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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국 Mar 08. 2023

[47] LG에 반집차 역전극…1995년 9월의 기적

베팬알백 | 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김상진이냐, 장호연이냐.


OB 새 지휘봉을 잡은 김인식 감독은 누구를 1995시즌 개막전 선발투수로 쓸지 고민을 거듭했다.


구위만 놓고 보면 당연히 김상진. 1989년 배팅볼 투수로 입단한 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4년 연속 10승을 올렸고, 특히 1994년에는 팀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황에서도 9차례나 완투를 펼치며 14승10패7세이브, 평균자책점 2.37로 기량이 무르익었다.


그런데 OB는 개막전만 되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장호연. 동국대를 졸업한 뒤 1983년 OB에 입단하자마자 개막전 선발로 나서 MBC 청룡을 상대로 완봉승을 올리며 ‘개막전의 사나이’로 가는 길을 닦았다. 1995시즌에 앞서 개막전에서만 통산 8차례 등판해 5승2패를 기록했다.


개막전은 정규시즌 126경기 중 1경기일 뿐이지만,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더군다나 전년도 선수단 집단이탈과 7위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 OB였다. 새 감독 체제 아래 첫 출발하는 개막전.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라도 승리가 필요했다.


김 감독은 구위와 경험을 놓고 장고를 거듭한 끝에 개막 4일 전에 장호연에게 선발등판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베팬알백] 45번째 주제는 1994년 난파선과 다름없었던 OB 베어스가 곧바로 1995년 페넌트레이스 1위에 오르는 기적의 레이스 이야기다. 김인식표 ‘믿음의 야구’로 8월말까지 1위 LG에 6게임차나 뒤졌지만, 광란의 9월 레이스를 통해 0.5게임차 뒤집기에 성공하는 믿기지 않는 신화를 만들었다. 13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거머쥔 기적의 스퍼트 시간을 찾아가 본다.


개막전의 사나이 장호연 ⓒ두산베어스


김상진 대신 장호연개막전 사나이 마지막 개막전 승리


“장호연은 내가 동국대 감독 시절에 선수였는데 OB에서 다시 만나게 됐지. 대학 시절에도 잘 던졌던 투수야. 프로에 가더니 개막전에 항상 잘 던지더라고. 경험도 많으니까 장호연을 선택했어. 전년도에 선수단 집단 이탈이라는 안 좋은 일도 있었고, 아무래도 장호연이 새로운 각오로 나서지 않겠나 하는 기대도 있었지. 베테랑 투수가 개막전을 잡아준다면 팀 분위기도 살아날 테니까.”


김인식 전 감독은 오래된 기억의 시계를 돌렸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자신의 지도자 경력에서 가장 화려했던 OB 감독 시절의 첫 개막전이었기에 생생하게 당시를 회상했다.


장호연은 1993년까지 통산 100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1994년 부상 등이 겹치며 15경기에 등판해 2승6패에 그쳤다. 데뷔 후 가장 저조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 김 감독이 장호연을 선택한 것은 관록과 경험을 믿었기 때문이다. 김인식표 ‘믿음의 야구’ 출발점이었다.


장호연 역시 백척간두에 선 심정이었다. 선수단 집단이탈 징계 차원에서 스프링캠프 직전 대만프로야구 준궈 베어스로 팔려갈 뻔한 위기도 있었다. 이탈 선수 17명 중 마지막으로 재계약을 하면서 가까스로 다시 OB 유니폼을 입게 됐다. 예년과 다른 마음가짐으로 개막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장호연도 떨리기는 마찬가지. 그는 "남들은 나더러 '개막전의 사나이'니까 안 떨리는 줄 알지만, 신인 때나 은퇴하던 시즌이나 개막전은 늘 긴장됐다“고 말했다. 그 은퇴 시즌의 개막전이 바로 1995년 4월 15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전이었다.


한화 선발투수는 1992년 입단 이후 14승-13승-14승을 올리며 독수리 군단 영건 에이스로 도약한 정민철. 만만찮은 상대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OB의 화력이 기대 이상으로 폭발했다. OB는 김종석과 대타 추성건의 홈런 2방 등 장단 16안타를 몰아치며 개막전을 12-3 대승으로 장식했다. 특히 1989년 입단 이후 만년 기대주로 머물던 김종석은 일약 개막전 4번타자로 발탁됐는데, 0-1로 끌려가던 4회초 역전 투런포를 포함해 5타수 3안타 2타점으로 김 감독의 용병술에 부응했다.


장호연은 역시 장호연이었다. 5회까지 4안타 2삼진 3사사구 2실점. 6회초 폭발한 타선 덕분에 다시 승리투수가 됐다. 커리어 마지막 개막전 등판이었고, 커리어 마지막 개막전 승리였다. 여전히 깨지지 않는 KBO 개막전 최다경기(9)와 최다승(6승2패) 기록은 이렇게 완성됐다.


1995년 개막전 4번 타자로 출전한 김종석 ⓒ두산베어스


LG 시즌  만남강병규 박철순 카드로 2연승 심상찮은 바람


OB는 개막 이튿날 김상진을 내세웠지만, 한화 한용덕-구대성의 이어던지기에 막혀 1-5로 패했다. 그러나 김상진에 대해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그해 17승을 거두며 에이스로 도약했기 때문이다.


