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었다. 조금 더 민감한 눈치는 굳이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파악하는 것이 빠르다. 알려는 의도가 없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티 내지 않는다. 품고 있는 것을 뱉어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바뀌는 게 없다는 사실에 순응한 걸까. 중요하진 않다. 애초에 아닌 것이 아니게 되었다고 부정적인 감정을 품는 것이 이상하다. 불편하다. 그래서 나는 빠르게 그것을 복귀시키려 되새긴다. 몇 번의 되뇌임과 숙면. 알아들을 수 없는 포르투갈의 파두를 듣다 보면 감정은 어느새 정리된다. 다시금 수면으로 끌어올려진 감정의 요동을 진정시킨다. 그렇게 겨우 찾은 평온이 흔들리지 않길 기도한다.
모든 것이 나의 망상 속에서 발현된 거짓이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짙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것이 더 말이 된다. 하지만 이성적인 생각과 증거들보단 설명불가한 직감이 더 강하게 나를 설득한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들, 보일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높은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를 가지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타인에겐 지극히 중립으로 여겨질 나의 모든 결론은 들여다보면 극단이다. 모순은 누구의 승리였을까 새삼스레 궁금해진다.
높은 건물들 사이를 하염없이 누빈다. 내 시야는 살짝 아래로 내려온 것이 이미 익숙하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낯선 것이, 내가 얼마나 머리를 들지 않고 다녔는지 자각하게 만든다. 달이 떠있고 별이 떠있다. 속도가 느껴지는 반짝임은 인공위성이려나. 굳이 머리를 쳐들지 않아도 땅 위엔 수많은 빛들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늘을 볼 이유를 지운다. 거북목이 심해지겠다.
거짓으로 다 지워냈으니 거짓으로 괜찮아지길 바랐다만 그럴 리 없다. 여전히 헤매이고 불쑥불쑥 향기가 코를 스친다. 바람이 아무리 차가워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걷는다. 그 잠깐의 고통스러운 감각으로 집중을 옮기려 하지만 오히려 얽힌다. 생각은 끊이지 않는다. 뇌를 꺼내서 깨끗이 닦고 싶다. 멍청해지지 못하는 멍청이. 미련만 남은 미련한 인간. 스스로의 허물을 이고 다니는 구렁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강제하지 않는다. 감춰진 원인과 불합리한 결과만을 놓고선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다. 그래선 안된다라고 여기는 게 첫 번째지만. 처음으로 문 앞까지 다가온 것은 너의 의지인지 나의 초대인지 모르겠다. 처음 비춘 것이 너로 인한 것이었다는 게 어떤 결과로 남겨야 맞는 걸까. 바람이 차가워질수록 시리다.
창문을 내리고 움직인다. 바람이 얼굴을 지나며 체온을 훔쳐간다. 핸드폰에서 흐르는 음악이 온도와 맞지 않다. 바로 바꾸고 싶지만 그냥 참고 있다. 저 멀리로 63 빌딩이 보이고 오른쪽엔 한강물이 출렁인다. 언제나 까만 물. 마지막으로 강의 북쪽으로 가본 게 언제였는지, 벌써 몇 년은 지난 듯싶다. 이태원, 종로, 혜화역, 서대문, 파주, 태릉, 남대문. 조만간 한번 구경 한번 다녀와야겠다. 이맘때엔 남대문이 가장 좋으니 말이다. 장갑은 꼭 끼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