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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한 May 24. 2023

일상으로 돌아가기 무서워

이상으로부터의 탈출

기형적인 나의 모습을 오래 끌고 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상이 심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달마다 후임들이 들어오고 선임들은 전역을 했다. 선임들에게 신망을 얻는 것은 쉬웠다. 단지 복종하면 그만이다. 선임들과 신뢰를 얻으면 그때부터는 나를 숨기기는 수월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후임들에게는 어려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후임들에게 복종하는 법을 몰라 어려워했다. 그렇게 그들이 나의 실체를 파악할까 봐 걱정했다. 그 두려움은 이상하게도 줄곳 옳지 않은 방향으로만 발전된다.


많은 책을 읽기를 갈구했다. 그리고 한국사 공부와 토익공부도 시작했다. 하지만 어떤 감정으로 시작한 것인지 잘 알고 있는 건 내 자신이었다. 책은 읽는 척만 했다. 토익은 700점을 넘기지 못한 게 쪽팔려서 몰래 공부했다. 한국사도 마찬가지였다. 기필코 1급을 맞겠노라 다짐하며 자기 전까지 PMP로 큰별쌤의 강의를 들었다. 결국 점점 쌓여가는 책들과 한국사 시험을 78점을 맞는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토익은 700 넘기기가 참 어려웠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한국사 1급을 따낸 것이.


부대의 전반적인 복지를 담당하는 복지대대에서 맡은 나의 일은 4개의 독립채산제 통장을 관리하는 것과 독신자숙소 관리비 납부 관련 일이었다. 하루는 여군숙소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날이었다. 영외에서 설치기사님들이 찾아오셨고 집집마다 함께 대동하면서 설치를 진행했다. 그러면서 기사님들과 스몰토크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나와 나이차이도 별로 안 날 것 같은 에어컨 설치기사가 대학 어디 다니냐고 질문했다. 나는 하나의 발작버튼이 눌린 듯했다. 망설임도 없이 나는 지거국 대학교에 경제학과를 다닌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들은 나를 칭찬했다. 똑똑하고 공부 열심히 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똑똑하고 공부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 나지만 좋은 대학교는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짜로 치장하는 것이 얼마나 감정소모가 심한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시작부터 꼬여서 이렇게 된 것이지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싶은 그 두려움에 가면을 쓰는 것이다. 에어컨 기사의 그 한마디 말 그러니까 악의가 하나도 없는 단순한 질문에 긴장하게 되었다.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용기를 냈다. 궁여지책으로 엄마가 생각났다. 용기를 내어 전화 걸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입 밖으로 꺼내기가 참 어려웠다. 그래도 진실을 이야기하기 가장 쉬운 인물이 나에겐 엄마였다. 입술로 나의 고백을 털어놓을 때 나는 나 자신이 부정된 듯하여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엄마의 말은 들리지가 않았다.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 누구 하나 없는 체력단련장에 꿉꿉한 공기와 눈물만 기억날 뿐이었다.




군복무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군대에서의 삶이 만족스러웠다. 전역하고 회복할 일상이라는 것이 없었다. 가고 싶지 않은 대학이 나를 반길 뿐이었다. 도망치듯 나온 전문대를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자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재수는 더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 다시 전문대로 돌아오게 된다. 재수냐 전문대냐 그것이 문제로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낭떠러지에 있으면서 어느 쪽으로든지 뛰어야 하는 그런 상황. 햄릿도 나와 같은 상황이었을까? 햄릿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다행히 자기 이해는 높았다. 나는 재수할 자신이 없다는 것을 쉽게 인정했다. 선택지가 두 개인 상황에서 재수를 소거해 버리면 자연스럽게 남는 것은 복학이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양아치 소굴 내게 전문대는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남는 건 복학 그리고 나는 복학을 선택했다.


마인드셋을 다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느 정도 자기 객관화가 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좋은 친구를 둔 덕분에 객관화 작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신학교를 다니는 내 친구와는 시간 날 때마다 철학적인 질문을 통해 라포가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 그는 마치 소크라테스 산파법처럼 그리고 유대인들의 공부법처럼 끝없는 질문으로 나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게 해 주었다. 수면 위에 떠오른 사실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수능성적과 전문대도 대기순번을 받아서 입학했다는 것. 전문대도 간신히 들어갈 수준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똑똑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멍청한 것이었다. 용납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뒤틀어진 건 용납하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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