18일부터 잠실에서 벌어지는 LG와 시즌 첫 3연전이 진검승부였다. LG는 1994년 우승을 차지한 강호이자 잠실 라이벌. LG는 앞서 잠실에서 열린 삼성과 개막 2연전에서도 이상훈 김태원을 차례로 내세워 2연승을 달리며 위세를 떨쳤다. OB로선 시즌 초반 행보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큰 난적을 만난 셈이었다.


LG는 김기범~정삼흠~이상훈 선발 로테이션을 준비한 상황. OB는 강병규~박철순~권명철 카드를 선발로 대기시켰다.


첫날 고졸 5년생 강병규가 4-2 승리를 이끌어내면서 분위기를 살렸다. 전년도 시즌 초반 4연승을 달리다 허리부상으로 5승5패에 그쳤던 강병규는 이날 선발 8이닝 2실점(비자책점)의 역투를 펼쳤다. 전년도 연이은 부상 속에 전열에서 이탈했던 특급 소방수 김경원도 마지막 1이닝을 가볍게 삼자범퇴로 돌려세우며 시즌 첫 세이브를 따냈다.


1995년 잠실 개막전 시구자로 나선 배우 이한우 씨 ⓒ두산베어스


19일에는 ‘불사조’ 박철순이 선발등판했다. 김인식 감독은 이날 경기에 앞서 “박철순은 가급적 잠실에서만 던지게 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당시만 해도 KBO리그에서 개념이 없던 사실상의 6선발. 일종의 조커였다. KBO 현역 최고령 투수에게 체력 안배를 해주면서 긴요할 때 힘을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복안이었다.


특히 박철순은 선수단 집단이탈과 윤동균 감독의 퇴진 과정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팀의 맏형이었다. 그런 만큼 그 역시 1995시즌 첫 등판에 임하는 각오는 남달랐다.


박철순은 이날 7회까지 무실점을 기록하다 8회에 1실점하며 내려왔지만,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야말로 속죄를 하듯 혼신의 힘을 다해 던졌다. OB의 5-3 승리. 만 39세1개월7일의 나이로, 팀 선배 계형철이 보유한 KBO 최고령(만 38세5개월10일) 승리투수 기록을 갈아치웠다.


1991년부터 4년 연속 7승을 올리며 마운드에 힘을 보탰던 박철순은 1995년 등판할 때마다 자신이 작성한 KBO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을 스스로 갈아치웠다. 그해 올린 9승(2패)은 1982년 원년 24승을 거둔 뒤 개인 한 시즌 최다승 기록.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1995시즌에 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OB는 3연전 마지막 날인 20일, LG에 2-6으로 패해 2연승에서 멈췄다. 권명철은 시즌 첫 선발등판에서 패전투수가 됐다. 그러나 권명철은 다음 등판인 인천 태평양전 첫 승을 시작으로 그해 15승8패, 평균자책점 2.47을 기록하며 생애 최고의 시즌을 만든다. 1995년 김상진-권명철 원투펀치는 페넌트레이스 32승을 합작했고,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는 나란히 등판해 13년 만의 우승을 확정 짓기도 했다.



4월과 5월의 약진김상진 3연속 완봉승 미친 존재감

경기 후 수훈 선수로 선정돼 단상 위에서 인터뷰하는 '배트맨' 김상진 ⓒ두산베어스


1995년의 4월 판세는 1994년의 물구나무 형국. 1994년 7위 OB와 8위 쌍방울이 초반에 치열한 선두 경쟁 레이스를 펼쳤기 때문이다.


OB는 4월 30일 대구 삼성전에서 8-5로 승리하며 4월 전적 9승4패를 기록했다. 전날까지 공동 1위였던 쌍방울을 물리치고 단독 1위로 올라섰다. 김인식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OB는 마운드와 타선의 신구조화 속에 기동력까지 가미되면서 전년도와 완전히 다른 팀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마운드에서는 4월에 강병규가 3승으로 바람을 잡은 가운데 베테랑 박철순과 장호연이 2승씩을 보탰다. 1994년 시즌 내내 14승을 합작했을 뿐이었던 3명이 김인식 감독의 기다림과 믿음의 야구 아래 개막 첫 달에 그 절반의 승수인 7승을 수확하며 화답했다.


OB는 그 이후 5월 30일까지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배트맨’ 김상진이 OB의 5월을 견인했다. 4월에 1패 후 1승에 그쳤던 그는 5월 들어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미친 존재감’을 뽐냈다.


특히 5월 11일 사직 롯데전(더블헤더 제2경기)부터 시작해 17일 잠실 삼성전, 23일 잠실 한화전까지 3경기 내리 완봉승을 작성했다. 마지막 한화전에서는 연장 12회까지 무려 17개의 삼진을 솎아내며 완봉승을 올리는 투혼을 불살랐다.


