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은 스스로에게 통제권을 주는 것
선생님께
답글 감사합니다. 편지 속에 적어주신 디저트 가게도 언젠가 같이 먹으러 가면 정말 좋겠어요. 상상만 해도 즐겁네요. 언젠가 제가 광화문 쪽에 놀러 가거든 반갑게 맞이해주실 거죠? 꼭 그러겠다고 약속해주세요.
선생님의 편지를 읽으며 허무함과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어요. 저도 그런 감정들과 아주 친밀하거든요. 그 감정들이 허기와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인스턴트도 끼니가 되기는 하더라 하는 말을 자주 합니다. 제대로 된 애정이 아니어도, 아주 짧거나, 어쩌면 이기적인 애정도 잠시나마 허기를 잊을 수 있게 해준다면 환영한다는 것이지요.
이기적인,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할 때가 종종 있어요. 지난주가 그랬어요. 쉽게 사람을 만나보는 거예요. 쉽게, 친구로. 얼마든지 연인이 될 수 있을 법한 분위기로요. 변명하자면, 이번에는 꽤 오랜만에 해봤어요. 지난 감정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랑을 할 때가 됐다고도 생각했고, 지금의 삶이 싫어서 도피하고 싶기도 했어요. 즐거움을 찾아서 몸을 던진 것이죠.
지난 일요일, 피 같은 시간과 빼곡한 마감을 뒤로하고 한 명을 불러냈어요.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죠. 좋은 풍경도 봤어요. 근데 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어요.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비참해지더군요. 차가운 바람을 많이 맞아서 온몸이 얼얼해진 채 도망치듯 집에 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요. 전기장판을 최고로 틀어두고 그 안에서 잠들었어요.
30분 정도 지나고 나서였을까. 눈을 뜨니 까만 방이 보이고, 사람 목소리 하나 없이 시계 초침 움직이는 소리만 째깍째깍 들렸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모든 게 두려워졌어요. 숨은 턱 막혔고 좌절감이 무거운 이불처럼 제 온몸을 눌렀습니다. 괴로운데도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어요. 도망칠 수 없었어요. 무엇이 그렇게 무서웠을까요. 저는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때 느낀 감정이 마음 깊숙이 숨겨둔 공포심이었다는 것은 확신해요. 그게 오랜만에 고개를 들고 저를 찾아온 거죠.
도망을 가서 그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를 만나면서도 도망을 가고 싶었어요. 인스턴트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마음은 그걸로 채워지는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거부하고 또 도망을 갔어요. 만족스럽지 못했고, 죄악감이 들었어요. 어떤 성취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도망만 다니느라 시간을 써버렸다는 죄악감이요.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봐 주셨지요. 저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랑 이야기를 할 때 너무 행복해지고, 사랑 이야기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하는 사람이거든요. 왜 사랑을 사랑했는가 생각해보니, 그게 저를 완전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준 첫 번째 경험이라서 그랬던 듯해요.
사람들 말대로 저는 분명 지금 이대로 완전한 사람일 텐데,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더군요.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뚫려서 100을 넣으면 10만 남고 나머지는 다 흘러가 버리는 것 같았어요. 그 남은 10마저도 시간이 흐르는대로 세월에 풍화되어 사그라졌고요. 그래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자꾸 물었어요. 구차하고 미련스럽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런 저에게, 가장 사랑하던 사람이 그랬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며, 이 사랑을 네게 주고 있다. 하지만 네가 그걸 흘려보내 버리고 돌아와 다시 달라 청할 때에 나는 상처를 받는다. 내가 주는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여 달라. 그게 내가 바라는 화답이다.
그래서 저는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게 되었어요. 구멍을 메꾸려고 노력하고 다가오는 사랑을 하나하나 충분히 느끼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충만함을 느끼는 순간이 잦아졌어요. 이 사랑이 저를 완전하게 한다고 믿게 됐고요. 이 편지를 쓰며 다시 느끼지만, 나아지려고 노력한 사람은 저였네요.
저를 완전하게 한 건 저였어요.
외롭고 힘들 때 이겨내는 방법은 스스로에게 통제권을 기꺼이 내어주는 일인 듯 해요. 원하는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시간을 갖거나, 산책을 하거나. 감정에 통제권을 주는 게 아니라, 제가 오롯이 그 통제권을 갖는 거에요. 그때 비로소 나를 온전히 인식하고 완전해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타인의 비난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나를 보호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시간이 갈수록 제가 어떻게든 살아내는 게 신기해요. 분명 언제고 부러질 것처럼 살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꺾이는 듯하다가도 다시 살아내는 게 신기해요.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들이 다 그러고 살더라고요. 저는 사람들이 신기해요. 제가 그중 하나라는 것도 신기하고요. 결국 우리도 여태 그래왔겠지요. 그렇다면 얼마든지 또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저는 무척 기대가 돼서요, 선생님께서도 그러시다면 좋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어요. 저는 오늘 잠시 산책을 다녀와 할 일을 이어가 보려고요. 이번 주 일요일은 도망가지 않고 온전히 살아내겠어요. 선생님도 일주일을 무사히 마무리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2021년 1월 30일
선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