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우리 Dec 26. 2023

표면장력

한 방울 한 방울이 빠르게 지나친다. 간격을 두고 움직이지만 나의 눈은 모든 빈 공간을 파악할 수 없다. 그저 하나의 줄로 비춰진다. 쪼르륵 소리를 내며 낙하하는 물줄기가 빈 컵을 채운다.


요즘 인기가 많다는 가요가 매장 안에 흐른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피로를 다 떨쳐내지 못한 얼굴이다.

너 얼굴이 푸석해

뭐예요 그게

아침에 나누는 정다운 헛소리. 슬슬 카페인이 몸에 돌아서일까, 너의 얼굴을 봐서일까. 기분이 올라온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가볍게 놀리는 나의 인사는 너의 입꼬리도 약간은 끌어올린다. 책을 읽는 나의 앞에서 너는 화장을 시작한다. 거창한 건 없는 간단한 수준이다.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약간의 색감이 더해진 게 전부다.

이뻐요?

손으로 꽃받침까지 만들어가며 눈을 깜빡이고 있는 너의 얼굴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안 예쁜데 예쁘다.

어 이쁘네

무표정으로 전달된 나의 답변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꿍시렁 거리는 너를 다시 바라본다.

쪼르륵... 자그마한 기포들이 떠오르고 컵이 조금 더 차올랐다.


목적지가 없이 동네를 배회한다. 목적지를 숨기고 동네를 배회한다. 목적지를 지나치기 위해 동네를 배회한다. 정해진 시간이 없고 확정된 사실도 없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걸어 다닌다. 아직은 걸어 다닐만한 날씨다. 적당한 소음과 네온들이 주위를 채우지만 별로 의식되지 않는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길을 막고 서있어서 옆으로 돌아간다. 원하는 것은 정해져 있지만 취해선 안된다. 금해진 것은 없으므로 나의 욕심은 자유롭다. 그것이 더욱 커다란 벌이다. 무저갱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배회한다. 한 발도 떼기 어려운 좁디좁은 곳, 옴짝달싹 못하게끔 점점 더 조여 온다. 그러나 다시 바라보면 광속으로 팽창하는 우주보다 넓은 공간이다. 무엇에 짓눌리는지 찾을 수 없다. 우두커니 서버린 곳은 목적지에서 열 걸음 정도 떨어졌다.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신발끈이 풀려서이다.

쪼르륵... 기포들은 모여서 거품을 이루고 컵은 거의 다 차올랐다.


이뻐요?

그래 예쁘다.

입술을 내밀어 새로 산 립밤의 색을 보여준다. 찰랑거린다. 물줄기를 더 가늘게 해야 한다.


모닥불은 모양이 제멋대로다. 타닥 거리며 불씨는 올라가고 낭만을 끌어온다. 달이 어두워서 좋다. 맛있는 걸 나눠먹고 술도 한잔씩 마신다. 가을밤은 반가운 서늘함이 들른다. 익숙한 온도와 조도가 10년도 지난 과거의 기억을 꺼내온다. 뜬금없기에 금방 정리하지만 이미 기분을 달라지게 만들었다. 너와는 관계없는 것들이 허락 없이 머릿속에서 떠돌아다닌다.

나 좋아해요?

나의 대답은 없다. 내가 아는 너의 관련된 것들만 하나씩 되뇐다. 어떤 얼굴로 너를 바라봤는지 모르겠다.

이미 끝까지 차버려 넘실거린다. 한 방울씩 더해지고 있는데 언제까지 버티다 흘러내릴지 알 수 없다. 조금만 흔들려도 바로 넘칠 것이다. 덩어리 진 물은 정해진 공간을 삐져나왔다. 위태로운 모양새다. 당장에 흘러넘쳐도 이상할 것 없다. 손으로 살짝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그러면 안 된다. 넘쳐버린 물을 닦아낼 휴지가 없다.


두 손을 번쩍 들고 신나게 흔들며 달려온다. 반가움을 가득 담은 얼굴이 여전히 예쁘다. 다가오는 너를 보며 오늘도 여전히 예쁘다고 말해줄 준비를 한다. 눈앞으로 버스가 지나가고 그 뒤에 보이는 것은 바닥이 젖어있는 휑한 거리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연말정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