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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Apr 27.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오리고기 미수사건 94

오리고기 미수사건


 

                    

“산, 솔, 집합!” 혹시 검정비닐봉지 못 봤냐? 그 속에 오리고기 들었었는디.”

“이모, 무슨 개소리예요? 우리가 개일망정 그런 짓은 안 해요.”

산이와 솔이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시끄럽고 입 벌려봐라.”

십 년을 넘게 같이 산 우리는 대화가 가능했다.

      

나는 오리고기를 꽤 좋아한다. 오리고기를 먹으면 꼭 집에 싸 가지고 온다. 집에 있는 강아지 솔이와 산이에게 먹이기 위해서였다. 녀석들과 인연은 파란만장했다. 둘 다 페키니즈였다.


산이가 분리불안으로 짖어 쫓겨나 남양주 평내동 야산 밑에서 살 때다. 어느 가을날 생오리구이 집에서 친구들과 모였다. 오리고기를 먹었다. 집에 늦게 들어갈 것 같아 미안한 맘에 일부러 남겨서 싸달라 했다. 오리고깃집을 나와 2차로 집 근처에서 소주를 마셨다. 나는 건망증이 금메달감이라 오리고기 싼 검정비닐봉지를 손목에 끼고 술을 마셨다.

우리는 열한 시쯤 해산했다. 비닐봉지가 내 손목에 있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집으로 걸었다.  친구가 한 잔 더 하자고 전화를 했다. 거절 못 하는 내 성격, 집 싱크대 위에 검정비닐봉지를 던져놓고 3차 술집으로 나갔다. 시간도 늦었고 취기도 올랐다. 나는 술을 마시면 무조건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내가 그 옛날 독립운동을 했다 치자. 전기로 지지고, 사방이 하얀 방에 혼자 몇 날을 가두는 고문은 참아낼 수 있다. 하지만 술 마시고 잠을 못 자게 하면 동료를 불어버릴 만큼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다. 도저히 졸려 못 참겠었어 일행들을 두고 먼저 집에 왔다. 오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리고기 봉지를 찾았다. 없다. 화장실과 냉장고를 샅샅이 뒤졌다. 내 정신머리가 워낙 산만해 혹시 장롱 속에? 물론 없었다. 그야말로 귀신 곡할 노릇이었다. 어젯밤 화면을 돌려봐도 나는 분명히 손에 들고 왔다. 나는 확신한다. 고로 의심이 간다.

나는 산이 솔이의 입을 벌리고 냄새를 맡았다. ‘앗, 술 냄새’ 오히려 솔이는 앞발로 내 얼굴을 밀었다. 산이는 일어나 식탁 밑으로 잽싸게 가 엎드렸다.

어젯밤 내가 헛것을 보았나? 분명히 손목에 끼고 왔는데. 같이 있었던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손목에 달랑달랑 달고 갔어야”라고 했다. 그럼 오다가 떨어트렸나?  물론 두 녀석 주려고 싸 온 거 맞다. 내가  분명히 오리고기를 집에 가져온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잃어버린 오리고기를 포기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산이랑 솔이랑 방에서 공차기를 했다. 공이 튀어 작은방 행거 밑으로 굴러갔다. 공을 끄집어내는데, 웬 검정비닐봉지!

“이게 뭐냐?” 비닐을 펼쳐보았다. 오리고기 쌀 때 줬던 된장이 들어있었다. 마늘 상추는 없었다.

“야! 그럼 그렇지.”

나는 곰곰이 역 추적을 했다.

“산이 솔이! 오늘 공차기 끝이여. 이리 안저봐. 솔이 니가 산이에게 의자에 올라가서 비닐봉지를 마루로 던지라고 시켰지? 그러니까 산이가 발로 톡 찼지? 그래서 둘이 펼쳐놓고 먹어부렀지? 술은 한잔 안 했냐?”

언제 적 이야기를 하냐는 듯 두 녀석은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봉지는 저기 행거 밑에다 솔이가 꼼치고?”

솔이는 머리가 좋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솔이는 눈치가 백 단이다. 외출해서 솔이를 혼자 둘 수 없을 때 식당에 데리고 간다. 솔이는 테이블 밑으로 알아서 들어간다. 나올 때까지 얌전히 엎드려 있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가 유혹을 해도 솔이는 를 절대 곤란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런 솔이가 완전범죄를 저질렀는데 된장 때문에 십 리도 못 가고 딱 걸렸다.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솔이와 산이 주려고 오리고기를 싸 들고 집에 올 일이 없다. 녀석들이 있을 때 간혹 집에서 백숙을 끓여 먹었었다. 어느 날 두 녀석이 생각나 백숙을 끓였었다. 나는 알았다. 혼자 먹는 백숙은 맛이 없다는 것을. 콧물은 왜 그리 나오는지, 훌쩍거리다  식탁에 고개를 박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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