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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un 12.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물증은 없지만  108

물증은 없지만



성길씨가 아침 일찍 수돗가 철제의자에 앉아있다. 나는 대빗자루를 가지러 그의 옆을 지나갔다. 그는 걷어 올린 바지를 내리면서 말했다.      

“까불이 새끼들이 없어졌어요. 어제는 세 마리가 오늘은 두 마리마저 안 보여요.

그의 목소리는 우물쭈물했다.

“아침부터 뭔 말이에요? 어제저녁 참에 내가 황태포 줬을 때 다섯 마리 다 있었는디.”

성길씨는 새끼들이 없어졌는데, 저러고 태연자약하게 앉아 있다. 마을회관 가서 새끼들 없어졌다고 방송은 못 할망정, 그의 흐릿한 모습이 나는 석연찮았다.

“누가 집어갔나 봐요.”

그는 지금 폴딱폴딱 뛰어도 모자랄 판에 너무나도 가볍게 말을 했다.

“옴매!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한 발짝만 움직여도 새끼들이 보일러실로 우르르 몰려가 버리는디. 아저씨만 안 피허고.”

“누가 가져간 게 분명해요. 어미가 밤새 울면서 찾아다녀요.”

성길씨가 저렇게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확신에 찬 그의 말이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생각을 해봐요? 누가 보일러실 안까지 들어와 데꼬가겄어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와서 대전 동생 순원이에게 했다.

“아니, 고양이 새끼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없어져 버린 게 말 되냐?”

“애들이 낯을 많이 가리잖아?”

“당연허지! 마당에서 놀다가도 날 보면 피허는디. 간식도 먼디서 던져줘야 허고”

“혹시 아저씨가 귀찮아서 분양해 버린 거 아니야?”

“어, 그럴 수도 있겄다! 분명 내부 소행이여. 사룟값 든다고 까불이 엄마랑 형아랑 쫓아냈거든. 나랑 사료를 번갈아 사 주기로 합의했었는디도.”   

  

정황은 있는데 증거가 확실치 않았다. 증거도 없이 들이댈 수도 없고 나는 산에 올랐다. ‘이럴 때 산이가 있었으면 내 발꿈치 뒤를 졸졸 따라 왔었을 텐데. 산이는 성길씨가 지난밤 한 일을 알 수도 있었을 텐디.’

산이가 하늘에 있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화를 삭이느라 중얼거리면서 걸었다.      

인천공항에서 해외로 입양 가는 애들과 유기견들이 떠올랐다.

나는 강아지를 키우면서 어미와 새끼를 떼어 놓는 게 마음 아파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어떤 이는 그게 더 잔인하다고 했지만 나는 엄마랑 떨어지는 게 더 무서운 일이라고 믿었다. 나는 여섯 살 때 엄마랑 떨어져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 있었다. 그때의 공포를 나는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    

  

나는 잘난 머리로 새끼들 행방을 추리했다. 그러다가 술안주로 계란찜을 준비했다. 그때 마당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내다봤다. 새끼 두 마리가 어미 도도랑 뽀뽀를 하고 얼싸안고 있었다. 까불이는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앗싸, 지금 술이 문제냐.’

나는 마당으로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그럼, 나머지 세 마리는?’


미스터리다. 나는 성길 씨를 의심하면서 계속 추론해 본다. 성길 씨가 세 마리를 잡아서 분양하는 것을 보고 놀란 새끼 두 마리가 도망갔다. 어딘가 꼭꼭 숨어 있다가 엄마 울음소리를 따라 두 마리가 돌아왔다. 그럼 얼마 전 성길씨가 새끼 주려고 샀던 참치캔은 뭐라는 말인가. 내 머리로는 헷갈린다.  

   

성길씨는 아빠 까불이 어미 도도 새끼들까지 퉁 쳐 나비라고 불렀다.

나는 새끼들 이름을 순동이 와 점박이로 지어줬다. 성길씨는 새끼들 이름을 입안에서만 굴렸다.

“아저씨, 순둥아! 점박아! 이렇게 크게 불러보세요.”

“부를 일 있으면 부르겠지요.” 하면서 집으로 쌩 들어갔다.

‘이름 한번 부른 것이 무시 저렇게 부끄러울까. 데이트 헐 때 여자 부를 때  여기요 저기요 했으까’   

   

그 후로도 새끼 세 마리는 볼 수가 없다. 이 사건은 고골에서 일어난 고양이 도난 사건의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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