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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이안 May 24. 2023

회사를 정리하기로 결심하고_Ep.03

전 세계가 코로나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그저 모든 걸 내려놓고 기다리는 거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매일같이 망연자실 뉴스만 바라보며 세상을 원망하는 일 밖에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회사일은 내팽개친 채 거의 보름 가까이 폐인처럼 집에만 틀어박혀 머리만 싸매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른 대안은 보이지가 않았고, 하루빨리 회사를 정리하는 거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는 전혀 없어 보였다.


몇 년 전에 사업을 하다가 회사를 폐업했던 고등학교 때 친구가 떠올라 곧바로 그 친구를 만나서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그 친구는 의류 사업을 꽤 크게 하다가 결국 도산까지 경험했던 터라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떤 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나의 현재 재정 상태 및 부채 규모 등을 대충 듣고 난 다음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나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거였다. ‘개인파산신청’ 아니면 ‘개인회생신청’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하루빨리 법원에 접수해야 한다는 결론… 그러면서 파산/회생 전문 법무사를 찾아서 상담을 진행해 보고 뭐가 됐든 빨리 행동을 취하라는 거였다. 


다음날,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찾은 법무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법무사도 친구가 말해준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과 절차를 설명해 줬고, 뭘 선택하든 전적으로 내 의사결정에 달려있다는 말만 해줬다. 개인파산은 말 그대로 내가 가진 재산을 모두 현금화해서 모든 채권자에게 채권금액비율에 맞게 나눠서 변제해 주고 나는 곧바로 파산자(신용불량자)가 되는 제도를 말하고, 개인회생은 내가 가진 현재 재산의 총액만큼을 정해진 기간(대부분 3년) 동안 매월 성실하게 변제해 나가면 나머지 채무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해 주는 제도라는 설명이었다.


법무사와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개인파산을 진행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개인회생을 선택해야 하는 건지 선뜻 판단이 서지가 않았다.  


어떤 방향으로 든 내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우선 먼저 직원들에게 회사 사정을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체 회의를 소집했다.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이상 같이 일해 온 직원들이라 나에게는 식구와 다름없는 존재들이었다. 다들 어느 정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터라, 내가 회사를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들 걱정은 하지 말고, 어떻게든 내가 큰 피해를 입지 않는 방향으로 잘 정리가 됐으면 좋겠다며 되려 나를 위로해 주는 거였다. 한편으로는 너무 고맙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올라 끝내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침울하고 불편한 분위기의 모임이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해 줄 줄 아는 따뜻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였음을 확인하게 되는 의미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각자 맡고 있는 일을 잘 마무리해달라는 당부와 함께 전체회의를 마치고, 감독과 나 둘만 남아서 세부적인 사항들을 정리해 봤다. 우선 시급하게 나가야 할 외주 비용을 리스트업 해보고, 앞으로 들어올 외상매출금과 지급해야 할 외상매입금 항목들을 뽑아 보니, 내가 머릿속으로 대충 계산했던 것보다 채무금액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고, 마무리해야 할 일들도 만만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이 그렇지 20여 년 동안 한 업종에서만 일을 해왔으니 정리해야 할 것이 많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체적인 상황파악을 하고 하니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다. 다름 아닌 협력업체들(촬영스텝, 조명스텝, 편집실, 녹음실, CG실, 모델 에이전시 등 주요 거래업체만 추려도 15개 업체에 이르렀다) 채무 문제였다. 거의 대부분 10년 이상 우리와 거래해 왔고, 많은 일을 같이 진행하면서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았던 업체들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어느 정도 채무 관계 정리를 해 놓고, 개인파산이든 개인회생이든 진행을 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난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회사 초창기부터 들어 놓았던 보험, 연금 등을 해약하고, 반전세로 살고 있던 아파트를 부동산에 내놓고, 회사에서 쓰던 카메라 장비, 편집 장비, 촬영용으로 쓰던 드론 장비 등 돈 될 만한 물건들은 최대한 긁어모아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매물로 올려놓았다.  


돈이 생기는 대로 바로바로 협력업체들에게 결제해 주는 등 정신없이 일처리를 해 나가다가 갑자기 ‘이런 중대한 결정을 형들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둘째 형, 셋째 형 모두 사업을 하고 있어서 내가 어려운 일에 맞닥뜨릴 때면 항상 형들에게 물어보고 도움도 요청하고 했었는데, 정작 회사를 정리하려고 하는 큰 결정을 상의 한마디 없이 진행하고 있었다니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곧바로 셋째 형에게 전화해서(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적은 셋째 형이 둘째 형보다는 얘기하기가 편해서) 저녁에 시간 좀 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형은 언제든 괜찮으니까 편할 때 오라고 했다. 회사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경기도 안산에 있는 형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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