과 타인의 삶을 연결 짓고 싶습니다. 모르던 노래를 알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계속 쓰고 싶습니다.


이런 결심을 하기까지 여러 글동무의 따뜻하고 진지한 피드백이 있었답니다. 제게 용기를 준 사람 중에는 당신도 있지요.


그렇다면 H는 어떤가요? 언제 가장 글을 쓰고 싶고, 글이 잘 써지고, 글을 쓰는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여기나요? 궁금해집니다. 다음에 듣게 될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을게요.


종일 비가 내리는 월요일이네요.

부디 오늘도 무사히 보내고 밤에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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