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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Nov 02. 2023

힐링푸드

하나 등갈비김치찜
"아빠 폐암이시래"
엄마의 눈이 바알간게 이미 병원에서 한바탕 울고 온 듯하다.
"폐암?"
비일상적인 단어를 들어서일까, 무미건조하게 되물었다.
운 좋게 조기에 발견해서 1기란다.
다행히 수술만 하면 된다며, 엄마는 울컥 쏟아지려는 감정을 참고 말했다.
다행이란 말이 참 다행스럽지 않게 쓰일 수도 있구나.
그렇게 시답잖은 생각을 이어가다 문득 아빠를 봤다.
역시나 별다른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
무슨 생각 중일지, 어떤 기분일지는 단정 지을 수 없었지만 어렴풋하게 알 것 같긴 했다.

티비에서 등갈비가 나오면 아빠는 꼭 나를 불렀다.
"야, 등갈비 저거 좀 해봐라"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등갈비요리의 귀찮은 점이나 뼈 밖에 없어서 먹을 것도 없다던지 하는 부정적인 부분들을 강조, 결론은 언제나 거절이었다.
물론 아빠는 내 주장을 전혀 납득하지 못한 채 아쉬움이 남은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본인과 가장 닮은 아들이 거절로 정했으면 쉽게 바뀌진 않을 거라는 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
항상 그렇게 포기를 하고 넘어갔지만, 등갈비는 주기적으로 방송에 나왔고
아빠는 매번 같은 요청을 반복했다.
물론 같은 요청엔 같은 답변만이 남았다.

수술을 위해 하루 전 미리 입원하는 것이 정해졌다.
엄마도 간병을 위해 함께 입원해야 하니 며칠간은 '나홀로집에' 다.
간단하게 장이나 보러 들른 마트에서 이것저것 바구니에 담다가 우연히 정육코너 앞에 멈춰 섰다.
여전히 앙상한 것이 영 맘에 들진 않았지만, 겉포장에 붙어있는 세일 이란 문구는 결국 등갈비를 집어 들게 만들었다.

레시피는 사실 단순하다.
묵은지와 등갈비를 대강 밑간 한 물에 넣고 1시간 끓이기만 하면 끝이다.
별일 없는 간단한 일일 뿐이다.
"간은 맞아?"
아빠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싹싹 발라먹은 남은 뼈가 대신 대답을 해준 듯했다.

딱히 의미는 없었다.
그저 등갈비가 운 좋게 세일을 하고 있던 것,
별 일 아닌 간단한 일일 뿐이었다.


둘 한우
"아빠 수술 잘 끝났어. 중환자실에 잠깐 있다가 일반 병실로 가신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살짝은 잠겨있었다.
밤새 불안함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계속 기도만 했겠지.
다행히 회복이 빨라서 그날 저녁 바로 일반실로 옮겼다.
상태가 좋아진 아빠와의 통화는 "괜찮아?" 그리고 "괜찮아." 단 세 음절씩 뿐이었다.
우리에겐 당연한 대화.

수술결과도 좋았고 회복도 순조로웠기에 예정보다 조금 빠르게 퇴원할 수 있었다.
절제한 폐의 크기만큼 목소리도 줄어든 것 같았지만 식욕은 그대로인 듯, 한우를 부위별로 잔뜩 사 왔다.
회복을 위해 몸에 좋은 걸 많이 먹어야 한단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더니 소를 먹음으로 외양간을 고치려는 상황이었다.
진작 좀 건강관리를 했어야지라고 잔소리를 하려다가 멈춘 건, 딱히 아빠가 잘못한 게 없다고 느껴서였다.
술이야 어쩌다 한 번씩 마시지만 담배는 당신 평생 입에 댄 적도 없던 사람.
젊은 나이에 암으로 떠난 막내고모를 보면서 친가 쪽 식구들에게 암이란 가족력이 있을 수 있겠다고 미리 예상했었기에, 폐암이라 들었을 때에도 왜 암이지?라는 생각보단 어째서 폐지? 가 먼저였다.
만약 다른 암이었다면 신나게 잔소리를 퍼부었을 텐데 말이다.

퇴원축하기념 겸 해서 동생가족이 집에 오기로 했다.
"아빠 좋아하는 소고기 사갈게 저녁 먹지 말고 있어"
동생의 말에 아직도 한참 남아있는 냉장고 속 고기들이 떠올랐지만 그냥 알았다고 했다.
작년에 태어난 손자는 아빠의 얼굴에 웃음을 띄울 수 있는 소중한 존재이다.
책임 없는 애정만 줄 수 있는 손자를 보는 것이 아빠에겐 또 다른 힐링이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밥상을 차린다.
고기 굽는 냄새가 거실을 가득 채우고, 한 상 가득 음식이 차려졌지만
여전히 아빠는 식탁이 아닌 손자만 쳐다보고 있었다.


