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안간 터진 웃음은 이유를 모르겠다. 정말 실없는 웃음이었다. 어떠한 생각도 떠올리지 않았고, 시야에는 뻔한 풍경뿐이다. '왜지?'라는 의문은 남았지만 스스로도 답을 알지 못한다. 뇌에 살고 있는 벌레가 우연히 신경을 밟고 지나간 걸까.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기분은 좋았으니 괜찮다.
이미 받아들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우연히 발견한 순간, 아침과는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떠올랐다. 속 없는 녀석이라고 곧바로 다그쳤지만 일단 웃었다. 남은 접촉이라곤 빛을 통한 간접적 시선뿐임에도 너무나 쉽게 허물어졌다. 역시 나는 여리기만 하다. 정순하게 가다듬은 순정이라 말해도 될 감정만이 남아있다. 깨달아진 사실 뒤에 따라올 것은 기약 없는 방황뿐이다.
분명한 소란스러움이 주변을 가득 메웠음에도 고막은 외부가 아닌 심장의 고동만을 확장시킨다. 나의 들숨과 날숨이 거슬리는 감각은 물 속이라는 새로운 환경이라 더 진하게 와닿는다. 두둥실 떠다니는 몸뚱아리가 스스로의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여진다.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속도는 더디다. 폐 속에 공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강한 경고음이 울리지만 새로 들이쉴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다. 숨을 쉬기 위해 노력해본 적 없는 긴 세월을 살았기에 어색하다. 발을 멈추면 안 된다는데 내 뇌는 낯선 환경에서 멀티태스킹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하나하나 따로 조종하다 보니 결국은 제자리에 멈춰 선다. 귀에서 흐르는 물이 따뜻하다.
12월은 그저 인간들의 약속에 의한 것임을 알고 있는데도 허한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어딜 가도 캐럴은 흐르고 일루미네이션이 눈을 자극한다. 반짝임으로 차라리 가려지면 좋으련만 그 정도까진 모자라다. 애써서 지워둔 번호가 이젠 정말 떠오르지 않는다. 다행이다. 남은 것은 기억의 잔잿더미. 약한 바람에도 쉽게 흩날릴 것이니 가만히 기다린다. 괜히 나서면 검댕이 묻을지 모른다. 2년 정도면 별로 길진 않았다. 쓸데없이 진한건 아쉽지만 말이다. 날이 조금 더 차가워지면 목도리나 몇 번 둘러봐야겠다.
차분해진 요즘이다. 감정을 자극할 요소들은 대충 다 지웠고 적당한 지루함들로 채워졌다. 일부러 찾은 규칙적인 것들로 하루를 만든다. 그것들을 부술 상상을 하며 더욱 꼼꼼하게 채운다. 회상과 회한들 사이로 망상을 뿌린다. 몇 번의 희열은 넓은 무력감 안에서 가볍게 뛰어다닌다. 무욕인지 불욕인지 모호한 경계 사이에서 여전히 갈피는 흔들린다. 이 글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