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마치 오리가 알에서 부화해 처음 만난 사람을 제 어미로 생각해 졸졸 따라다니는 것처럼.. 8살, 그녀는 나에게 어머니로 각인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우주가 열리고 애증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나에게 유일한 어머니셨던 새어머니. 당신도 딸을 잃고 나를 잃어버린 딸이라 생각하며 키우셨다던 나의 새어머니.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아니,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 버려서 천지 분간을 못 하고 주제를 모르고 똑같은 사랑을 달라고 애걸복걸한 것이다.
너무나 닮고 싶었던 나의 새어머니. 나는 그 사랑을 너무나 갈망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나는 애시당초 가질 수 없었던 것이기에 늘 허기짐을 달고 살았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누군가 어린 내게도 가르쳐 주었더라면 좀 더 일찍 이 긴 싸움을 포기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 피라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진하기에 아주 괜찮은 남의 새끼가 개차반 같은 제 새끼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단 말인가! 도무지 이성과 논리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혼 생활 동안 남편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당신 아들은 그저 착할 뿐, 혼 한 번 내실 줄 모르는 시부모님을 보면서 또 한 번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배워야만 했다.
‘내게는 사랑받을 자격이 애초에 주어지지 않은 것인가? 부모의 사랑은 나 같은 아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다는 말인가?’
그렇게 깊은 절망감이 나를 집어 삼켜버렸다.
그렇지, 오죽하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할까? 그렇다면 이 차별은 본능적인 것으로 내가 싸워서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동생까지 성인이 되고 나서 어머니는 정말로 아버지와 이혼하셨다. 마치 노예생활에서 탈출한 사람 같아 보였다. 돈도 더 잘 버시고 남자친구랑 여행도 다니셨다. 때로는 자유롭고, 어떤 날은 아버지가 찾아오실까 봐 두려워하셨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드디어 아버지의 주사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맞이하셨다.
이혼하시기 얼마 전,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나에게만 이혼에 대한 의사를 물으셨다. 나도 언니나 동생처럼 친딸인 척, 어머니의 안위와 행복만 생각하는 척 이혼을 적극 권했다. 그러면 사랑을 좀더 받고, 이혼을 하신 후에도 나에게 관심을 주실 줄 알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정신을 못 차리시고 어머니가 너무 힘드시니까 이혼하세요. “
어머니는 만족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께는 죄송한 마음도 잠시 이내 전장에서 살아남은 장수처럼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허나 그것이 나의 진심이 아니었음은 쉬이 들통나고 말았다. 나에게도 아버지는 물보다 진한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던가! 어머니께서 정말로 이혼하시겠다고 결정을 하시자마자 나는 극도로 불안하고 우울해져서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했다.
무능력한 아버지를 책임져야 할 나의 앞날이 그저 막막했다. 그 불안감이 내 안에서 곰팡이처럼 피어나 온 몸에 촉수가 돋았다. 모든 게 상처가 되고 아팠다. 그 때 무심코 내뱉은 나의 모든 말은 어머니와 언니와 동생에게 독이 묻은 비수가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랑 이혼하시면 어머니는 더 이상 내 어머니도 아니시겠네요.”
어머니는 그 날 나의 말을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며 두고두고 서운해 하셨다.
그때는 나도 그런 말이 아픈 상처가 되고 올무가 되어 이렇게 오래도록 서로를 아프게 할 줄은 몰랐다. 어른도 아이에게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더 몰랐던 것 같다. 아무 것도 몰랐던 ‘우리’가 가엾다.
나는 내 두 딸은 절대 차별의 아픔을 모르게 키우겠노라 다짐을 하고 이를 악물었다. 뭐든 둘이 똑같이 해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내 배 아파 낳은 내 자식도 때로는 이 놈이 짠하고, 때로는 저 놈이 짠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피는 물보다 진했고,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내가 낳은 내 새끼들에게도 내 마음이 온전히 공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나의 고통이 덜어진다. 나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그저 인간의 본능 때문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도 어린 나를 보면서 피가 물보다 진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모성 때문에 괴로운 날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비바람 부는 날, 그 비바람을 피하러 세 마리 새끼들이 어미의 품에 파고든다. 그러나 어미품이 비좁아서 두 마리밖에 품어줄 수가 없다. 그러면 어미는 당연히 제 새끼가 아닌 놈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오랜 방황과 고통, 그 폭풍을 해치고 이제야 어머니와 나의 인생이 보인다. 내가 새어머니와 살아온 모든 장면이 차별로 얼룩진 것만은 아니었다. 어머니도 어쩔 수 없는 날들이 있으셨던 것이다. 몸은 하나고, 자식은 셋이니 안 아프고 잘 먹고 잘 자고 공부 잘하고 집안일도 잘 도와주는 자식한테 더 기대고 의지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머니 내가 이토록 노력하는데 나는 왜 사랑해주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에서 비로소 벗어났다. 문득문득 떠올라 나를 저 깊고 어두운 바다 밑으로 끌고 내려가던 질문. 설거지를 하다가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을 때도 나를 뒤흔들던 질문에서 이제 나는 벗어날 수 있다.
“내가 사랑받기에 부족한 인간인가?”
내가 사랑받기에 부족해서가 아니다. 어머니도 그것이 당신의 최선이었던 것이다.
내가 어머니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남편이 다른 여자와 낳은 자식을 내 자식들과 함께 키워야 하고, 남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먹고 나를 두들겨 패고 욕을 한다면..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히고 죽고 싶은 절망감이 밀려온다.
비로소 나도 자식에서 어머니가 되었다. 비로소 어머니도 나에게 어머니가 아닌 여자가 된 것이다. 고되고 퍽퍽했을 한 여자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한 동안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아팠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
이제 나도 당신의 고된 인생을
조금은 이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엄마를 대신해
당신을 내 인생에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이제 알고 감사합니다.
그때는 내가 어리고 미숙해서
철없는 말과 욕심으로
상처를 드렸습니다.
아팠던 말씀은 부디 모래 위에 쓰시고
여생은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길러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