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친지들이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서 한양 도성을 떠나던 관리들을 십리(十里)까지 나가서(往) 배웅을 하던 데서 지명 왕십리(往十里)가 생겨났다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군가로부터 5리까지 함께 가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10리까지 가주어라'라고 하셨으니 왕십리(往十里)의 원조는 예수님이실 듯합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재미난 유래를 가진 지명(地名)이 많습니다. 대만에 가면 스펀(十份)과 지우펀(九份)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스펀의 뜻은 10인분, 지우펀은 9인분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지만 한때는 한적한 시골 두메 마을이었습니다. 주민이래야 스펀은 10명, 지우펀은 9명이었답니다. 생활용품과 식재료를 사러 큰 마을로 갈 때에는 동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뭔지 물어보고 본인 것뿐 아니라 온 동네 물건을 함께 사 왔습니다. 그래서 10인분(十份), 9인분(九份)을 사 온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웃사람 얼굴도 제대로 모르고 사는 현대 도시인들에게는 시골마을 인심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스펀은 소원을 적어 하늘로 올려 보내는 천등(天燈)을 날리는 관광명소이고, 지우펀은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25년 7월 3일, 3박 4일간의 대만여행을 떠났습니다. 분당에 사는 사위의 고마운 초대로 딸네 식구와 함께 대만으로의 네 번째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갈 곳이 마땅찮으면 대만이 어떠냐고 하며 은근히 여행지를 대만으로 유도했습니다. 대만은 중부지방인 화롄과 자의치로 북회귀선이 지나는 더운 나라입니다. 지구가 23.5도로 기운 채 태양을 돌기 때문에 6월 21일 하지 정오에는 태양이 정통 90도의 각도로 대만에 정수리에 꽂히게 됩니다. 이 시간에는 그림자가 없어지는 시간입니다. 이때부터 달구어진 대만의 열기는 열기가 쌓여 7,8월을 지나면서 점점 더 뜨거워집니다. 이 더위에 대만을 가자고 한 데는 숨은 의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10 년 전 방문했던 12월의 지우펀이 여름에는 어떤 분위기일까 사뭇 궁금했습니다. 사랑스러운 연인은 옷색깔만 바뀌어도 감탄의 탄성을 내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계절의 옷을 갈아입은 지우펀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함께 여행하는 사위와 딸에게도 다시 오고 싶은 곳이 되어 주리라, 초등 1학년 손자에게 '어린 왕자'가 될 수 있는 감성을 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사막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만에 다시 오고 싶은 것은 지우펀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나를 소년처럼 지나치게 들뜨게 만드는 대만의 샘은 지우펀이었습니다.
지우펀은 참 특이한 매력을 품은 곳입니다. 구릉이라기엔 높고 산이라기에는 조금 낮은, 해안절벽에서 망망한 태평양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천경개는 좋으나 9명 주민들은 삶이 고달팠던, 그러다가 일본 식민지이던 시절 1920~30년대에 맞은편 산이 금광으로 호황을 누리면서 인구가 4만 명 가까이 늘어났던, 광산 광부들의 고된 심신을 달래주며 흥청거렸던, 금광이 폐광되면서 삶의 또 다른 터전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또다시 한적한 시골 마을이 된 지우펀이었습니다.
3박 4일 하나투어 패키지여행의 3일 차는 예류지질공원-스펀-지우펀방문이었습니다. 하루 일정의 마지막이 지우펀인 것은 지우펀의 낮과 밤을 꼭 함께 봐야 하기 때문이라는 가이드의 멋진 해설이 있었습니다. 5년 전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을 갔을 때도 알함브라 궁 안에서 낮을 보았고 그리고 오후 늦게 궁을 벗어나 궁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알바이신 언덕에 올라 조명 불빛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알람브라의 밤을 보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낮은 모든 것을 노출시키지만 밤은 보이고 싶은 것만 드러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연극무대의 조명처럼 말입니다. 지우펀의 여름 낮과 밤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만큼 다릅니다. 취두부 가게 앞에서 느끼던 대낮의 후각이 밤에는 마비되고 맙니다. 홍등 불빛에 취한 시각이 후각을 잠재웠나 봅니다. 분명 현실인데도 판타지 세상처럼 느껴지는 곳입니다. 골목길 계단이 가파를수록 더욱 환상적이 됩니다.
지금의 지우펀이 낮이라면 한때 지우펀이 밤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우펀이 흥청대던 시절은 진과스가 금광산으로 호황을 누리던 때였습니다. 진과스의 호황은 수많은 남자들을 광산으로 끌었고, 뒤이어 수많은 여인들과 상인들이 '골드러시'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광산의 갱이 붕괴될까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고된 노동에 시달린 진과스 광부들이 하루를 마감하는 곳이 지우펀이었습니다. 백 년 전 진과스의 호시절에는 좀 더 걸렸겠지만 지금은 버스로 두 곳을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남짓한 지척인 두 곳입니다. 식육점 고기가 붉은 조명을 받아서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듯이, 지우펀의 골목길들은 하나 둘 홍등이 켜지면서 요염하게 변신했습니다. 진과스의 남자들은 곡괭이를 던지고 밤마다 불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불나비처럼 홍등이 빛나는, 적당히 어두워진 지우펀의 붉은 골목길로 들어섰을 것입니다. 이렇게 진과스는 생산하고 지우펀은 소비하는 경제공동체가 되어 동반성장을 해갔습니다.
