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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Nov 13.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누가 호박에 발을 달았을까149

누가 호박에 발을 달았을까



                

  막사 뒤쪽 쉽싸리와 풀을 뽑다 나는 두 손 들었다. 뱀이 나올 것 같아 그 길로 다니지 않았다. 성길씨는 풀을 젖히고 그 길로 다녔다. 나는 호박이 궁금했다. 대나무로 풀을 젖히자 주먹만 한 호박이 줄기에 매달려 있다. 호박의 존재는 나와 성길씨 밖에 모른다. 성길씨도 풀을 젖히지 않는 이상 호박이 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얼마 전 성길씨가 다래를 따면서 막사 위에 호박이 열렸다고 알려줬다. 내가 심은 호박 줄기가 막사 위까지 뻗은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난 후 너럭바위에 올라가서 막사 위를 꼭 쳐다보았다. 호박꽃이 피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나는 성길씨가 심은 호박 줄기를 막사 반대쪽으로 돌려놨다. 줄기가 얽혀서 누구 것인지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호박꽃을 귀하게 여긴다. 꽃이 핀다고 호박이 다 열리는 것은 아니다. 열 개 꽃 중 한두 개만 호박이 열린다. 바람에 꽃이 떨어져 버린다든가, 저절로 떨어질 때도 있다. 호박이 열리는 꽃은 처음부터 꽃 뒤에 엄지손톱만 한 호박이 달려있다. 이게 점점 커 호박이 된다. 수꽃인가? 암꽃인가? 한 줄기에 암수가 같이 공존하는가. 알아봐야겠다. 올해는 역대급 무더운 날이 계속되자 주먹만 하던 호박이 여러 개 골았다. 그래서 살아남은 호박이 내게는 정말 고맙고 반가웠다.  

호박 넝쿨 뻗어가는 속도는 상상 이상이다. 순식간에 밭 전체를 덮어버리고 지붕 위를 점령해 버린다. 대한민국 경제도 호박 넝쿨처럼 쭉쭉 뻗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눈만 뜨면 막대기로 풀을 제치고 호박을 들여다보았다. 호박은 쑥쑥 내 기대에 부응하고 있었다. 새우젓 넣고 지져 먹을 정도로 크면 누구라도 따서 주려고 마음먹었다. 배추밭에 물을 주다가도 음식 쓰레기를 땅에 묻다가도 고양이들하고 놀다가도 호박을 들여다보았다.

“하, 낼모레쯤 따먼 쓰겄네.”

호박을 누군가에게 줄 생각에 나는 신이 났다.   

  

  마침 미선이가 점심 나절에 커피를 들고 놀러 왔다. 드디어 나는 호박을 따러 갔다. 풀을 싹 걷었다. 호박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호박 넝쿨을 일일이 제쳤다. 배를 땅에 대고 엎드려 찾아도 호박은 보이지 않았다.

“언니, 엎어져서 뭐 해?”

“나 참 이상허네. 호박이 없어졌어야.”

“뭔 소리야.”

미선이가 평상에 짐을 내려놓고 막사 옆으로 왔다.

나는 호박이 달렸던 꼬투리를 잡고 흔들었다.

“이 자리에 어제저녁때까지 있었당께.”

나는 두 손을 최대한 크게 벌려 미선이게 보여줬다.

“이렇게 컸어야, 새우젓 넣고 볶아 먹으면 입에서 녹아야.”

“언니, 됐어. 언니나 먹어.”

“귀신이 곡할 노릇이여.”

나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구만.”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남의 집 마당에 들어와 그것도 풀을 제치고 호박을 딴다는 것이 보통 심장 갖고는 안 되는 일인디.”

“언니, 잊어버려.”

“호박이 저 혼자 큰 거 같지? 내 발소리 듣고 컸는디.”

나는 식탁 위를 손가락으로 탁탁 쳤다.

“호박 하나 찾아 불자고 전봇대 매달려 있는 시시티브를 돌릴 수도 없고.”

나는 코를 씩씩 불면서 말했다.

“플래카드를 달든가 호박 찾는다고.”

미선이가 나를 놀리면서 말했다.

“그럴까. 그렇다고 성길씨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환장 허것네.”     

