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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Apr 17.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삽질 혼자 했다고 놀라기는 91

삽질 혼자 했다고 놀라기는



                 

날씨 한 번 죽여준다. 놀 거리를 찾았다. 산을 타고 넘어오는 미풍이 콧잔등을 일으켜 세웠다. ‘에라 일이나 허자, 놀면 뭐 허냐’ 막사를 정리했다. 성길 씨 연탄창고에서 삽과 쇠스랑을 꺼냈다. 막사 옆 땅을 갈아엎었다. 상추씨 뿌린 것은 싹이 나올라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성격이 급한 나는 뭐든지 빨랑빨랑 움직여야 한다. 막사 옆에다 상추 모종을 해 얼른 따먹고 싶었다. 작년에는 삽질 두 번 하고 허리를 폈다 구부렸을 뿐인데 여기저기 전국이 쑤시고 난리였다. 요즈음은 한 방에 해치운다. 남한산성 정기를 받은 효과가 나타났다.


성길씨가 상추모종판을 들고 택시에서 내렸다. 성길씨는 내가 갈아엎은 밭을 보고 놀랐다. 나도 술에 취한 듯한 성길씨를 보고 놀랬다. 성길씨는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묵은땅이 뒤집어있으니 놀랐고. 나는 성길씨가 시내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술에 취해서 놀랐다. 우리는 서로 놀랐다. ‘음, 일찍부터 소주 한 잔 걸쳤구나’ 그는 요새 자주 술에 취한다. 그놈의 하남 교산 3기 신도시 개발발표를 한 후 안주도 없이 자주 깡소주를 마신다.

    

성길씨한테 밭을 갈아엎기 전 삽을 꺼내 쓴다고 전화를 할까 하다 그만뒀었다. 전화했으면 내가 밭을 갈아엎은 것 알았을 것이다. 그는 막사 옆에 서서 말했다.

“이걸 혼자 다 했어요?”

그는 혹시 삽질해 준 사내라도 있나 싶어 두리번거렸다.

“네. 여기 살면서 힘이 쎄진 거 같어요. 힘이 남어 도는디 발목에 타이어 차고 같이 남한산성 한 바쿠 돌아불까요?”

“......”

그는 내가 농담한 줄 모르고 손을 내저으며 산에 안 가겠다고 했다. 그가 얼마 전 병원에서 당 떴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로 그는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에 올랐다. 누가 보면 히말라야 가려고 기초체력 다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살이 너무 빠져 볼이 쏙 들어가 난민처럼 바짝 말라버렸다. 내 친구들이 성길씨를 볼 때마다 “어디 아파요?” 물었다. 그래서인지 그 후 그는 쉬엄쉬엄 산에 간다.  

    

성길씨는 입술이 마르는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성길씨는 밭을 덮은 검은 비닐에 구멍을 뚫고 상추 모종을 했다.

‘나도 저렇게 허고 싶다’

이런 내 생각을 눈치를 챘는지 성길씨가 말했다.

“추위에 견딜라면 비닐로 덮고 모종을 해야 해요”

그는 나에게 검은 비닐을 잘라 가라고 했다.

‘그렇지, 상추도 내의를 입어야지. 근데 뭔 일이래, 비닐을 가져가라고 허고.’

아무래도 저 짠돌이가 술기운에 가져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재빨리 서부농협 옆 화원으로 차를 몰고 날아갔다. ‘얼른 자전거를 배워 이럴 때 타야 허는디’ 탈 줄 알지만 사람 많은 곳에서는 내려 끌고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상추 모종 3천 원어치 18개를 사다 비닐 뚫고 빛의 속도로 심었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더라’ 콧노래를 부르면서 시원하게 호스로 물을 줬다. 성길씨는 그 꼴이 보기 싫었는지 내 옆을 지나가다 한마디 던졌다.

“물을 시도 때도 없이 주면 상추에 찐이 안 생겨 맛이 없어요. 뭘 알아야지.”

부지런한 내가 병인지. 아니면 수도 요금 많이 나올까 봐 그러는지 아리송한 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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