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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Mar 18.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까불이가  나보다 낫다 79

까불이가 나보다 낫다


          

흰 고양이 한 마리가 후다닥 지나갔다. “워매 놀래라!”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 고양이들의 습성을 잠깐잠깐 잊어버린다.

‘가만있어 봐라, 우리 까불이는 어디 있으까요?’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까불이는 평상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진짜 사람 같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앙증맞은지 그를 아이처럼 내려다본다.

그러다 손이 시려 방으로 들어왔다. 우연히 창밖을 보는데 ‘아뿔싸!’ 흰 고양이가 나타났다. 그놈을 까불이가 혀로 핥고 있었다.  

“아따, 아까 나를 놀래킨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 고양이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참 눈이 이쁘게도 생겼다야.”

흰 바탕에 검정 점이 하나 있는 이 고양이는 부티 나고 귀여움을 장착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또 하나 손님을 맞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고양이가 서로에게 물고 빨고 어찌나 다정하게 구는지!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뒹구는 고양이에게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정분이라도 난 듯했다. “아, 아리랑고개로 넘어 가부렀네. 난리 나부렀네”

그러다 고양이들은 저희를 지켜보는 것을 눈치챈 듯, 후다닥 평상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짜식들,  거시기 허네"    


며칠 전, 성길씨가 말했다.

“나비가 여자 친구 데리고 와서 밥 먹고 갔어요.”

그때 나는 “예~”하고 무심히 고개만 까닥거렸다. 마을버스를 타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궁금했지만 나중에 물어봐야지 싶었는데. 이제 까불이는 눈치 안 보고 '데이또'를 하는구나.    

 

까불이는 삼색이가 두 번째 임신해서 낳은 새끼다. 내가 처음 봤을 때 까불이는 눈도 못 뜬 새끼였다.

까불이는 하도 까불이 짓을 해서 다른 이름을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사고만 안 치면 댄께.’

까불이는 경계심이 강했다. 까불이가 처음에 사람을 무서워하는 데는 제 형아를 닮았다. 어미 삼색이가 첫 출산 때 낳은 ‘형아’ 이녀석은 사람을 끝내 안 따르고 어미 따라 집을 나갔다.

나는 사람을 영 안 따르는 형아에게 섭섭했다.

‘즈그 형아도 저랬는디.’

그의 형아 성격을 아니 까불이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날마다 먹을 것을 주고 눈을 맞추자 까불이는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저 작고 섬세하고 액체처럼 투명한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면 내가 볼 수 없는 저 건너 다른 세상이 다 보일 것만 같다.  

   

그런데 왜? 죽어서 계곡에 던져진 새끼도 눈에 밟히고, 집 나간 어미 고양이도 눈에 밟히고,  남은 까불이도 눈에 밟히는 것일까. 어쩌자고 이렇게 눈에 밟히는 것 투성이냐! 평생을 눈에 밟히는 것을 지나치지 못하고 살았다. 그래서 내 별명은 오지랖이다. 사람이며, 물건이며, 동물이며, 나무며, 이놈의 잔정 탓에 남들을 챙기다 보니 세월이 갔다.

나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까불이 이리 와. 앞으로 어쭈고 되겄지. 니 엄마랑 형아 자리 이모가 메꺼줄게!”


까불이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까불이는 내 종아리를 비비다가 평상 다리를 비비다가 난리 부르스를 친다. 나의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다가도 참새가 나타나면 후다닥 뛰쳐나간다. 까불이는 또 진지할 때는 진지하기도 하다. 마당으로 날아든 새를 꼬나볼 때는 엄청 신중하다.

그러다가도 까불이는 멍하니 하늘만 쳐다본다. 왜 그러냐? 계절 타냐? 거문고 타는 것도 아니고. 배를 내밀고 나에게 “긁어줘.” 애교를 떨던 게 엊그제인데 왜 지금에 와서 무드 잡냐? 나는 측은하여 고기도 삶아 먹이고 눈곱도 떼어주고 간혹 집에서 재워주었다. 까불이는 성길 씨 연탄보일러실에서 잔다. 하얗던 배와 다리가 연탄 퍼 나르다 온 것처럼 시커멓다.

“너 그러다 까마귀 되겄다.

어미도, 형아도 다 떠나버린 까불이가 나와 같아 안쓰럽다. 나도 엄마도 돌아가시고 오랜 시간 같이 살던 강아지 솔이도, 산이도, 내 곁을 떠났다. 그건 슬픔이다.

까불이는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알게 모르게 속으로 삭이고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까불이가 다행히 멋진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온 것이다.

“까불이 여자 친구 봤어요?”

텃밭에서 검정 비닐을 걷던 성길 씨가 연자방아에 서 있는 나에게 물었다.

“아따, 겁나게 이뻐요. 까불이가 눈이 높더라고요.”

나는 흥분했다.

“이쁘죠?”

성길 씨도 흐뭇하게 웃었다.

“좋겠다, 사장님, 며느리 보셨네.”

나는 농담조로 말했다.

“예?”

성길씨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이해력이 좀 달린다는 얘기를 내가 했던가? 그는 좀 버퍼링이 심한 구식 폰처럼 버벅거린다.

“아이고, 까불이한테 그냥 잘 됐다는 얘기지요. 어쩐지 요새 방에 들어오겠다고 떼도 잘 안 쓰더라고요.”

나는 하하 웃었다.

“잘 됐다. 까불이 혼자면 어쩔 뻔했어.”

나는 해가 지는 연자방아에서 서서 중얼거렸다. 맞은편 빈터에서 마른 억새 몇 개가 바람에 나부낀다. 까불이는 밭고랑에서 앞발로 밭에 씌었던 비닐을 잡으며 뛰어놀고 있다.

새끼들은 어른들처럼 감상에만, 젖지는 않는다.

배를 뒤집고 내 발꿈치를 따르는 것을 보면 고양이도 정이 들면 강아지가 되는구나. 생명을 가진 동물은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짜아식! 눈은 높아서! 니 여자 친구 귀티가 잘잘 흐르더라.”

나는 까불이에게 좋은 말을 했다.

물론 중성화 수술을 시켜서 2세는 어렵겠지만.

‘미안하다. 까불아! 근디 새끼 있으면 너 밖에 가서 알바 해야 해! 멕여야지 입혀야지 박스로 집 만들어야지 그러다가 물 새면 비닐 씌워줘야지 차라리 잘 됐다 해라.’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텃밭 가에서 성길 씨가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까불이는 꽃샘추위가 온다는데 따뜻허게 보내겄네. 나보다 네.’

성길 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초저녁에 성길씨 여동생이 놀러 왔다.

내가 여동생에게 말했다.

“까불이 여자 친구 생겼어요.”

여동생은 성길 씨를 쳐다보며 불렀다.

“오빠!”

“왜? 나보다 낫다고.”

순간 셋이 큰소리로 웃었다. 성길 씨 보일러실 연탄이 활활 타올랐다. 방안에 온기가 차기 시작했다.

     

까불이가 도도와 마당을 가로질러 스치듯 사뿐사뿐 걸어가고 있다

“까불아, 니 여자 친구랑 내가 밥 한 번 사께!”

나는 까불이 여자 친구를 '도도'라고 불렀다. 그녀는 누구도 2m 접근금지이었다. 까불이만 그녀 가까이 갈 수 있었다.

나는 까불이 뒤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나도 느그들이 부러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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