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를 그리다

공주, 부여 여행

by 민 경

오래전부터 정림사지오층석탑이 보고 싶었다.

아직은 뜨겁지 않은 초여름, 일단 숙소부터 예약했다. 그리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부여가 들어있는 편을 주문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편을 읽으면서 유홍준 교수님의 추천 코스를 정리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본 가고 싶은 곳들도 함께 적어뒀다.


그리고 출발하는 날 아침,

부여로 가려던 계획과는 다르게 공주로 출발했다.​ 한성에서 출발하여 웅진으로, 그리고 사비로 천도하였던 백제를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는 백제로 출발했다.


멀리 보이는 공산성이 너무 반가웠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이었다. 흐린 날씨는 개로왕의 죽음 등으로 인해 천도를 결정한 문주왕의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내 마음도 같이 복잡해져 성곽을 따라 걸었다.


공주의 밤파이를 먹고 무령왕릉 산책.

90년대까지는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통행을 제한하고 대신 모형을 만들어두었다. 때마침 날씨가 맑아져서 릉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숲이 더 초록 초록하게 느껴졌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보러 공주 박물관으로 갔다.

입구에서 어떤 외국인이 말을 걸었다. 영어 해설을 신청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영어 해설은 없다고 해서 전달해 주면서 통성명을 했다. 남아공에서 온 요셉을 위한 안내문이 없었다. 어쩌다 보니 내가 영어 해설을 하기 시작했다. 삼국시대, 도교, 연꽃을 내가 영어로 배웠던가. 그러나 그와의 대화 덕분에 백제의 유물들을 나는 더 천천히 보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를 부러워하는 요셉에게 이 모든 유물들이 무령왕릉에서 나왔으며, 여기서 조금만 가면 그 장소가 있다고 안내해 주었다. 이런 유물을 가진 나라의 사람이라는 것이 괜히 뿌듯해진다.


금강을 따라 부여로 가는 길.

쫓겨내려 온 웅진에서 다시 한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새로운 수도를 찾아야만 했던 성왕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보았다. 나는 삶에서 종종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해 왔다. 성왕처럼 미련과 희망이 공존하는 그런 선택들을.


로맨티스트 서동의 정원, 궁남지.

숙소에서 조금 쉬다 나오니 운 좋게 노을 질 무렵이었다. 낮의 궁남지와 밤의 궁남지를 모두 볼 수 있어 더 좋았다. 해가 지는 동안 걷기도 하고, 앉아서 물멍을 때리다가 놀러 온 사람들을 보았다. 어느 노부부가 서로를 찍어주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여 함께 찍어드릴지 여쭤보았다. 너무 좋아하시며 핸드폰을 내미는 두 분의 모습이 서동과 선화공주처럼 보였다.


그리고

오래 그리워했던, 정림사지오층석탑.

유홍준 교수님은 아침 안개가 가득한 새벽에 가서 보는 것을 추천하셨다. 그러나 요즘은 아침 9시부터 개방한다고 한다. 초연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아침 안개와 함께 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깊은 밤의 어둠이 또 다른 초연함을 만들어주었다.

1500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던 석탑이다.

부여의 중심에 위치한 것으로 추측건대, 불교 국가였던 백제는 사비로 천도하며 정림사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부흥을 꿈꾸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나 1층에는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키고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새긴 글이 있다. 그리고 사찰은 모두 불태워졌다고 한다. 사비의 중심은 그렇게 무너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사리를 찾겠다며 탑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지붕돌 일부가 부서지기도 했다.

희망을 꿈꾸기도 했지만, 상처받고 주변의 모든 것이 없어졌다가 또다시 주목받고, 아픈 순간들이 모두 모여 1500년의 시간이 지났다. 고난과 역경, 어려움 속에서도 긴 세월을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지키고 있던 이 탑이 나는 부러웠다.

또, 닮고 싶었다.


이른 아침이라 혼자 뒷산을 산책 나온 듯 부소산성을 걸었다. 부소산성은 그냥 편한 마음으로 걷는 것만으로 족한 곳이다.

거기에는 별스런 의미를 찾을 것 없이
고목이 다 된 참나무와 잘생긴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봄이면 새순의 싱그러움을 보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과 강바람을 끌어안고,
가을이면 오색 낙엽을 헤아리고,
겨울이면 나뭇가지에 얹힌 눈꽃을 보는 것으로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는 곳이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p.404

나는 새순의 싱그러움이 짙푸른 녹음과 강바람을 끌어안으러 가는 길목을 걸었다.


3천 궁녀가 없는 낙화암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백마강이 멋있었다. 갑자기 강에서 보는 풍경이 궁금해서, 차가 부소산성 주차장에 있지만 유람선을 타러 갔다.


선착장에서 내려 다시 부소산성 주차장으로 걸어가던 중 정말 우연히 옛 백제 왕궁 터를 지나게 되었다. 평소 터만 남아 있는 곳이 의미가 없다 생각했었다.​

이곳에 서서 머릿속으로 백제의 궁을 내 마음대로 그려보았다. 말할 수 없는 것들로 마음이 가득 찼다. 정말 여기에 백제 궁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흔적만으로도 가치 있는 것들이 있다. 이곳도, 우리의 역사도, 나도 그렇지 않을까.


다시 보러 간 정림사지오층석탑.

낮에 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나는 좋았다.

운 좋게 문화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따로 놀고 있던 머릿속 지식들이 이 탑을 중심으로 잘 정리되었다. 그리고 사진 속 각도가 정림사지오측석탑의 가장 아름다운 각도라고 한다.


정림사지오층석탑 뒤 부처를 모시던 전각이 있던 금당지를 지나면 석불좌상이 있다. 이 석불은 백제의 것은 아니다. 백제의 불상은 주로 작은 크기로 평소에는 금당지에 보관하다 멀리 나갈 일이 있을 때 품고 나갔다고 한다.

석불좌상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졌다. 원래 이 자리는 강당이 있던 자리였을 것이라고. 이 불상은 머리 없이 몸도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을 불자들이 연자방아에 얼굴을 새겨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의 뒤통수에는 구멍을 막은 흔적이 있다. 형태가 흐려진 부처님마저 소중하게 여긴 그 시절 그 사람들이 나는 좋다.


국사 배우던 시절부터 보고 싶었던 금동대향로를 보러 부여박물관에 갔다. 용산에 있는 것이 모조품이고, 부여에 있는 것이 진품이라고 한다.

점심시간쯤 갔더니 어둠 속에서 나와 금동대향로 둘만의 시간을 오래오래 가질 수 있었다. 너무 섬세하고 신기해서 10바퀴를 넘게 돌고 또 돌면서 구경했다. 교과서 사진보다 훨씬 멋있었다.

한 명 한 명의 다른 표정과 형태, 용의 모양 등 어느 하나 멋지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부여는 부처님이 어디든 계신 듯하다. 그래서일까. 부여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사탕은 달 것이요, 소금은 짤 것이요,
역사의 자취는 쓸쓸할 것이라고 값을 정한다면
이러한 의미에서
고적다운 고적은
아마도 우리 부여라 할 것입니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p.194

부여를 다녀오고 나는 한동안 계속 그리워했다.

도시 곳곳에 있는 그 쓸쓸함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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