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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un 22.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목포 사나이 태연  111


목포 사나이 태연  



           

1

그는 삼성 이건희 회장을 빼닮았다. 처음 본 사람은 삼성가 사촌쯤으로 생각한다. 그는 목포에서 제일 큰 신발 가게를 운영한다.

그의 이름은 이태연. 태연씨 아내 명희는 나랑 깨복쟁이 친구다. 태연씨는 골프 치는 사람을 ‘부실이’라고 한다. 아니 미쳤다고 한다. 그런데 내 친구 명희는 골프를 친다. 명희의 골프채는 남편 태연씨의 날씨에 따라 온전하든가 개박살 나든가 둘 중 하나다. 태연씨는 기분이 좋으면 콧노래를 부르며 명희 골프채를 차 트렁크에 실어준다. 기분이 엿 같은 날에는 트렁크에 있는 채를 꺼내어 ‘미친것들’ 하면서 바닥에 내동이 쳐버린다. 대신 태연씨는 장구를 친다.     

이런 태연씨 태도에 명희는 “애기 같지 않냐?”라고 밤늦게 술을 마시고 나에게 전화를 했다.

아따 태연씨는 할리인지 데이비슨인지 오토바이 타고 댕겨 놓고 새삼스럽게 뭔 일이래. 글고 장구 치는 것은 안 미쳤고 골프는 미쳤고, 아따 그런 법이 어디 있대?” 둘 다 치는 것은 마찬가지인디 사기만 안 치먼 되지. 장구는 예술이고 골프는 사치냐? 골프 못 친 내가 부실이지. 요새 게나 고둥이나 다 치더라. 신사임당은 외국에서 몰라도 세계에서 박세리 모른 사람 어디 있어! 세리 동생이 국위선양 한 거지. 근디 나도 공치다 말았는디 이걸 왜 헐까 생각은 했어. 멀쩡한 산 다 깎아 나무 다 베고. 차라리 산 타는 것이 났지. 글고 산은 그냥 걸으면 되잖어. 돈도 안 들어가고. 골프 친 사람들 말은, 공을 쳐야 나이 먹어가면서 외롭지 않다는디, 나는 공 안 쳐도 말 헐 사람 겁난디.”

전화에 대고 나는 열변을 토하면서 명희를 위로했다.

“너 지금 나 위로를 한 거냐? 나보고 공을 치지 말라는 거냐?”

나는 처음에는 분명 명희 편을 들었는데 어느새 태연씨 편도 들고 있었다.

언젠가 아는 동생과 목포 태연씨 집에 갔을 때였다. 그 동생이 내게 말했다.

“저 형님 공쳐요?”

“아니, 겁나게 싫어해.”

“공치는 사람들 미쳤다고 한다면서요? 그런데 골프복을 입고 계시네.”

“태연씨는 골프복인 줄도 몰라. 명희가 사다 준 대로 입는 거야.”    

 

태연씨는 무엇이든 아내랑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한다. 명희랑 시골 오일장에 가서 맛있는 거 사 먹고, 목포시민들 집에 다 불러서 밥 먹고 술 마시고. 태연씨는 명희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어 한다. 다정도 지나치면 병인데. 명희는 태연씨에게 ‘제발 일만 하지 말고 여행 좀 다니라고’ 했다. 여기서 태연씨의 일이란 육체노동이 아니다. 태연씨는 입으로 지시만 한다. 진짜 온갖 일은 명희가 다한다. 나는 명희가 일하는 것 보면 화가 난다.  

“저럴 때 보면 태연씨는 독재자여!”

이렇게 명희 앞에서 내가 태연씨 흉을 보면 오히려 명희는

“내가 일을 해야 성에 차서 난 남을 못 시켜.”

“지금 태연씨 두둔 허는 것이여? 그래 내 남편 남이 흉보면 열 받지.”   

  

아따 말이 어째 옆으로 샜다. 명희가 태연씨에게 제발 놀러 가라고 한 다음 날, 목포시가 조용했다. 온종일 붙박이처럼 가게만 보고 있던 태연씨가 어째 하루 내내 보이지 않았다.

명희 말에 의하면,  

태연씨는 아침 일찍 삐까번쩍한 구두를 신고 골프복으로 쫙 빼입었다. 그는 친구들과 목포역 뒷골목으로 관광버스를 타러 갔다. 태연씨는 고양이 발톱 숨기듯 버스를 탔다. 그는 발을 버스 안으로 딛다가 깜짝 놀랐다. 나이가 꽤 든 여자들이 칸칸이 한 명씩 앉아 있었다. 그는 왼손으로 제일 앞 좌석 등받이를 짚고 내릴까 말까 망설였다. 그러나 어느새 발이 버스 중앙에 서 있었다. ‘어차피 하루 놀러 온 것인데’ 싶어 착석했다. 태연씨는 창가 쪽에 앉아 있는 여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여자가 살짝 웃었다. 누나같이 보였다. 태연씨는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물론 명희보다는 안 예뻤다)

버스 출발 직전 ‘골프의 신’ 홍배씨가 버스에 올라왔다. 홍배씨는 태연씨 단짝인데 정말 농담 잘하고 웃기고 재밌는 사람이다. 게다가 태연씨가 싫어하는 공을 잘 친다. 홍배씨는 콧노래를 부르며 차에 올랐다. 여자들을 보더니 순간 얼음이 되었다. ( 태연씨 말에 의하면 여자들 나이가 너무 많았다나) 냅다 돌아섰다. 이때 태연씨가 뛰쳐나가 홍배씨 허리춤을 잡았다. 그 말 많고 웃기던 홍배씨는 버스 안에서 내내 묵언수양하였다.