3경기 연속 완봉승은 KBO리그 최고 기록. 앞서 1982년 MBC 하기룡, 1986년 빙그레 이상군과 해태 선동열만이 작성한 바 있다. 김상진 이후 2009년 롯데 송승준이 오랜만에 뒤를 이었다. 지금까지 총 5명만 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갈수록 마운드 분업화로 완투를 보기 힘들어진 시대. ‘3경기 연속 완봉승’은 앞으로도 유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김상진과 이상훈  맞대결LG 3연전 충격의 스윕패

1995년 잠실구장에 걸린 현수막. OB베어스와 LG트윈스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팬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두산베어스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시즌 두 번째 LG와 3연전. 이 3연전에 앞서 1위 OB는 2위 LG에 1.5게임차로 앞서 있었다. 3연전에서 2승1패면 2.5게임차로 벌리고, 1승2패만 하더라도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다. 스윕패라는 최악의 결과만 피하면 됐다.


OB는 3연전 첫머리에 선발투수로 김상진을 내세웠다. 5월에 3경기 연속 완봉승을 포함해 5연승을 달리며 시즌 5승1패를 기록 중이었다.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부문에서 줄곧 1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3연속 완봉승의 후유증이 없을 수는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28일 일요일에 선발 예정이던 쌍방울전이 비로 취소된 점이었다. 경기 일정이 없는 29일 월요일까지 쉴 수 있었다. 23일 한화전 12회 완봉승 이후 6일간의 휴식기를 가졌다.


LG는 6승1패로 다승 2위에 올라 있는 이상훈을 선발 카드로 내세웠다. 그야말로 첫 판부터 제대로 붙었다.


[베팬알백] <39편> ‘배트맨 김상진, 8완봉 전설 그리고 이상훈과 맞대결’ 이야기에서 소개했듯이, 양 팀 팬들은 에이스의 맞대결이 성사되자 흥분에 휩싸였다.


이날 경기는 화요일 야간게임에도 불구하고 경기 전부터 지하철 2호선 잠실종합운동장역은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결국 경기 시작 10분 전에 매표소에는 ‘매진’이라는 푯말이 붙었다. 암표상들은 표를 사지 못한 군중 사이를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며 거래를 했고, 웃돈을 얹어서라도 표를 구한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야구장 안으로 달려갔다.


잠실야구장 관중석을 반으로 갈라 자리를 잡은 양 팀 팬들은 경기 전 에이스들이 점퍼를 벗고 그라운드를 달리며 몸을 풀자 “김상진! 김상진!”과 “이상훈! 이상훈!”을 연호했다. 그리곤 이내 “LG 바보~”와 “OB 꼴찌~”를 메아리처럼 맞받아치며 뜨거운 신경전을 펼쳤다. 흥분한 팬들은 일찌감치 파도타기 응원을 시작하며 장관을 연출했다.


그러나 승부는 싱겁게 기울어졌다. LG가 1회와 2회에 5점을 뽑아내면서 초반부터 승부를 갈랐다. 김상진의 구위가 3연속 완봉승을 거둘 때와 비교해 떨어지기도 했지만, OB 야수들의 연이은 실책이 화근이 됐다. 1회말 1실점 후 3루수 임형석이 땅볼을 놓쳐 추가 2실점했고, 좌익수 김상호의 악송구까지 겹치면서 1회에만 4점을 헌납했다. 30연속이닝 무실점 기록이 중단된 김상진은 2회말에도 1실점하면서 조기강판되고 말았다.


OB가 3회초 이상훈을 상대로 1점을 뽑아내긴 했지만 1-5 완패. 이상훈은 8이닝 1실점으로 시즌 7승1패, 한화 정민철과 다승 공동 1위로 도약했다. 그러면서 OB와 LG는 0.5게임차로 좁혀졌다.


OB는 이후 2경기에 강병규와 권명철을 차례로 선발로 내세웠지만, 정삼흠과 김기범 선발 카드로 맞선 LG에 연이어 무릎을 꿇었다. 5월 31일에 4-5로 지면서 LG에 0.5게임차로 1위 자리를 내줬고, 6월 1일엔 2-4로 패하면서 1.5게임차로 밀려났다. OB로선 3연전에 앞서 ‘설마’ 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이했다.



LG 추월당한 여름, 드라마를 위한 밑그림

1995시즌 OB베어스의 선전이 이어지자 열성적인 응원을 보내준 베어스 팬들 ⓒ두산베어스


OB는 다시 전열을 정비해 6월 4일 잠실 쌍방울전부터 21일 잠실 롯데전까지 2무 포함 9연승을 달렸다. 그 사이 14일과 15일에는 더블헤더를 포함해 LG와 3연전을 펼쳤는데 2승1무를 거두고 1위를 탈환했다. 약 보름 전 3연패의 아픔을 사실상 되돌려줬다.


그 이후 OB와 LG는 선두 자리를 주고받는 피 말리는 순위싸움을 진행했다. OB가 6월에 16승2무8패로 호성적을 올렸지만, LG 역시 6월에 16승1무8패로 고공행진을 펼쳤다.


OB는 한여름에 접어들면서 고비를 만났다. 7월초 LG와 격돌한 잠실 3연전이 뼈아팠다. 4일에 김상진과 이상훈의 시즌 두 번째 선발 맞대결이 펼쳐졌다. 김상진은 9회까지 2실점으로 완투했지만 다시 완투패를 떠안았다. 이상훈이 9회까지 1실점 완투승을 올렸기 때문이다. 에이스 완투 대결에서 패한 여파는 컸다. OB는 3연전을 모두 내주고 말았다.


