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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un 19.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지나간 놈은 없냐 110

지나간 놈은 없냐  




나뭇가지에 거품이 피웠다. 개 집 위로 벚꽃이 떨어진다.     

남한산성 북문으로 올라가는 초입 농막에 할머니가 혼자 산다. 할머니는 혼자 맘 편안하게 살고 싶어 자식들에게 안 간다고 했다. 마당 끝에는 털이 눈을 덮은 성견 두 마리가 목줄에 묶여 있다. 나는 개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와서 손을 흔들다 산에 오르곤 한다.

         

할머니는 오늘도 어김없이 마당을 쓸고 있다. 마당은 흘린 밥알도 주워 먹을 만큼 깨끗하다. 강아지 새끼 다섯 마리가 할머니 비질을 따라다닌다. 반가운 마음에 구멍이 뿡뿡 뚫린 초록색 철 대문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할머니! 새끼 언제 났어요?”     

“얼마 안 됐어.”     

“아따 손주들 많아 좋겄다.”       


나는 그 뒤로 새끼들을 보러 농막을 자주 찾았다. 새끼들은 마당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새끼들은 매일 보다시피 하는 나를 보고도 일단 짖고 보자였다. 내가 손을 흔들면 우르르 꽝꽝 무조건 짖고 보는 놈, 너 누구야 하고 멀뚱멀뚱 쳐다보는 놈, 철 대문 앞까지 와서 손을 줄 듯 말 듯 하는 놈, 파란 슬리퍼를 물어뜯다 어정쩡 짖을까 말까 망설이는 놈, 장독대 옆에 앉아 시큰둥 따라 짖는 놈, 성격이 다 제각각이었다.      

목줄에 묶인 개 두 마리가 짖으면 영문도 모르고 새끼들은 따라 짖었다. 개들은 왜 낯선 것들을 보면 꼬리를 흔들면서 짖는 것일까. 내가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다.   

             

하루는 훤칠하고 잘생긴 연규 오빠가 집에 놀러 왔다. 밥을 먹고 동생들이랑 산에 올라갔다. 할머니네 집 개 두 마리를 가르치며 내가 말했다.

“나는 새끼들 볼 때마다 겁나게 이해 안 되는 게 있어요.”

“뭘.”

“저렇게 떨어져 있는디 새끼를 어떻게 만들었으까?”

“야, 지나가는 놈은 없냐.”     

순간 머릿속에서 까마귀가 까악 거리며 날아갔다. 나는 너무나 맞는 말에 할 말이 없었다. 벚꽃이 바람 따라 하얗게 춤을 췄다. 세상엔 여전히 인과를 알 수 없는 일 투성이다.  

         

며칠이 지났을까.  빗자루는 장독대에 옆에 세워져 있었다. 목줄에 묶여 있는 중 한 놈이 나를 처음 본 것처럼 진폭을 달리하며 짖었다. ‘너는 어쩌 맨날 봐도 처음 본 것처럼 짖냐’ 녀석에게 손을 흔들었다. 녀석은 방방 뛰었다. 옆에 있던 녀석은 짖지 않고 힘없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그전 같으면 둘이 같이 뛰어올라 짖었다. 농막을 자기들이 보호한다는 듯이 길길이 날뛰었다. 팽팽해진 목줄을 칼등으로 살짝 만 갖다 대도 끊어질 것처럼 짖었었다. 나는 아무리 짖어도 제자리인 녀석들이 뛰어오를 때마다 허공 속으로 사라졌으면 했었다. 개들은 뛰어오르는 것도 전진하는 것도 일 미터도 안 됐다. 한밤중에 할머니를 보호하고 싶어도 일 미터 만큼 짖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마당에서 볼볼 기어 다니던 새끼 다섯 마리가 안 보인다. 새끼들을 아무리 불러도 참새 우는 소리만 들렸다. 벚꽃 하나  으로 뛰어내렸다.     

그야말로 새끼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할머니가 새끼를 분양한 것 같았다. 새끼 잃은 어미를 생각했다. 참 인간이라는 게. 강아지들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데리고 와 키워줄 처지도 아니라,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동안 누가 어미인지 구분을 못 했었다. 멍하니 있는 개가 어미인 것 같다.   


내가 처음 이 길을 알았을 때 할머니는 똘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를 키웠었다. 똘이는 사계절 은행나무에 묶여 있었다. 똘이는 할머니 파란 슬리퍼를 자주 물어뜯었다. 나는 똘이를 볼 때마다 산이랑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던 똘이가 어느 날 안 보이기에 할머니한테 물었다.

‘풀어놨더니 밭에 놓은 쥐약을 먹고 부대끼다 죽었어.’

그래서 지금 개들은 목줄을 풀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할머니 밭에는 봄마다 취나물로 가득하다. 할머니는 취나물이 꽃이 피면 낫으로 베어서 버렸었다.

“종이에 ‘취나물 한 봉지 3천 원’이라고 적어 대문 앞에 붙여 놓고 파쇼. 아까운 걸 왜 버리요?” 안타까운 마음에 할머니에게 말했다.     

나도 산에서 내려올 때 몇 봉지 사 들고 와 지인들에게 나눠 주곤 했다. 내겐 한 움큼 더 주기를 은근히 바랬지만, 할머니는 저울로 달아 딱 그만큼만 준다. 산을 오고 가는 이들이 제법 사 갔다. 새끼들이 사라지고 나니 취나물 한 움큼 덜 준 할머니가 인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산을 오를 때 할머니에게 아는 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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