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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un 28.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목포 사나이 태연 113

5

목포는 집마다 별이다. 사람들은 음식점에 가면 별 타령을 한다. 이마에 별 다섯 개 붙이고 침대 광고하는 사장님도 아니고. 목포와 목포 근교 식당에서는 별이 하나니 다섯 개니 말할 필요가 없다. 식당마다 맛집이다. 하늘에 별은 각자 반짝거린다. 그런데 왜 음식점 별은 다섯 개여야만 빛난다고 생각할까. 구름에 가려진 별도 있다. 목포는 골목마다 고수들의 손이 숨어 있다. 목포는 반찬 하나하나가 별이다. 밥을 먹고 있는 그 사람 눈에서도 별이 팡팡 뜬다.

목포는 눈과 손이 저울이다. 양념을 대충 쳐도 맛은 특이점를 찍는다. 덜어냈던 밥을 밥풀도 안 남기고 다 먹는다. 음식만 맛있는 것이 아니다. 아래쪽 사람들은 행인길을 물으면 집 앞대문까지 데려다준다. 요새는 내비게이션 있어서 그럴 일이 별로 없지만.

언제부턴가 자유롭고 활발하게 변하고 있는 손맛의 도시, 정의도시,  목포는 맛있다.

목포 닮은 태연명희가 사는 그 곳을  이제는 내 고향만큼 좋아한다.  

    

목포에 내려온 친구들을 위해 태연씨가 들르는 곳이 있다. 바다와 붙은 평화광장에는 젊은이들의 버스킹이 열리는 곳이다. 밤이면 불꽃놀이 드론 쇼도 펼쳐진다. 그는 목포 갓바위 유달산 삼학도 케이블카도 태워주고 곧바로 대만동 커피숍 거리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해 질 녘 목포대교와 멀어지는 섬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무사하지 못한다. 그와 함께한  해미황사도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도 운림신방, 진 설록다원, 무위사, 김영랑 시인 생가, 다산 정약용 선생 유배지에서 단체 사진을 찍어주었다. ‘친절한 태연씨’.

한 가지 거시기한 것은 성격이 급해도 너무 급한 태연씨는 우리를 차에서 내려놓자마자 “얼른 돌아보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게” 한다.

성격이 더럽다고 해야 하나 급하다고 해야 하나. 펜션 수영장도 나무로 덮어버린 사람이다.

어느 날 그렇게 자랑하던 수영장이 송판으로 덮어져 있었다.

“아니 수영장 왜 막았어요?”

“아따 투숙객들이 수영장에 나무이파리 떨어졌다고 건져 달라고 밤낮으로 전화해대서 아예 때러 막아버렸네.”

“아따 그렇다고. 성질부려버렸구먼.”    

  

얼마 전 친구들과 해남 펜션에 짐을 풀었다. 우리는 새로 지은 펜션으로 아지트를 옮겼다. 펜션에는 신식노래방 기계가 장착돼 있다. 축구공만 한 사이키 조명도 설치돼 있다. 우리는 사이키 조명 아래 탬버린 치고 노래하면서 태연씨 처형 영주씨가 직접 담가 파는 고구마 막걸리를 마셨다. 삼색 사이키 조명과 고구마 술은 훌륭한 조합이었다.

나 어렸을 적에 채에 거르기 전 고구마 술 건더기를 손에 찍어 먹기도 하고 숟가락으로 떠먹었었다. 나는 신안 지도 내 고향 그 맛에 취해 저절로 마이크를 잡았다. 태연씨는 ‘유리 벽 사랑’ 명희는 ‘처녀 농군’을 불렀다. “그래 맨날 일하면서 노래도 그런 것 부르냐” 나는 명희에게 앞으로 장민호 ‘여행 갑시다’를 부르라고 했다. 마지못해 노래방 가면 말뚝처럼 앉아있던 친구들도 노래하고 춤췄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밤바다에 노랫가락을 흘려보냈다. 파도는 대답이라도 하듯 바위를 때렸다. 우리는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목적 없이 떠났다. 고구마 술에 취한 우리는 배를 타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잠깐 앉아 쉬었다. “아따 노는 것도 뻗치다” 엄마가 공부하라고 해도  이렇게 했을까.

나는 그래도 사모님인데 일만 하는 명희가 안쓰러워 태연씨에게 말했다.

“아따, 태연씨 이제 일 그만하고 명희랑 놀러 좀 다녀요”

“아따,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요.”

태연씨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어 가시를 바르던 명희가 말했다.

“나는 더 배고파야.”

“뭔 소리여?, 태연씨가 일 늘린다고 집 나갈 때는 언제고?” 나는 명희를 쥐어박고 싶었다.

태연씨도 놀랐다. 친구들도 막걸리 잔을 놓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항복! 부창부수네. 둘이 이백 살까지 일만 하다 죽으쑈. 나는 이 집 막내 딸 되어 줄 끊어진 기타 뜯고 베짱이 헐란께.”    

 

6

태연씨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목포역에 좌판을 깔고 시계를 팔았다. 그 돈을 밑천 삼아 목포 자유시장에 신발 가게를 차렸다. 신발 가게를 하는 도중에 명희랑 선을 봤다. 선보는 날 태연씨는 천 원짜리 넥타이를 맸다. 손톱 밑은 새까맸다. 명희는 왠지 그‘성실한 촌놈’이 맘에 들었다. 명희는 그간 서울살이에 지쳐있었다. 그래서 태연씨가 순수해 보였다. 손톱 밑을 보고 부지런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태연씨는 고생도 진짜 많이 한 사람이다. 지금 그는 남을 도울 만큼 성장했다. 그는 성실하게 사는 사람은 일가친척을 막론하고 무조건 밀어준다.