어디쯤 갔을까. 버스 가이드가 남녀 모두 내리라고 하였다. 노상에 테이블을 깔고 밥을 먹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모두들 남녀에게 아슬아슬한 시간을 준다고 해서 갔는데, 시간도 안 주고 매가리 없이 끝났다. 태연씨는 실망했다. 그렇지만 평소 배포 큰 태연씨는 목포 돌아오는 길에 버릇이 나왔다. 버스 안에서 모두에게 “오늘은 내가 쏩니다!” 말하고 설렁탕 집에 차를 대게 했다. 그러자 태연씨 인기는 누님들에게 폭발적이었다. 이렇게 하여 태연씨는 친구들과 몰래 ‘묻지 마 관광버스’ 여행을 다녀왔다. 이것도 모르고 다음날 명희는 남편에게

“어째 어제 목포가 다 조용했으까 희한하다” 하자 태연씨는 명희에게 자진신고 해버렸다. 태연씨는 그 뒤로 ‘묻지 마 관광버스’는 한 번도 타지 않았다. 태연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 아따 그 누님들 꿈속에라도 나올까 봐 무섭더랑께”     

2     

내가 김장하는 날이었다. 태연씨는 일 년에 한 번 나오는 곱창 김과 홍어, 말린 민어와 자연산 굴을 보냈다. 친구, 개, 고양이 다 모여서 태연씨가 보내 준 것으로 동네잔치를 벌였다. 그날 음식은 배추보다 더 많은 사람이 먹고 남았다.


태연 씨 손은 항공모함만큼 크다. 집도 태연씨 손만큼 크게 지어버렸다. 그야말로 펜트하우스다.  

집에 엘리베이터도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현관에 ‘열락제’ 현판이 걸려있다. 그 아래는 절구통에 신안 천일염 소금이 가득 차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금으로 된 장식장이 놓여있다. 연회장에는 탁구대도 있다. 집이 이백 평이다. 도우미들이 청소하다 말고 도망간다. 한번 오면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집안에는 10평 되는 정자가 있다. 정자에는 노래방 시설이 있다. 서울에서 나와 친구들이 떴다 하면, 태연씨는 친구들을 총 충돌시켜 자연산 음식을 공수해 온다. 열 명이든 스무 명이든지 상관없다. 아낌없이 날 샐 때까지 음식을 내놓는다. 홍어애탕, 낙지탕탕이, 소사시미, 굴비, 신기한 젓갈, 건정을 비롯하여 온갖 음식을 정자 안에 차려놓는다. 그는 독학으로 요리를 개발해 손수 음식을 만든다. 겉절이는 정말 기가 막히다. 뻘밭퉁게 꽃게회까지 쉴 새 없이 상에 올라온다. ‘세상에나 이걸 언제 다 먹냐’ 끝도 없이 나오는 음식을 보면 명희 부부는 요술을 부리는 것 같다. 이 집에서는 배 터져 죽는 일이 생길 것 같다. 밤새 노래하고 술 마시고 배에 잔금이 생겨 죽었다가 살았다가 하룻밤에 부활을 몇 번이나 한다.

태연씨가 담근(남을 시켜서) 술병은 정자를 한 바퀴 돌고 거실로 나와 거실을 다시 한 바퀴 돌고 연회장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개봉한 와인 코르크가 집에 유달산만큼 쌓여 있다. MSG를 살짝 치자면 술병이 백 m쯤 줄 서 있다. 하룻밤에 산삼주를 몇 병을 마셨을까! 병 수를 세다가 다들 까무러쳤다. “병당 이 백만 원짜리 5병이면 도대체 얼마야!” 해가 떠오르면 우리는 지쳐 잠을 자러 각자 방으로 들어간다.

다음 날 아침 해장으로 짱뚱어탕 염소 고기를 사 먹인다. 우리는 먹고 또 먹어 걷기도 힘들다. 목포에 처음 온 친구가 말했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목포 평화광장 앞바다로 해가 떨어지자 우리는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태연씨는 서울로 출발하는 차를 잡고 ‘ 하룻밤 더 자고 가소’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꼭 다시 오겠다고’ 우리의 간절한 애원에 겨우 차 문을 놓는다. 언제 배달시켰는지 차 트렁크에 목포 특산물 한 짐 실려있다.  

    

태연씨 신조는 99살까지 일하다 죽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업체가 몇 개 있는 줄도 모른다. 태연씨가 일을 벌여놓고 나 몰라라 해서 뒷일은 다 명희가 이룬 것이다. 명희는 태연씨에게 제발 더는 일을 만들지 말라 했다. 근데 태연씨는 또 철물점을 차리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명희는 집을 나와버렸다. 서울 딸 근처에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그 사이 태연씨는 타고 다니던 벤츠를 팔아 당구장을 차렸다. 명희가 잠깐 은행 일 보러 집으로 돌아오자 ‘옳다구나, 이때다’ 태연씨는 기어이 신발 가게 옆에 철물점을 차렸다. 철물점은 목포에서 제일 클 것이다. 그는 철물점 문을 열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한다. 농기계를 사려는 농부들은 새벽 일찍 온다. 태연씨는 할 수 없이 일찍 자야 한다. 밤새 술 마시고 놀던 시절은 종 쳤다. 그도 이럴 줄 몰랐겠지만, 대신 우리도 일찍 잘 수 있어 좋다.     


할 말이 많아 2 편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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