지우펀의 밤이 붉게 타오르게 하는 땔감이 되었던 진과스(金瓜石)의 금이 고갈되면서 지우개로 지워진 듯이 지우펀은 또다시 옛날 '9인분' 시절처럼 잊힌 마을이 돼버렸습니다. 산간 마을이 돼버린 지우펀의 골목골목 가가호호에 붉은 등이 다시 내걸리고 또다시 호황을 누리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1989년 허우샤오 센 감독의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의 배경지가 바로 지우펀과 진과스였습니다. 영화를 본, 영화 소문을 들은, 덩달아서 지우펀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났습니다. 나도 그 대열에 끼여 지우펀을 두 번이나 찾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행 가이드의 추천으로 여행을 다녀와서 보게 된 영화 <비정성시>는 지우펀의 소리 없는 흐느낌을 들려주었습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영화에 나타난 절묘한 메타포 때문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소장 속의 기생충처럼 박사장 저택에 기어든 일가족과 대장 속의 기생충처럼 지하실에서 숨어 사는 가정부 남편이 기막힌 은유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구절양장(九折羊腸 아홉 번 꺾인 양의 창자) 같은 지우펀의 구불구불한 계단 골목길이 영화 속 '임씨' 가문의 갈 곳 없는 네 형제들의 삶에 대한 시각적 은유로 절묘했습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벗어나 국민당 정부가 통치하던 시절. 지우펀의 유지였던 임씨 가문에는 네 아들이 있었습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비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네 아들은 조직폭력, 마약, 징병징용, 독재에 대한 항거 등으로 근현대사의 풍상을 겪으면서 조용히 침몰해 갔습니다. 수백 년간의 외침으로 지배자만 바뀌었을 뿐 남의 지배만 받아왔던 대만인들은 임씨 집안의 네 아들이 겪었던 고초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을 안고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속울음을 울고 사는 그들에게 영화 <비정성시>는 울고 싶은 사람의 뺨을 후려주는 손바닥이었습니다. 막내아들 문청(배우 양조위 扮)의 청각과 언어장애는 모든 대만인이 역사적, 정치적으로 겪은 억업과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역사는 잔혹의 역사입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찬란함은 인도와 아프리카의 슬픔을 먹고 자란 것이었고, 천년 제국 로마의 영화는 피정복지 노예들의 고통이었듯이, 중극의 명나라와 청나라 그리고 네덜란드, 스페인, 일본은 돌려가며 대만인들의 한과 서러움을 먹고살았습니다. 같은 중국이지만 다른 나라들보다 오히려 중국 대륙에게 천대를 받아 온 대만사람들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스페인 일본은 때리는 시어머니였고 대륙 중국은 말리는 시누이 같았습니다. 역사는 가장 화려하고, 강대하고, 위대했던 시절을 찬양하고 그 결과를 추앙할 뿐입니다. 역사는 아이러니입니다. 지금의 지우펀의 붉은 홍등의 불빛도 황금기 진과스에서 벌어진 착취와 지나간 시절의 또 다른 의미의 홍등에 꽂힌 심지에서 타는 불꽃입니다.
좁은 골목과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오른 뒤에 동네 꼭대기에 나타난 것은 지우펀국민소학(九份國民小學)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학교입니다. 일본제국주의 잔재라고 하여 우리는 '국민학교'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었습니다만 대만은 아직 초등학교 명칭에 '국민'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명나라, 청나라, 지금의 중국인 중화인민공화국 등 본토에 있던 나라들보다 대만을 51년간 식민지로 지배했던 일본에 더 호감을 가진 나라가 대만이라는 말이 맞긴 맞나 봅니다. 때리는 시어머니 일본, 말리는 시누이 중국이라는 제 생각이 정말 맞나 봅니다. 거리에 다니는 자동차들도 일본산 자동차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일망무제(一望無際 한눈에 끝없이 펼쳐짐). 구절양장의 골목길을 벗어나 지우펀 언덕에 서서 태평양을 바라보노라면 떠오르는 표현입니다. 사방이 막힌 좁은 골목을 금방 지나왔으니 바다의 망망함이 골목길에서의 답답함을 일거에 날려줍니다. 골목길에서는 보지 못했던 언덕 경사면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집들 사이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영화 <비정성시>에서 주인공들이 걸어 오르던 비포장 산길이었을 것입니다.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에서 유람선을 타고 위를 올려다보면 지우펀 경사면의 집들이 이태리 아말피해변의 광경과 흡사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행지들의 차이와 같은 점을 스스로 찾아보는 것 또한 여행이 갖는 매력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다시 오고 싶은 곳을 또 하나 갖게 되어서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10 년 전에 와서 지우펀을 친구 삼았다면 이번에는 더 젊어진 지우펀을 만났습니다. 언젠가 또 만나면 또 더 젊어진 지우펀을 만나겠지요. 추억은 점점 더 아스라해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