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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ros the Great - 1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

by 흐르는강물처럼

<글래디에이터>는 2000년에 개봉된 리들리 스콧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러셀 크로우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입니다. 73회 아카데미 영화 시상식에서 5개 부문 상을 받았으니 명작 영화라 할 수 있고 개봉된지 25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즐기고 있으니 명작이 분명합니다. 저는 극장에서 두 번, 집에서는 대여섯 번은 본 것 같습니다. 보통 역사드라마에는 실존인물도 등장하지만 극적인 재미를 더하기 위를 가공의 인물도 등장합니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가공의 인물과 가공의 내용을 버무린 영화였습니다. 역사 영화라기보다는 정치-전쟁영화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그의 아들 콤모두스는 실존인물이지만 주인공인 비운의 장군 막시무스는 가공의 인물입니다. 역사적 사실도 굴절이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 개봉을 한 <글래디에이터> 속편에서는 전편의 가공의 인물 막시무스와 루실라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超가공인물이 검투사가 되어 등장합니다. 가공의 영화는 재미는 있습니다만, 영화를 통해 역사적 인물과 그 시대 상황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기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역사다큐멘터리에는 가공인물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전혀'라고 묻는다면 '혹시, 조금, 글쎄'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교수님들의 해설이 사실감을 더 높여주고 내용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만들어줍니다. 이 또한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술수(?)라면 제가 미끼에 낚인 물고기이겠습니다만. 그럴 리는 없습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아우렐리우스황제와 콤모두스를 이야기하는 넷플릭스의 <로마제국 시즌1 콤모두스:피의 지배>에는 명상록의 저자이기도 했던 철학자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아들 콤모두스와 그 시대의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던 알량한 역사적 지식에 새로운 지식을 더할 수 있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재미를 맛보았습니다. 넷플릭스에는 이외의 역사다큐멘터리도 많습니다. 논픽션드라마로 진행되는 가운데 역사를 전공한 대학교수들이 출연하여 짬짬이 해설을 해주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간혹 마지막 퍼즐조각이 딱 들어맞을 때에 느끼는 - 과장해서 말한다면 - 득도했다는 엑스타시로 어지러움을 맛보기도 합니다.


보통의 상업성 영화에서라면 알렉산드로스는 우람한 체격의 전사의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시청한 시리즈물에서는주변의 참모들이나 병사들에 비해 결코 크지 않은 키와 체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적 고증에 철저히 따른 결과라고 봅니다. 왕이라서 오히려 더 작아보이는 체격이었지만 그만큼 총명한 눈빛이 더 빛나는 진실한 알렉산드로스였습니다. 체격의 부풀림도 역사왜곡이라고 여기는 듯한 역사다큐멘터리에 한 층 더 믿음이 갑니다.


단편으로 끝나는 내용이 아니라 보통 6~7편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요즘은 드라마라 부르지 않고 시리즈라고 부르는가 봅니다. 뭐라 불리는 게 뭐 중요하겠습니까. 역사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시간은 머리는 무거워지고 마음은 가벼워지는 즐겁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역사家 E.H.Carr의 말을 잠시 인용해 봅니다. 그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크로체(1886-1952,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역사가)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당대사, contempory history)라고 선언했는데, 그것은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요한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E.H.Carr의 명표현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말도 크로체의 '모든 역사는 현대사(당대사)'라는 말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봅니다.


역사가는 아니지만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제가 육십 대 중반의 나이에 과거의 역사를 '당대사'로 엮어 보는 재미가 사뭇 쏠쏠합니다. 집에서 러닝머신과 사이클링 운동으로 팥죽 땀을 흘리면서도 눈과 귀는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흡인력이 대단합니다. 시간을 걷고 역사의 수레바퀴가 아닌 역사의 자전거를 타고 까마득한 인류의 과거로 돌아갑니다. 러닝머신에 올라가기 전의 나와 내려올 때의 내가 다르다는, 건방지게 '개안(開眼, openning eyes)'이라는 말을 떠올려보는 재미 그 이상의 그 무엇입니다. 중간중간에 역사학자들이 고대 유적 발굴 현장을 찾아 설명을 해줄 때면, 특히 어떤 사실의 원인이나 이유 또는 결과를 설명해 줄 때면 두 눈이 확 떠지는 듯합니다. 그래서 우리 집 러닝머신은 제게는 타임머신과 같습니다.


-고대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 콤모두스, 칼리굴라.

-고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로마의 시저,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중세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토요토미 히데요시-토쿠카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일본 막부정권의 쇼군들.

-동로마제국을 무너뜨린 오스만제국의 메흐메트 2세. 왈라키아의 블라드 대공.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그의 황후 엘리자베트.

-근대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

-그리고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등등.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중세, 근대로 가서 제가 만나고 온 과거의 인물들입니다. 요즘은 2400년 전 과거로 돌아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 고대 오리엔트의 패권을 두고 다투던 두 라이벌을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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