셋 장어
"아빠, 항암 다시 받으셔야 된대"
데자뷰, 얼마 전에 봤던 장면이 다시 플레이백 되었다.
처음 진단을 받던 날보단 표정이 덤덤해졌지만 여전히 바알갛게 물든 눈인 엄마의 심정은 더 짙어졌다.
수술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다녀온 날, 날씨는 아직 쌀쌀했다.

현미경으로 들여봐야 겨우 사이즈의 암세포들이 아직 끝난 게 아니라며 버티고 남아있었다.
"다행히 크기가 작아서 항암 하면 금방 없어질 수 있대"
엄마는 다시 다행이라 표현했다.
병원에서 받아온 여러 장의 서류에는 생전 처음 보는 영어단어들만 늘어져있다.
알아볼 수 없는 말들만 가득한 종이 위에 이상하게 거슬리는 T3이라는 글자.
검색해 보니 스테이지3, 3기 란다.
2기를 건너뛰고 바로 3기로 괄목한 성장을 한 것이 대단하다.
예상 5년 생존율이 30퍼센트로 줄었다.

"역 앞에 장어집 아직 장사 하나?"
장어가 먹고 싶은지 에둘러 말하는 아빠를 보니 귀엽다.
우리 가족의 외식 기억 중엔 장어가 꽤나 잦았다.
어린 시절엔 집 근처 장어집을 자주 갔었는데 그곳이 문을 닫고, 가족보단 친구들과 노는 일이 많아지고,
장어값이 오르면서 장어외식은 정기적인 이벤트에서 희미한 옛 기억으로 바뀌었다.
아빠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방패를 들고서 본인이 먹고 싶은 걸 마음껏 요청한다. 치사하게.

어는 심해에서 알을 낳고, 태어난 새끼들은 때가 되면 바다를 거슬러 강으로 돌아온다.
강과 바다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오가며 유지해 온 그 들의 생태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사는 세상을 바꿔가며 먼 거리를 거슬러 올라오는 장어는 그래서일까, 생명력 자체가 강한가 보다.
그런 장어를 먹는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될까?
"장어 먹고 싶어? 사 올게"
예전에 먹었던 추억 속 그 집은 사라졌지만, 장어는 여전히 파는 곳이 많았다.

항암치료를 준비하는 엄마는 마음을 다시 잡았다.
아빠를 위한 것인지, 쓰러질 것 같은 본인 스스로의 다짐인지는 모르겠다.
장어를 굽는 뒷모습에서도 울고 있는 게 보여서 안쓰럽다.
 와중에 장어냄새는 눈치 없이 맛있게 퍼지기만 한다.
아들도 와서 같이 먹자 했지만, 나는 힐링이 필요하지 않으니 두 분만 드시라고 했다.
장어 한 끼가 얼마나 체력을 올려줄까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맛은 있을 테니 기분이라도 좋아졌겠지.
평범한 하루의 조금 특별한 한 끼였을 뿐이다.


지막 라면

'아빠 검사결과 괜찮대'

엄마의 메시지.

나름 길었던 항암치료를 별일 없이 치르고 나온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아빠는 이미 저번주부터 회사에 다시 출근을 했다.

항암을 시작하기 전, 머리가 빠질 것에 대비해 미리 바짝 밀어둔 것을 제외하면 겉으로는 이전과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너무 잘 챙겨 먹어서 몸무게가 좀 늘었다.

남들은 힘들어서 살이 쭉쭉 빠진다던데, 의사 선생님도 신기해하셨다.


"야, 라면 좀 끓여봐"

결과가 좋게 나와서인가, 이젠 걱정 없이 좋아하는 라면을 찾는다.

왜 꼭 아빠는 내가 어디 나가려고 하면 라면을 끓여달라고 하는 걸까. 미리 좀 말하지.

"나 지금 나가야 되는데"

"얼른 끓여주고 가"

투덜투덜하지만 결국 냄비에 물을 받는다.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엔 병원에서 알려준 식단대로만 챙겨 먹었다.

덕분에 그 좋아하던 라면을 몇 달간 못 드셨으니 얼마나 그리웠을까.


라면물이 끓고, 무슨 차이가 있겠냐만은 괜히 스프를 3분의 2만 넣는다.

평소엔 신경도 안 썼지만, 짜게 먹어서 좋을 건 없다는 엄마의 지론을 되새긴다.

꼬들한 면보단 약간은 퍼져야 좋아하는 아빠의 입맛에 맞춰 불을 조금 더 오래 켜뒀다.

완성된 라면과 김치를 식탁에 올려주고 나는 현관을 나섰다.

문이 닫히기 전 들린 '후루룩' 하는 소리가 괜스레 뿌듯했다.


아빠는 달라진 것이 없다.

이전처럼 출근을 하고, 다녀오면 티비만 본다.

훨씬 활기찬 모습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파 보이는 것도 아니다.

대신 엄마를 따라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종종 동네 산책도 한다.

약간 잘라버린 폐와, 엄마가 흘린 눈물값치곤 적당한 건진 모르겠다.

그래도 엄마는 웃고 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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