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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ul 21.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담배 사서 면회 가자 120

담배 사서 면회 가자     

          



용인에 사는 미성이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어쩐 일이여?”

“우리 아들 7월에 결혼한다야.”

“옴매매, 여름 손님은 호랑이도 무서워한다는디. 에어컨을 베 먹어도 거시기할 판에.”

“아들이 식장을 잡았어. 여름에 하면 결혼식장 비가 반값이래. 그 돈 아껴 다른 것 한데.”

“아들 멋져부러.”

내 말이 끝나자 미성이는 뜬금없이 풀치 안부를 물었다. 아마 자식 가진 부모로서 결혼도 못 하고 혼자 사는 풀치가 생각난 거 같았다.


실은 며칠째 풀치가 사라졌다. 마당도 조용하다. 불과 얼마 전 마당에서 오줌 싸고 지랄 옆차기 했었는데. 주민들은 여전히 풀치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풀치는 유령이나 마찬가지였다.

풀치 없는 마을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누님을 내가 좋아해요”   

풀치의 습관처럼 하는 저 소리 안들어 살 것 같다. 

  

풀치가 없으니 민방위 훈련하듯 불 끄고 숨죽이는 짓을 안 해도 된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 뭔가 미진함이 쌓여갔다. 그 모호한 미진함은 답답함이었다. 나도 그 답답함이 풀치를 떠올리게 했다. 풀치는 ‘유령’보다는 ‘바람’이 맞는 거 같다. 가끔은 나도 풀치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풀치처럼 살까?” 이 말을 했다가 친구들한테 맞아 죽을 뻔했다.  

    

작년 여름에 미성이가 놀러 왔었다. 미성이와 밤중에 평상에 쳐놓은 모기장 안에서 캔 맥주를 죽이고 있었다. 우리는 북극성을 찾고 있었다. 그때 술에 취한 풀치의 쇠 긁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그렇지” 나는 얼른 평상에 불을 껐다. 나는 납작하게 누웠다. 미성에게도 누우라고 했다. 까불이가 오징어 냄새를 맡고 평상 위로 올라오려고 했다. 나는 까불이를 발로 밀어냈다. 미성이는 이런 나의 민방위 훈련을 보고 ‘이게 뭔 일이래’

풀치는 일상처럼 코스대로 움직였다. 연자방아를 지나 마당으로 들어섰다. 평상 앞에 서더니 멈칫했다. 평소에 없던 모기장이 풀치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모기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숨을 죽인 채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가 왜? 하고 벌떡 일어났다. 내 눈과 방심한 그의 눈이 딱 마주쳤다. 풀치는 킥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나도 풀치를 한 방 먹였다는 것에 속이 다 시원했다. 그는 그동안 강아지풀만큼 가는  다리마른 잎사귀 같은 몸을 받쳐주 간당간당 걸어 다녔다. 오늘 풀치 다리는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꼬리뼈 안 뿌러졌나 몰라’ 그는 뭘 훔치려다 들킨 사람처럼 쏜살같이 마당 밖으로 나갔다. 술에 취했지만, 한밤중에 무심코 모기장을 들여다보는데 거기 똥그랗게 뜬 성난 눈 두 쌍과 마주쳤으니. 그때의 강렬한 인상 때문이었는지 미성이가 전화로 풀치 안부를 물은 것이다.  

    

풀치가 사라지기 바로 전날이었다. 친구들과 문어를 사 와 먹고 있었다. 풀치가 주방 창문 안으로 손을 쑤욱 넣어 한 점 달라고 했다. 친구들이 놀랐다. 내가 얼른 나갔다.

“내가 챙피해서 못 살아. 친구들 왔을 때 제발 이러지 마라고 했지!”

평상시 같으면 노래를 부르든지 소리를 지르든지 하는데, 풀치는 악도 쓰지 않고 그냥 조용히 물러갔다. 그리고 그 후 나타나지 않았다.   

  

고골 카페 여사장님을 버스종점에서 만났다. 여사장님이 내게 물었다.

“술고래 어디 갔어? 요즘 안 보여서.”

“나도 잘 모르겄어요. 하도 보였다가 안 보였다 해서요. 지가 구름도 아니고. ”

성길씨가 마치 우리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길에서 만나니 성길씨가 반가웠다.

“술고래 어디 간 줄 알어요?”

내가 다가서서 말했다.

“술 마시고 마을버스 안에서 주정 부려 구치소에 갔다고 하던데요.”

그도 내가 반가웠는지 웃으면서도 새삼스럽게 풀치를 왜 묻는지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구치소 들어갔으면 다행이네.”

내 말이 끝나자 그들이 웃었다.

“술 안 마시고 꼬박꼬박 챙겨 먹고 건강해져서 나오네.”

나는 이렇게 말은 했지만, 내가 괴롭더라도 빨리 나오길 바랐다, 하지만 나오면 소주병으로 나발을 불 것이고, 들어가면 신경 쓰이고. ‘아따 이것이 무슨 맘일까.’  

    

별생각 없이 지내다가도 뜬금없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고 싶어 진다. 꽃들이 돌아오는 탓일까. 창문 너머로 내민 그 손에 문어 한 점 줄걸. 말없이 돌아가던 풀치 뒤통수가 자꾸 생각났다. 그런 일에 맘 다칠 풀치가 아닌데도 말이다. 하기야 그런 것을 알면 저러고 살겠어.  요즈음 풀치의 패인 두 눈이 더 깊어졌다. 얼마나 깊은지 눈 속에 고인 물 퍼다가 밭에 물 줘도 될 판이다. 어쩌면 저 세상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성이에게 전화했다. 풀구치소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했다.

“담배 사서 면회라도 가야 허나.”

“그렇게 걱정되면 담배 한 보루 사서 풀치 면회 가자.”

“그래 가자. 다리도 튼튼해지고, 살도 붙었으면 줗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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