7월에 OB가 6승2무7패로 주춤하는 사이, LG는 9승7패를 거뒀다. 7월까지 OB는 선두 LG에 2게임차로 밀리게 됐다.


8월 11~13일 다시 LG와 만났다. 1승1패 후 13일에 김상진과 이상훈이 시즌 3번째 맞대결을 펼쳤다. 여기서 OB는 또 1-7로 완패했다. 김상진은 1995년 17승을 거두며 생애 최고의 성적을 올렸지만, 친구이자 라이벌 이상훈과 시즌 3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패하면서 2인자에 머물고 말았다. 반면 이상훈은 그해 20승 고지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3차례 선발 맞대결 결과가 그해 둘의 다승왕 운명을 가른 셈이 됐다.


엎친 데 덮쳤다. 후반기 들어서면서 박철순, 장호연, 강병규가 부상으로 이탈했는데 복귀가 쉽지 않았다. 7월 22일 LG와 공동 선두 이후 줄곧 2위에 머물던 OB는 이 3연전에서 1승2패로 밀리면서 LG에 무려 6게임차나 뒤지게 됐다. 1995시즌 들어 양 팀 간에 게임차가 가장 크게 벌어진 순간이었다.


OB는 그 이후 8월 27일까지 6승3패로 선전했지만, LG 역시 같은 기간 5승2무2패로 흔들림 없는 레이스를 펼쳤다. 여전히 6게임차. 페넌트레이스 99경기를 소화한 시점이었다.


1995년은 팀당 정규시즌 126경기를 하던 시절. 야구계에서는 “3게임차를 따라잡으려면 한 달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통설이다. 남은 27경기에서 6게임차를 극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무리 막판에 OB가 선전해도 LG가 자멸하지 않는다면 뒤집기는 어려워 보였다.


오히려 이 시점에서 OB는 앞쪽보다는 뒷덜미를 신경 써야 했다. 3위 롯데가 2게임차로 뒤를 쫓아왔고, 해태와 삼성도 5.5게임차로 추격해 왔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드라마를 위한 밑그림일 뿐이었다. 가슴 웅장해지는 기적의 9월 레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1 LG 6G마지막 27G 대역전 스퍼트의 시작

드라마 같은 한 시즌을 보낸 1995년 베어스 선수들. 앞쪽에 김민호와 김종성의 얼굴이 보인다. ⓒ두산베어스


LG는 8월 하순까지 정규시즌 1위로 골인할 기세였다. 그런데 8월말부터 갑자기 비틀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8월 29~31일 잠실에서 상승세의 롯데에 3연전을 모두 내주고 말았다. 첫 판에서 특급 소방수 김용수가 승리를 지키지 못하면서 연장 12회 승부 끝에 2-3으로 졌다. 김용수는 그해 42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던 상황이라 LG로선 충격이 컸다.


이튿날엔 김태원이 무너졌다. 1-5 패배. 1위 LG와 2위 OB의 간격이 4.5게임차로 좁혀졌다.


추격하는 OB로선 여전히 멀어 보이는 거리였지만, 달아나는 LG로선 안심할 수 없는 격차였다.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바라보는 것과 ‘컵에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바라보는 것의 차이. 무리수 없이 메이저리그식 마운드 운영을 하던 LG 이광환 감독이 3연전 마지막 게임에 사흘만 쉰 이상훈을 선발등판시키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때만 해도 이상훈은 절정의 구위를 자랑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8월 13일 김상진과 맞대결에서 2-1 완투승으로 시즌 17승, 18일 잠실 해태전에서는 1-0 완봉승으로 시즌 18승까지 수확했다. 이제 이상훈은 시즌 20승까지 두 걸음 남았다.


그런데 이상훈이 그 이후부터 헛걸음질만 쳤다. 27일 잠실에서 열린 쌍방울과 더블헤더 제1경기에 선발등판해 9회까지 1실점 완투를 했지만 경기가 1-1 무승부로 끝나는 바람에 승수 추가에 실패했다.


그리고는 3일 휴식 후 이날 롯데전에 선발등판했다. 6회초 2실점했지만 7회 1사에서 마운드를 물러날 때까지 나름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역투했다. 그러나 이날 LG 타선이 롯데 윤형배~김상현에 꽁꽁 묶였다. 0-3으로 졌다. LG로선 충격적인 3연전 스윕패였다.


2위에 끼여있는 OB로선 좋아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앞서 달리는 LG의 3연패보다 뒤쫓아오는 롯데의 3연승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날 OB는 태평양과 더블헤더에서 1승1패를 나눠가졌다. 그러면서 3위 롯데에 1게임차로 바짝 쫓기게 됐다. 정규시즌 3위로 떨어진다면 준플레이오프부터 치러야 하기에 OB로선 롯데의 상승세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중에 되돌아보면 이 3연승은 OB가 롯데에게 큰절을 해야 하는 고마운 선물이었다.



