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봉 Feb 27. 2023

시간이 남긴 흔적

오늘도 집으로 출근합니다

증명사진이 필요해서 찍게 되었다. 10년 전 사진을 쓸까 했지만 양심 없는 거 같아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 찍어서 오래 쓸 생각이었기에 근처 사진관을 검색해서 예약하게 되었다.
"증명사진 촬영 예약 가능한가요?"
" 네~ 용도가 어떻게 되시죠?"
"기본증명사진입니다"
"흰색 배경에 손님이 준비해 오신 그대로 촬영합니다~"
 그런데 흰 셔츠 입고 가려고 했는데 배경이 흰색이면 이상할 것 같아 사진관에 문의했더니 배경색 변경에 추가 비용이 들고, 어두운 계열의 옷이 사진이 더 잘 나온다는 추가 설명도 해 주셨다. 하지만 어두운 계열 상의가 없는 나는 난감했다. 이거 때문에 옷을 살 수도 없고 고민하다 네이비 재킷을 함께 챙겨 가기로 했다.

사진 찍으러 가는 날 여유 있게 나왔지만 길을 잘 못 들었다. 늦지 않으려고 뛰었기에 사진관에 도착하자 심장은 평소보다 빠르게 뛰었다. 사진 찍기 전 설렘이라 착각하기 좋은 두근거림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앉아 있으니 직원분이 오셔서 안내를 도와주셨고 안내받아 간 곳에는 드라이기, 고데기, 빗, 헤어왁스, 재킷 및 블라우스, 초대형 거울 등이 있었다. 도구가 있어도 쓸 줄 모르는 똥 손이라 옷 갈아입고 머리는 빗으로 빗어 정돈했다. 준비실 한쪽 벽은 사진 샘플들을 뽑아 걸어 뒀는데 하나같이 예쁘게 잘 나왔다. 봄을 닮은 풋풋함과 여름을 닮은 싱그러움이 묻어났고 봄과 여름을 닮은 젊음은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찍힐 수 있나 하는 기대를 품고 있을 때쯤 사진 찍을 수 있었다.


"일단 웃으면서 한 장, 안 웃고 한 장 찍어 볼게요" 하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데 찬란한 기대는 유리창처럼 부서졌다.
사진 속 저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어색한 표정은 둘째 쳐도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삐뚤어진 몸, 무너진 턱선, 번들거리는 피부에 수줍게 보이는 주름살까지. 거울로 볼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타인이 보는 내 모습은 이럴 수 있다는 생각에 할 말이 없어졌다. 다른 사람을 찍은 게 아닐까 했지만 분명히 나였다. 사진을 보며 빛나는 젊음을 찾는 동안 사진 기사님은 능숙하게 촬영 준비를 하셨다.

"허리 더 펴시고요 어깨 힘 좀 빼시겠습니다 몸 오른쪽으로 살짝 트시고 얼굴은 왼쪽으로 살짝만. 턱 살짝 들고 눈은 크게 떠 주세요. 아~ 눈에 너무 힘주면 눈썹까지 올라가니 눈만 크게 뜬다는 느낌으로. 좋아요! 이 자세가 바른 자세입니다. 이제 눈동자만 제 손을 따라올게요. 몸은 움직이지 마세요." 하시고는 연속으로 셔터를 누르셨다. 사진 찍는 동안 자세 유지하느라 숨도 꾹 참고 있는데 " 다 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소리에 숨을 길게 내쉴 수 있었다.
주름은 없애고, 턱 선은 갸름하게, 눈은 키워주시고요 콧대도 좀 높여주세요라는 말을 꾹 참고 사진관을 나왔다. 증명사진을 찍으러 간 거지 다른 나를 만들려고 간 건 아니니까. 시범으로 찍은 사진보다 잘 나오기를 바라며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태권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반갑게 내려왔다. "엄마 일찍 왔네 사진 예쁘게 찍었어요?" 묻는 아이에게 "아니 예쁘게 안 나왔어. 나이 들어 보여서 슬펐어" 하고 씁쓸하게 웃자 나를 유심히 쳐다보던 아이가 "아니야~ 엄마 예뻐" 하며 배시시 웃는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둘째에게도 "엄마 이쁘지? 맞지?" 하니 둘째도 "응 엄마 이뻐 " 하고 둘이 환하게 웃어주니 덩달아 웃게 되었다. 꼬물이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위로도 해 줄 수 있을 만큼 자란 거 보니 무의미하게 보낸 것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었다.  
지나간 시간이 얼굴과 몸에만 흔적을 남긴 것 같아 속상했는데 아이들에게도 내 시간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었고 봄을 닮은 풋풋한 젊음은 꽃피우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가만히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살펴본다. 왼쪽 뺨과 코 사이 팔자주름이 살포시 보이고 웃을 때는 눈 주변에 주름이 생긴다. 왼쪽에서 자는 아이들을 토닥이며 재우다 보니 팔자주름이 생기고, 자주 웃다 보니 눈가에 주름도 생겼다. 다행인 건 미간 주름은 아직 생기지 않았다.
부지런히 관리하지 못해 생긴 주름이라 속상해하며 밉다 했는데, 자세히 보니 시간의 흔적이 보인다.  차곡차곡 시간의 흔적이 쌓여 지금보다 더 주름진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사진을 잘 찍지 않았지만 이제 그 모습도 애쓴 나이기에 활짝 웃으며 찍으려 한다. 찬란했던 젊음도 시간의 흔적이 담긴 주름도 모두 내 모습이니 예쁘다 말해주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