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분기
작년 이맘때,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이전부터.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에필로그까진 생각하지 않았지만 원하는 결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방향은 바뀌지 않기에 답답함을 계속 품고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맞이한 1월은 체감온도가 더욱 낮게 느껴졌다. 손이 시렸지만 데울 수도 없었다. 잡아선 안 되는 것, 너의 손을 잡고 있던 순간에도 내가 떠올린 것은 그런 것이었다.
몇 년간 입에 대지도 않던 술을 자주 찾게 되었다. 꾸준히 챙겨 먹은 영양제는 애꿎은 주량만 늘려주었다. 주량은 늘었지만 블랙아웃은 잦아졌다. 내가 살았던 시간이 흔적조차 남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커다란 공백의 흔적을 남기는 일보단 다행스럽다.
인스타를 둘러보다 우연히 글쓰기모임 이란 것을 발견했다. 낙서나 끄적이던 게 전부였는데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추어볼까 하는 마음과 호기심 반으로 모임에 참가했다. 처음 예상했던 것보단 꽤 긴 시간 계속했다. 여러모로 알찬 시간이었다.
이 분기
만우절의 거짓말과 벚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삼 분기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지워나갔다. 멀어진다고 느꼈지만 다시금 깨달은 사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나의 무리로 이루어진 거리는 내가 멈추는 순간, 원래대로 돌아간다. 당연한 일임에도 마음이 당연하지 못했다. 알고 있던 거리임에도 조금은 더 멀게 여겨졌다. 어렵다.
여름이 좋았던 기억은 없다. 더위는 아무리 해도 추위보다 좋아지지 않는다. 혹한의 겨울 한복판에서 추위에 맥없이 당하는 상황이어도 여름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내게 여름은 참아내는 기간이며 헤어짐만을 원하는 순간이다. 아무리 벗어내도 해결할 수 없는 온도는 사람의 불쾌지수만 올린다.
드문드문 연락이 오기도 했고 하기도 했다. 만들어진 우연의 풍경에 너가 그려질 때면 한 번씩 참아내지 못해서 속 없이 핸드폰을 들었다. 달라진 것 없는 너를 볼 때마다 깨달았다. 너의 거짓말이 어떤 것이었는지. 아마 넌 모르겠지. 스스로 의식할 필요조차 없는 부분을 속이진 않으니까 말이다. 속았다는 기분보단 그렇구나 라는 허망이 먼저 다가왔다. 빨리 바람이 차가워지기만 기다렸다.
사 분기
담배를 줄였다. 술을 줄였다. 1년 가까이해오던 글쓰기모임을 그만두었다. 수영을 시작했다. 용돈으로 하던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 간간이 이어지던 끈을 확실하게 지웠다. 남은 부채가 얼마나 커다랄지 두렵다.
눈이 나린다. 눈송이가 가벼워서인지 바람을 타고 거꾸로 올라간다. 난잡한 방향성을 띄고 제멋대로 흐드러진다. 꽃잎처럼 날린다. 흰자에 비추는 풍경까지 분홍빛으로 물들던 꽃길이 진하게 남아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1월, 2월, 3월... 그리고 어느새 12월. 하루하루에 의미를 두지 않고 시간에 연연하지 않는다. 무의미함을 챙기며 감정의 진폭을 줄인다. 심박이 끊어진 것 마냥 올곧은 선만이 그어진다. 호수는 조금 더 깊어졌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수면은 평온해지기에 유리할 것이다. 그럴 필요 없지만 괜히 그러고 싶은 마음에 하는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