운명을 바꾼 추석연휴 해태 4연전 스윕50 만에 선두탈환

1995년 기적의 한 시즌을 이끈 김인식 감독 ⓒ두산베어스


LG는 9월 들어서도 제 페이스를 찾지 못하고 흔들렸다. 흔들린 정도가 아니었다. 롯데에 3연패를 당한 시점부터 9월 12일까지 13경기에서 3승1무9패로 침잠했다. LG가 반타작도 못하고 이처럼 자멸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반면 OB는 기적의 스퍼트를 시작했다. 8월 31일부터 9월 12일까지 12경기에서 무려 11승1패(6연승-1패-5연승)라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LG가 승패마진 -6을 기록하는 동안 OB는 +10을 올렸으니 이 기간 양 팀간에 8게임차가 뒤바뀌게 됐다. OB가 6게임차를 뒤집고 1위로 올라서는 기적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1995년 OB 베어스 기적의 막판 스퍼트 경기일지 

                   

특히 그중에서도 9월 8일부터 10일까지 추석 연휴 3일간 펼쳐진 광주 원정 4연전이 결정적이었다. 그 4연전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추석 연휴에 앞서 OB는 61승 5 무 42패를 기록 중이었다. 1위 LG(63승3무42패)에 1게임차로 따라붙은 상황. 그런데 4위를 달리던 해태를 상대로 더블헤더 포함 4연전을 모두 쓸어 담는 믿기지 않는 결과를 만들었다.


해태도 갈 길 바쁜 팀이었고, 반드시 OB를 잡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더욱 놀라운 성과였다.

해태가 총력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대회요강 때문이었다.


추석 연휴 직전까지 4위 해태는 3위 롯데에 5.5게임차로 뒤지고 있었다. 8개 구단 체제였던 그해엔 4강까지 포스트시즌 진출권이 주어졌지만, 대회요강엔 3위와 4위가 3.5게임차 이상 벌어지면 준플레이오프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해태로선 어떻게 해서든 롯데에 3게임차 이내로 진입해야 하는 상황. 더군다나 1995년은 해태그룹 창립 50주년이었다. ‘야구 명가’로서 가을야구 탈락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포스트시즌 진출은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해태의 격렬한 저항 속에 OB는 연일 1~2점차 박빙승부를 펼쳤다. 그리고 모두 승리했다. 8일 첫 판에서 3-1로 이겼고, 9일 더블헤더에서도 각각 4-2와 4-3으로 승리했다. 난타전으로 끝난 10일 경기에서는 10-9로 이겼다.


반면에 LG는 추석 연휴에 7위 태평양을 잠실 안방으로 불러 3연전을 치르는 스케줄이었다. 이미 가을야구가 물 건너간 태평양. LG로선 분위기 반전과 1위로 달아날 절호의 기회를 만난 셈이었다.


그러나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예상 밖의 흐름이 이어졌다. LG는 8일 태평양에 4-1로 손쉽게 승리했지만, 10일 더블헤더 제1경기에서 이상훈을 투입하고도 2-2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더블헤더 제2경기에서는 선발 김태원의 난조 속에 4-7로 무릎을 꿇었다.


이로써 OB는 65승5무42패, LG는 64승4무43패. OB는 추석 연휴 시리즈가 끝난 시점에 LG를 1게임차로 밀어내며 50일 만에 1위를 탈환했다. 거꾸로 LG는 50일 만에 선두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내려앉았다.


LG는 해태가 미울 수밖에 없었지만, 해태 역시 지고 싶어 진 게 아니었다. 롯데에 5.5게임차로 밀려나 낭패감이 밀려왔다. 결국 그 후유증으로 그해 최종 순위 4위를 차지하고도 3위 롯데에 4.5게임차로 뒤져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1985년 이후 10년 만에 가을야구를 못하게 된 해태였다.


 

마지막 보름간의 전쟁OB LG 반집차 순위싸움

혼신의 힘을 다해 역투하는 에이스 김상진 ⓒ두산베어스


50일 만에 선두를 탈환한 OB지만 기뻐하기엔 일렀다.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잠실에서 LG와 시즌 마지막 3연전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팀에 승리하거나 패하면 반게임차 효과를 얻지만, 맞대결에서 이기거나 지면 곧바로 1게임차가 가감된다.


LG도 사실상의 마지막 승부처라 판단하고 총력전으로 나섰다. 한대화를 비롯해 박종호 김재현 조현 박철홍 등이 삭발에 가까운 짧은 스포츠머리로 경기장에 나타났을 정도로 결전에 임하는 의지가 뜨거웠다.


12일 첫 경기에 OB는 에이스 김상진을 선봉에 내세웠다. 그동안 LG에 재미를 보지 못했던 김상진은 아예 삭발을 하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 7이닝 1실점의 역투를 펼치며 팀의 6-1 승리를 이끌었다. 김상진은 시즌 마지막 LG전에서 15승을 올리게 됐고, OB는 추석 연휴 광주 4연승을 포함해 파죽의 5연승을 이어갔다. 2위 LG에도 2게임차로 앞서나갔다.


