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똑똑한 척
육해공 중에 공군은 엘리트 느낌이 있다. 공군은 복무기간이 타군에 비해 길다는 단점이 있지만 선진병영문화로 인해서 인기가 있다. 군 휴학을 하면 누구나 칼복학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름, 겨울방학 시즌에는 항상 경쟁이 치열했다. 그리고 그 경쟁 속에 고교성적이나 자격증을 반영이 된다. 공고출신이 아니면 특별한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고교성적이 가장 중요하다. 지원병과로 군대로 가려고 하면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어야 유리하게 입대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은 그것은 육해공 다 똑같다. 하지만 유독 공군이 공부 잘하는 사람들만이 가는 뉘앙스가 있었다.
성수기를 약간 비껴간 시기에 친구가 공군을 지원했다. 10번이나 떨어진 나에게는 이제 앞으로 몇 번의 기회가 남지 않았다. 계속 실패해서 군대를 가지 못하면 군휴학을 낸 의미가 없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 따라서 공군을 지원을 했다. 숱하게 낙방한 경험을 한 나인데 그 어렵고도 인기가 많은 공군이 붙어버렸다.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해 자랑은 못 했지만 공군은 자랑거리가 되었다.
6주의훈련을 마치고 나는 보급특기를 받게 되었다. 특기를 받기 위해서 몇 번의 시험과 훈련을 거쳐야 한다.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 특기를 받기 때문에 각각의 이미지가 있다. 비인기 특기은 헌병과 급양, 방공포특기는 특기를 지정해서 지원을 하면 가점을 받아 좀 더 수월하게 입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근무강도가 높은 편이라 비선호 특기이다. 그에 비해 사무실에서 일할 것 같은 총무특기는 인기가 있다. 나는 똑똑한 이미지는 취하지 못했지만 보급특기로 중간은 갔다.
특기교육을 약 3주간 받는다. 그곳에서 또 시험을 봐서 경쟁을 하고 근무지를 선택을 한다. 3 지망까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수도권에 가까울수록 경쟁률은 높아진다.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적당히 눈치싸움도 필요했다. 백령도와 같은 격오지도 있어 꼴찌가 되면 큰일이 난다. 어느 누가 비선호지역에 배치받을지 모르니 일과시간 이후에도 공부를 해야 했다. 나는 전략적으로 수도권에 눈길을 살짝 돌려 충청도까지 바라보았다. 수도권에 TO가 부족하면 충청권까지 수요가 미치기 마련이다.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의 바람대로 충청권에 배치받을 수 있었다.
앉아서 일하고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보직이 꿀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TO도 별로 없어 쉽게 가지도 못한다. 내가 받은 보급특기는 열에 아홉은 보급대대로 빠진다. 하지만 나는 10%에 들어 복지대대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그 안에서 컴퓨터 앞에서 앉아 일하게 되었다. 오히려 총무특기를 받은 친구보다 더 총무스럽게 군복무를 했다. 엑셀을 사용해 통장을 4개를 관리했다. 하루에 평균 20~30통의 전화를 받으며 근무를 했다. 그렇게 힘쓰지 않고 머리로 일하는 보직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게 나의 능력으로 이렇게 되었다고 착각을 했다. 내가 원래 똑똑해서 이 일을 맡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다시 무너져버렸던 똑똑한 척은 시작되고 말았다.
인맥을 리셋을 할 수 있는 군대에서 다시 한번 나의 거짓 똑똑함을 뽐냈다. 훈련소에서부터 자대에서까지 나는 비범함을 나타내기 위해 유럽여행을 무기로 꺼냈다. 군대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비슷한 연령대가 같이 지낸다. 선임이어 봤자 한두 살 형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들 또한 나이가 2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나처럼 유럽여행을 갔다 온 사람은 드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사기에 손쉬웠다.
현재 서울에서 시의원을 하고 있는 한 선임에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여행이야기와 어디서 주워들은 잡지식으로 그의 마음에 들기에 성공했다. 그렇게 여러 명에게 보이지 않고 쉽게 재단할 수 없는 것들로 나를 포장했다. 쉽게 태가 나는 출신대학은 나에게 불리했다. 그래서 나는 책과 공연으로 치장했다.
매번 휴가 갈 때마다 나는 서울예술의전당에 갔다. 유럽 여행까지 가서 오페라를 봤다. 비엔나와 프라하에서 각각 한 번씩 마술피리를 봤다. 아마데우스 영화를 보고 모차르트를 좋아하게 된 나는 그의 오페라를 좋아하게 되었다. 다행히 그 고상한 취미와 콘셉트는 그때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항상 공연을 보고 티켓과 공연장 사진을 찍어 훈장처럼 페이스북에 올렸다. 술 먹고 놀기만 하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고상한 척을 했다.
깨시민인척을 하기 위해 어려운 책을 다시 짚었다.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남자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다니 꽤나 멋진 이미지였다. 그렇게 여러 권을 사서 캐비닛 잘 보이는 데에 비치해 두었다. 페미니즘 책을 소장한 덕분에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도 알게 되고 좋았다. 하지만 시작이 허상인 만큼 아무 의미 없었다.
멋있고 똑똑해 보이는 사람의 모습은 죄다 따라 했다. 그루밍 문화와 허브티를 배웠다. 그리고 그들이 사서 쓰는 화장품은 죄다 따라 사서 사용했다. 차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음미하며 맛있다고 자주 마셨다. 커피도 마찬가지로 특별한 원두를 가려서 먹었다. 어떻게 보면 명문대생이었던 그들처럼 되고 싶은 열망이 투영이 된 것이다. 그들이 향유하고 있는 문화를 함께하고 싶었다. 그 속에 있으면 나도 명문대생이 된 것 같았다. 그런 착각이 내 자신감을 높여주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기형적인 자신감이 내게 독이 될 거라는 것을 그때는 차마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