  실은 엊그제 막사 위 다래 넝쿨에 가려진 호박이 손을 탔다. 호박은 다래 넝쿨 안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래 넝쿨이 얽히고설켜 의자를 딛고 올라가 넝쿨을 제치고 얼굴을 들이밀어야 호박이 보였다. 미로 속 호박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폭발했다. 호박 따간 범인을 기어이 찾겠다고 마당으로 나와 소리쳤다. 성길씨는 아무 말 없이 마당을 지나다녔다. 이 와중에 풀치가 동묘에 가자고 들렸다. 내가 열받은 것을 본 풀치는 막사 주변을 둘러보았다. 범인 잡는 형사가 현장을 둘러보는 폼이었다. 풀치가 밭에서 나오면서 한마디 했다.

“누가 딴 간 것이여!”

저 말을 듣고 있다가 나는 더 크게 소리쳤다.

“어떻게 풀 속에 호박이 있는 것을 알었냐고.”

“언니, 차나 마셔.”

미선이는 창피해하며 나에게 손짓을 했다.

풀치는 마당에서 서성거리다가 평상에 앉 커피를 빨대로 빨며 나를 불렀다.

“누님, 이리 와봐요.”

“왜?”

풀치는 나에게 눈으로 평상을 가르치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나는 왠지 평상에 앉아야만 될 거 같아 평상 귀퉁이에 앉았다.

“이거는 필시 내부 소행인 거 같아요.”

나는 풀치 말이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글치? 그런디 증거가 있어야재.”

성길 씨는 수돗가에서 담배를 태우고 쪼그리고 앉아 있다.

“그까짓 호박 내 밭에 가서 따줄 게.”

내가 풀치를 째려보았다.

“누님, 동묘나 가게요.”  

“됐어, 동묜지 똥묜지 너나 가세요.”

풀치는 요즈음 동묘에 꽂혔다. 풀치는 나를 포기하고 성길씨를 꼬셨다. 성길씨는 얼른 따라나섰다. 그들은 등산복으로 빼입고 가방 둘러매고 마당 밖으로 나갔다. ‘산에 가는 것도 아닌데 웬 등산복이래’ 걸어가는 둘의 뒷모습이 왜 그리 꼴 보기 싫은지.

풀치는 뭔가 해결할 것 같이 설레발치더니만. ‘그럼 그렇지. 니가 뭐를 허것냐. 술이나 마실 줄 알지.’   

  

  풀치가 버스 타러 가다 성길씨에게 물었단다.

“형이 호박 따갔어요?”

“야 새끼야, 우리 호박이 있는데 내가 왜 따냐.”

“아니 저곳에 호박이 열린 줄 누가 알겠어요. 솔직히 말해요.”

“이 새끼, 너 뒤질래!”

 동묘 도착하기 전에 풀치는 성길씨한테 맞아 죽을 뻔했다고 했다.   

   

  “아, 아, 아, 주민 여러분 제 호박이 사라졌습니다. 발 달린 것도 아니고 비가 와서 떠내려가는 것도 아니고 무거워 날아가지도 못했을 텐디 어젯밤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혹시 호박 행방을 안 사람은 노란 페인트 집으로 연락 주십시오.”    

 

  마을회관에 가서 마이크로 이렇게 말을 할까 상상해봤다. 성길씨를 포함하여 용의 선상에 오른 사람이 몇 명 있다. 길을 가다가 그 사람들과 부딪히면 호박이 떠올랐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되는데 그중 심증이 가는 유력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내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죄를 짓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길 씨는 아니다. 추접스러운 짓을 할 사람은 아니다. 호박 하나 사라진 일로 나는 며칠을 속으로 끙끙 앓았다. 이럴 땐 왜 단순해지지 않는 것일까.    

 

  풀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말짱한 눈으로 마당에서 나를 불렀다. 풀치는 범인이라도 잡은 듯 흥분했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님! 밤새 생각했는데 성길이 형 후배가 따 간 것 같아.”

“왜?”

“그 후배가 간혹 누님 밭하고 형 밭을 들랑거렸잖아.”

“너도 들랑거려는디.”

풀치는 어이없다는 듯 나를 보았다.

“미안, 생각해 보니 맞네. 비름나물 뜯는다고 올 때마다 들랑거렸재.”

범인이 한 명 더 추가됐다. 여러분들 현명한 판단에 맡기겠다. 성길씨 후배는 호박 사건 이후로 나타나지 않았다. 성길씨 호박은 늙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 쑤는 거이고 내 호박은 적당히 크면 따서 지지고 뽁은 호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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