13일 두 번째 경기. OB 선발투수는 권명철이었다. 그러나 1-0으로 앞선 1회말 무사 만루 위기에서 김형석의 실책이 나오면서 3실점하고 말았다. 초반에 승기를 넘겨줬다. 타선도 LG 김기범과 김용수에 막히면서 3-4로 패했다. OB의 5연승 행진이 마감됐다. 다시 1게임차로 좁혀졌다.


14일 3연전 마지막 경기. LG는 이상훈 카드를 뽑아 들었다. OB 선발투수는 1차지명 신인 송재용. 2회말 LG 김재현에게 2점홈런을 맞았다. 4회초 OB 심정수가 시즌 18호 솔로포를 뽑아내며 대등한 흐름을 만들었다. 그러나 OB는 뒷심에서 밀리며 이날 1-5로 패했다. 이상훈은 8회 2사까지 1실점으로 호투하며 27일 만에 승수를 추가해 시즌 19승에 성공했다.


1승 후 2연패. OB는 게임차 없이 승률에서 4리가 부족해 3일 만에 다시 선두자리를 내주게 됐다.

이후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선두싸움. 15일에 OB는 한화에 3-6으로 패하며 3연패에 빠졌다. 7월 4~6일 LG에 스윕 당한 뒤 한 번도 3연패가 없었던 OB였다. 10경기를 남겨둔 시점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연패 모드가 당황스러웠다. 8월말부터 12경기에서 11승1패의 고공행진을 벌이다 곧바로 3연패를 당했으니 ‘연승 다음에 연패를 조심하라’는 야구계의 격언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OB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건 LG도 이날 삼성에 0-2로 패했다는 것이었다.


이제 2위 OB는 10경기, 1위 LG는 11경기가 남았다.


LG는 9월 16일과 17일 대전에서 더블헤더 포함 한화 3연전을 모두 쓸어 담았다. OB도 잠실에서 삼성에 2연승을 올렸지만, 한 경기를 더 이긴 LG가 0.5게임차로 앞서나갔다.


OB는 19일과 20일 최하위 쌍방울을 만났다. 19일에 3-4로 패했고, 20일엔 15-3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반게임차로 1~2위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반드시 잡고 가야 할 쌍방울을 상대로 거둔 1승1패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전적이었다.


그런데 LG가 더 얄궂은 시련을 맞이했다. 19일과 20일 사직에서 롯데에 2연패를 당한 것. OB 입장에선 롯데에 다시 큰절을 올려야 할 판이었다. 롯데는 8월말 LG에 3연전 스윕을 하더니 9월초엔 3연전에서 2승1패를 기록했다. 이번 2연승까지 약 3주 사이에 LG전 8전 7승1패의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OB는 LG를 0.5게임차로 제치면서 6일 만에 선두자리를 되찾았다. 되돌아보면 OB가 1위로 도약하고, LG가 2위로 떨어진 데에는 롯데가 결정적인 중간다리를 놓은 셈이다.


21일에는 OB가 쌍방울을 5-2로 꺾었고, LG 역시 태평양에 5-1로 나란히 승리해 0.5게임차 1위는 그대로 유지됐다.


그리고 맞이한 22일 경기에서 양 팀은 대조적인 결과표를 받아 쥐었다. LG는 인천에서 태평양을 상대로 연장 12회 혈투 끝에 1-2로 패했다. 철벽 소방수 김용수가 권준헌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았기에 상처가 컸다.


OB 역시 잠실에서 한화를 상대로 연장 12회 혈투를 펼쳤다. LG와 다른 게 있다면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는 것. 3-4로 뒤진 9회말 이명수의 우익선상 2루타와 2사 후 김광현의 우익수 쪽 3루타로 극적인 동점을 만들어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간 뒤 12회 말 장원진의 끝내기 홈런으로 5-4 역전승을 거뒀다.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면서 기뻐하는 장원진과 유지훤 코치 ⓒ두산베어스


이로써 OB는 LG에 1.5 게임차로 달아났다. 4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매직넘버도 3으로 줄였다. 주포로 자리 잡은 김상호는 이 경기에서 0-3으로 끌려가던 6회 말 추격의 시즌 24호 홈런을 터뜨리면서 서울 팀 최초의 홈런왕과 타점왕을 향해 기세를 한껏 끌어올렸다.


이제 양 팀에게 남은 경기수는 4경기씩. 그런데 23일 LG가 전주에서 쌍방울을 9-4로 꺾은 반면 OB는 잠실에서 한화와 난타전 끝에 8-9로 일격을 당했다. 3회까지 7-3으로 앞서다 역전패를 당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김상호가 1회 1사 1루서 투런포를 뽑아내 시즌 마지막 홈런인 25 호포와 세 자릿수 타점(101)을 돌파했지만 팀 패배로 빛이 바랬다.



OB와 LG의 간격은 다시 0.5 게임차. 3경기씩 남겨둔 시점에 OB의 매직넘버는 그대로 3으로 고정됐다.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의 향방은 또 오리무중으로 들어갔다.


OB는 23일 토요일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광주로 향했다. 24일 일요일엔 해태의 전설적 강타자 김성한의 은퇴식이 예정돼 있었다. [베팬알백] 36편 ‘백곰 윤동균이 떠나던 날’에서 소개했듯이, 1989년 OB 윤동균이 KBO 최초 은퇴식 겸 은퇴경기를 펼친 바 있다. 김성한은 KBO 역대 2호 은퇴식 겸 은퇴경기를 치르는 상황이었다.