먹고살 만하다고 다 태연씨처럼 돈을 쓰는 것 아니다. 부자라도 여러 유형이 있다. ‘내가 어떻게 벌었는데’ 절대 한 푼도 남에게 쓰지 못하고 죽고. ‘내가 고생해 봤으니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길을 열어 준 사람’도 있고. 그냥 ‘천성적으로 돈이 아까워서 여전히 먹지도 입지도 못 하고 사는 부자’도 있다.

부자가 거저 되는 게 아니다. 태연씨도 안 해 본 일이 없다. 그가 일이 안 돼 코너에 몰렸을 때다. 그는 수영 선수가 반환점 벽을 짚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물속을 파고들었던 것처럼, 그는 반환점 벽을 막판으로 생각하지 않고 발판으로 생각했다. 그 시간이 흘러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태연씨는 ‘써야 내 돈인 거야!’ 한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것은 맞지만 벌 수 있게 해 준 것은 사회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기부를 하고 환원을 하려 한다. 혼자서는 부를 이를 수 없다고 그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태연씨 앞으로 돼 있는 부동산은 아무것도 없다. 다 아내 명희 이름으로 돼 있다. 태연씨는 은행과 부동산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태연씨는 여행 갈 때 명희랑 비행기도 같이 안 탄다. 한 사람이라도 살아서 재산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걱정도 팔자다.

명희는 모든 재산이 자신 거라고 자기가 나는 놈이라 했다. 내가 보기엔 명희는 ‘기는 놈’이고 태연씨가 ‘나는 놈이고 난 놈’이다.

펜션에서 걸레질하는 명희에게 내가 말했다. “야, 태연씨가 재산 니 앞으로 해놓고 너 꼼짝 마 한 거지” 명희는 내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고개만 갸웃댔다.  

태연씨의 탁월한 능력은 여자 보는 눈이다. 태연씨는 명희가 재산 들고 튀지 않을 여자라는 걸 알고 있다. 태연씨 부부는 자식들도 잘 키웠다. 다 부모 보고 따라 배우는 것이다.

     

태연씨 목포집 정자에 연대, 고대, 성균관대, 한양대. 대구한의대 아들 수시 합격증이 붙어있다. 딸, 심지어 며느리 대학 합격증도 붙어있다. 합격증은 해남 펜션 건물 이 층 커피숍과 3층 식구들이 쉬는 공간에도 붙어있다. 처음에 이걸 본 사람들은 신기해한다. 그러다가 곧 웃으면서 박수를 친다. 자녀들을 위해 치는 것이 아니라 태연씨 발상을 생각하면서 힘껏 쳐준다.  대놓고 자랑하는 태연씨가 귀엽다고나 할까.   

   

몇 년 전 한의사가 된 아들이 결혼하는 날이었다.

하객들에게 입장할 때 번호표를 나눠줬다. “목포 시민 밥 다 먹고 가라고 해놓고 뭔 번호표여” 그 까닭을 결혼식 끝날 즈음 알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제비 뽑기를 했다.

태연씨는 그동안 수많은 결혼식장에 갔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었다. 하루 일 다 제쳐두고 멀리서 온 사람들이 밥만 먹고 가는 것에 ‘이거는 아니여’ 해서 이런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했다.

상품은 금 세 냥, 은수저 50세트를 당첨된 사람에게 주었다.

우리는 “태연, 태연” 연호했다.

태연씨는 결혼식이 끝나고 며느리 친정 식구들 수십 명을 펜션에 다 재웠다. 그날 밤 친정 식구들에게 술과 음식의 고문이 이어졌다. 소문에 의하면 ‘먹다 죽게 생겼구나’ 했던 친정 식구들은 정말로 죽었다가 그날 오후에 부활했다고.

     

태연씨는 우리가 기차 타고 목포에 가면 차를 가지고 마중 나온다. 태연씨는 우리끼리 차를 가지고 다닐 경우를 대비에 기름 가득 채워놓는다. 겨울에는 히타도 켜놓는다. 요리도 잘해, 욕도 잘해, 못 하는 것 없는 그 이름은 태연.

해남 산골 촌놈이 부를 이루고 자식이 사회에 자리 잡게 된 것이 태연씨 힘만 있었을까. 태연씨에게 친구이며 연인이고, 아내이며 엄마 같고 세계에 일 제일 잘하는 명희가 있었기 때문이다.

태연씨! 명희가 열받아서 문서 들고 날면 태연씨 개털 됩니다.  그러니까 명희에게 골프 치라고 허세요. 죽으면 어차피 종 치는데. 명희가 공 잘 맞는 날은 태연씨가 장구 쳐주면 되고, 골프채 그만 바닥에 내던지 말고요. 알았죠?’ 그리고 태연씨 력도 살아나지 않길 바라오. 요즈음 우리 목포 가면 일찍 잘 수 있어서 겁나게 좋소.

   

태연씨에 관한 할 말이 넘쳐 목포 바 잉크라 해도 부족하지만 이만 종례를 하려 한다.  

그렇지만 어느 날 느닷없이 목포 사나이는 다시 등장할 것이다.


나에게 목포는 낯설었다.  이제는 목포와 해남은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 같다.

무화과 꽃처럼 숨고만 싶던 서울살이 막판에 갈 수 있었던 그곳. 나는 불안이 연속되면 자동반사적으로 기차를 타고 그곳으로 간다. 고통스러울 때 찾는 곳 중 하나다. 나는 망설임 없이 빈 몸으로 나설 수 있다. 해남과 목포는 나의 백이고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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