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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May 02.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쥐는 숨을 데라도 있지 96

쥐는 숨을 데라도 있지

      



 “이게 뭐여! 이건 분명 까불이 짓 같은디?”                          

신문을 가지러 밖으로 나갔다. 시커먼 털 뭉치 같은 것이 밭고랑에 엎드려 있다. 다가가 눈을 모아 들여다보았다. 순간 고개를 들고 한걸음 물러섰다. 죽은 두더지 같았다. 전에 까불이가 잡은 두더지를 본 적 있지만, 두더지인지 헷갈렸다.

나는 며칠째 그 털 뭉치를 밭에 그대로 놔두고 비닐을 덮고 아침에는 걷어냈다. 두더지인지 뭔지 상추밭이랑 붙어있어 같이 덮을 수밖에 없었다.


한 사흘 지나서 내가 밭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성길 씨가 마당으로 나왔다.

나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꼬불쳐놓은 오만 원짜리 6장을 들고 나왔다.

“일 나갔었어요? 며칠 못 봐서요.”

“네. 집 짓는데 목수일 했어요”

아. 맞다. 며칠 전 성길씨가 공구 벨트 허리에 차고 마당 입구 들어서다가 “이게 얼마인 줄 아세요” 나에게 물었었다. 공구 벨트는 8만 원이라고 했었다. 그는 공구 벨트 허리에 찬 자기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까불아 느그 아빠 겁나게 멋드러지다” 까불이는 연자방아에서 뛰어내렸다. 성길씨는 뚜벅뚜벅 수돗가로 내려와 의자에 앉아 담배를 꼬나물었었다.

“아, 일 나갔었구나. 월세 늦어 미안혀요.”

“요새 다들 힘들 텐데.”

“저 누룽지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해요.”

“그러세요?

“근디 아저씨! 제 상추밭에 두더지인지, 쥐에미인지 시커먼 게 있어요.”

성길씨는 밭을 향해 걸어갔다. “ 두더지네요” 성길씨는 손가락으로 꼬리를 잡아 연탄재 있는 곳으로 던졌다.

그때 풀치가 나타났다. 풀치는 한발 늦었다며 아쉬워했다. 나를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은 풀치, 그러나 그의 눈은 풀려있었다.

성길씨는 풀치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까불이가 요새 밥값 하네. 저것들이 땅 파서 밭을 못 쓰게 하거든요.”

고양이들도 밥값을 한다고 저러는데. 까불이보다 못한 저 풀치를 무엇에 써먹을까.     

성길 씨는 두더지를 만진 손으로 30 만원에서 월세 27만 원, 전기세 만원 제하고, 이만 원을 내게 주었다.

‘저 손으로? 아이고 환장허겠네.’

돈이라 안 받을 수도 없고... 나는 손가락 끝으로 받아 들고 들어와 얼른 씻었다.

그사이 풀치는 삽을 들고 두더지를 잡겠다고 성길씨 밭에서 지랄 옆차기를 하고 있었다.

“야 새애끼야, 사앙추 모오종 다 흐지르고 너 주그을래!”

성길씨는 풀치를 밀치면서 삽을 빼앗았다. 풀치는 술 취한 몸이라 맥없이 홀라당 나뒹굴었다. ‘어허 소온만 사알짝 돼엤을 뿐인데’라는 표정을 짓고 성길씨는 나를 쳐다봤다. 밭 가에 서 있던 나도 어이가 없었다. 저렇게 쉽게 꼬구라지다니. ‘에라 부실아. 너를 어쩌까’ 나는 풀치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풀치는 민망했는지 방아깨비보다 못한 다리로 일어서려다 푹 주저앉았다. 앞니가 다 빠진 입으로 그는 빙그레 웃었다. 나는 웃어야 할지, 손뼉을 쳐야 할지 감이 안 왔다. 밭 꼴은 말이 아니었다. 성길씨는 짜증 난 얼굴로 풀치 뒤로 갔다. “야 일어나 새끼야” 풀치 등을 잡아끌다시피 일으켜 세웠다. 풀치는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일어났다. 참말로 풀치도 성길씨도 죽은 두더지도 나도 그냥 짠했다.  

    

까불이는 며칠 후 또 생쥐를 잡아 왔다. 나는 까불이 목덜미를 들어 올렸다. 생쥐는 발이 얼어붙어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나는 까불이가 생쥐를 잡아 올 때마다 발을 구르며 생쥐를 쫓았다. 오늘도 손바닥을 치며 발을 구르며 길을 터주었다. 생쥐는 조그만 네 발로 미친 듯이 밭 가운데 있는 막사 뒤쪽으로 도망갔다. 쫓기는 것들은 안쓰럽다. 그래도 고양이한테 쫓기는 쥐가 부럽다. 쥐는 숨을 데라도 있지... 나는 누룽지 회사에서 이틀 일하고 잘렸다. 잘린 이유는 ‘일을 많이 안 해 본 사람’ 같다는 것이었다. 이제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차가운 비바람 속에서도 머위와 쑥이 쑥쑥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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