해태는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1승이 아쉬운 처지. 추석 연휴 4연전에서 OB에 스윕패를 당한 아픔을 되돌려주기 위해 독기를 품고 있었다. 게다가 구단 레전드의 은퇴경기였기에 필승 각오로 나섰다. 해태와 OB는 이날 경기 전까지 나란히 13승을 거두고 있던 차세대 에이스 이대진(13승 5패)과 권명철(13승 8패)을 선발 카드로 준비해놓고 있었다.


OB는 1회와 3회 1점씩을 뽑아 2-0으로 앞서나간 뒤 7회 장원진의 2점 홈런으로 승기를 잡으면서 6-1로 승리했다. 9회 말 2사 후 대타로 타석에 들어선 해태 김성한은 3루 땅볼로 아웃되며 14년의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권명철은 시즌 14승째를 완투승으로 장식했다.


LG는 잠실에서 패색이 짙던 경기를 뒤집고 승리를 챙겼다. 2-4로 뒤진 8회 말 2사 만루에서 유지현과 김재현의 연속 밀어내기 볼넷으로 동점을 만든 뒤 연장 10회 말 서용빈의 좌월 끝내기 안타로 한화를 5-4로 물리쳤다. OB와 LG의 0.5 게임차는 그대로 이어졌다.


26일엔 LG의 경기가 없는 가운데 OB는 수원에서 태평양을 상대했다. 산 넘어 산. 해태 이대진을 넘었더니 태평양 정민태가 나왔다. OB는 김상진을 선발로 내세웠다.


8회까지 0-0의 피 말리는 투수전. 마지막 이닝에서 승부가 갈렸다. 9회초 선두타자 김민호가 우전안타에 이은 도루로 무사 2루 찬스를 잡자 장원진이 우전 적시타로 결승점을 뽑아 1-0 신승을 거뒀다. 김상진은 9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시즌 8번째 완봉승을 올렸다. 1986년 선동열만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던 한 시즌 최다 완봉승 타이를 이루는 순간. OB는 LG에 1경기차로 앞서게 됐다.


LG는 2경기(27일 잠실 쌍방울전, 28일 잠실 해태전)가 남았지만, OB는 최종 1경기(27일 인천 태평양전)만 남겨둔 상황. 1게임차로 앞선 OB는 시즌 최종전을 이기기만 하면 잔여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자력으로 페넌트레이스 1위를 확정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태평양을 건너지 못한다면 LG가 2연승할 경우 역전을 당하게 된다. 만약 OB가 무승부를 기록하고, LG가 2연승을 올린다면 동률이 돼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놓고 3전2선승제의 우승 결정전을 치러야만 했다.



최종전에서 반게임차 정규시즌 1 확정OB 감격의 KS 순간

1995시즌 배터리 호흡을 맞췄던 포수 김태형(현 두산 베어스 감독)과 투수 권명철(현 두산 베어스 코치) ⓒ두산베어스


“명철아, 너 나갈 수 있냐?”


최일언 투수코치가 권명철에게 다가와 의사를 물었다.


최 코치가 이렇게 물어본 것은 권명철이 24일 김성한의 은퇴경기로 치러진 해태전에서 완투한 뒤 이틀만 쉬고 태평양전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현재 두산 퓨처스 투수코치를 맡고 있는 권명철은 그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사실 원래는 제가 나갈 차례가 아니었거든요. 완투한 다음에 휴식일이 이틀밖에 안 돼 어깨도 좀 무거웠고, 인천구장이 작으니까 부담이 컸죠. 그렇지만 최종전을 이겨야만 페넌트레이스 1위를 확정하는 상황이었잖아요, 저도 14승 투수에 머무느냐, 15승 투수로 도약하느냐가 걸려 있어 결국 던지겠다고 했습니다.”


그해 김상진의 구위도 절정이었지만, 권명철 역시 생애 최고의 피칭을 이어가던 시즌이었다. 직구와 슬라이더 투피치였지만 두 구종만으로 타자를 압도했다. 특히 슬라이더의 각과 예리함이 압권이었다.

앞서 설명한 대로 태평양은 일찌감치 7위로 확정돼 있는 상황. 그러나 태평양 역시 이겨야 할 이유는 있었다. 인천 홈 팬들 앞에서 태평양 유니폼을 입고 치르는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이다. 이미 8월 31일에 현대그룹이 태평양을 인수하기로 공식 발표를 했기에 태평양은 홈 팬들에게 승리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


이틀 휴식 후 어깨가 무거웠던 탓일까. 권명철이 먼저 점수를 내줬다. 3회말 선두타자 김동기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이희승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고 말았다.


잠실에선 LG가 1회말 2점을 먼저 뽑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만약 OB가 패하고 LG가 이긴다면 OB로선 자력 우승의 길이 사라지게 된다.


이런 불안감이 엄습하던 4회초. 이날 선발 마스크를 쓰고 권명철과 호흡을 맞추던 이도형이 타석에 등장해 김홍집을 상대로 장쾌한 동점 좌월 솔로포를 터뜨렸다. 시즌 14호 홈런. 이날 경기 전까지 이도형은 시즌 13개의 홈런 중 구장 규모가 가장 큰 잠실에서만 12개를 기록해 ‘잠실 홈런왕’으로 불리고 있었다. 반면 원정에서는 홈런 1개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경기, 결정적인 순간, 잠실이 아닌 원정지에서 값진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1995년 시즌 내내 맹활약하며 ‘홈런왕’에 등극한 김상호 ⓒ두산베어스


5회말 권명철이 이숭용에게 우월 솔로포를 맞고 1-2로 다시 리드를 빼앗겼다. 그러자 OB는 6회초 김태형의 볼넷에 이은 장원진의 우중간 2루타로 2-2 동점에 성공했다.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던 OB는 8회초 무사 1·3루의 황금 기회를 잡았다. 여기서 김민호가 안병원을 상대로 좌익수 희생플라이를 날리면서 3-2로 리드했다.


권명철은 7회까지 2실점으로 역투를 거듭한 뒤 8회초 타선이 역전 점수를 뽑자 8회말 마운드를 김경원에게 물려줬다. 8회를 무실점으로 넘긴 김경원은 9회말 2사 후 태평양 슬러거 김경기를 맞이했다. 마지막 타구는 한가운데 펜스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날아갔다. 홈런이라면 동점. 그러나 날쌘돌이 신인 중견수 정수근이 어느새 담장 앞까지 달려가 있었다. 그리고는 오른손에 낀 글러브로 공을 낚아챘다. 3-2 승리. OB 선수들이 미친 듯이 덕아웃을 박차고 나와 마운드로 달려갔다.


『OB는 올 시즌 마지막 경기인 27일의 인천경기에서 태평양에 3대2로 역전승했다. OB는 이로써 올 시즌을 74승5무47패로 마무리, 28일 해태전을 남긴 LG의 승패에 관계없이 페넌트레이스 1위를 확정 지었다. 프로야구 원년 우승팀인 OB가 페넌트레이스 1위를 한 것은 13년 만에 처음이다.』 <1995년 9월 28일자 동아일보>


OB가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내는 순간이었다. 단일 시즌 제도가 도입된 1989년 이후로만 따지면 OB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정규시즌 1위에 오르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원년인 1982년 전기리그 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뒤 13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 그라운드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을 나두던 OB 선수들은 덕아웃에 샴폐인이 준비되자 서로의 얼굴에 부어대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자축했다.


1995년 정규시즌에서 1위로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한 뒤 선수들이 김인식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두산베어스


김인식 감독도 샴페인 세례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선수들이 김 감독 머리 위로 샴페인을 퍼부었다. 김 감독은 그라운드에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서 선수들이 부어주는 샴페인을 온몸으로 흠뻑 받아냈다. 개인적으로 해태에서 코치로 4년 연속(1986~198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해봤지만 쌍방울 창단 감독으로서 3년간 포스트시즌 진출에도 실패했다. 프로야구 감독으로선 생애 처음 정규시즌 1위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김 감독은 기자들 앞에서 “올 시즌 목표는 4강이었다. 오늘 경기 전까지도 페넌트레이스 1위를 확신하지 못했다”며 감격적인 목소리로 소감을 밝혔다. 좀처럼 흥분하는 법이 없는 김 감독도 그 순간만큼은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있었다.


선수들에게 샴페인 세례를 받은 김 감독은 고생한 선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칭찬 세례로 화답했다.


“전반기에 김민호와 이명수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줘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김상호 김형석이 후반기 들어 기대 이상으로 활약했다. 박철순 장호연은 전반기 마운드를 잘 지켜줬다. LG와 6게임차로 벌어져 팀이 어려울 때 송재용 진필중 등 신인들이 잘 막아줬다. 김민호 이명수 임형석 등 주전 3명이 부상한 후반기 초가 고비였다. 이때 심정수 이도형이 불방망이를 휘둘러줘 게임을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 누구 할 것 없이 전 선수들이 잘해줬다.”


LG는 다음날 순위 싸움에 의미 없는 시즌 마지막 경기였지만, 해태를 6-1로 꺾고 4연승으로 페넌트레이스를 마무리했다.


시즌 최종 성적에서 OB는 74승5무47패(승률 0.607)로 1위. LG는 74승4무48패(승률 0.603)로 2위. 1위와 2위가 0.5게임차로 나란히 선 순간이었다.


0.5게임차는 당시까지 역대 정규시즌 1위와 2위의 최소 게임차 기록이었다. (이후 2019년 두산과 SK, 2021년 kt와 삼성이 1위 싸움에서 동률로 정규시즌을 마치는 사례가 나왔다. 2019년에는 상대전적에서 앞선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고, 2021년에는 우승 결정전으로 kt가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냈다.)


8월말까지 한때 LG에 6게임차나 뒤졌던 상황에서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대역전 드라마를 펼친 OB의 뚝심과 저력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암흑기를 견뎌낸 OB 팬들도 그날만큼은 감격을 감출 수 없었다.


OB 베어스 선수단은 소름 돋는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뒤로 하고, 13년 만에 찾아온 구단 역사상 두 번째 한국시리즈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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