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형은 거의 25년째 경기도 안산, 안양 지역에서 문구 도소매업을 운영해 오고 있다. 문구업도 예전 같지 않아서 온라인 쇼핑몰 경쟁도 심하고, 오프라인 시장의 경우 ‘다이소’ 매장이 워낙 많이 생긴 여파로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은 사업 분야이다. 형 회사도 갈수록 매출 규모도 줄고, 치열한 가격경쟁 여파로 수익률도 많이 떨어져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쌓아온 지역 초 중학교와의 신뢰·협력 관계 덕분에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형에게 코로나사태 이후 내 생각의 흐름과 회사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드렸더니, 형은 그렇지 않아도 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며, 정리하기로 결심한 이상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하고 다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형 주위 사람들 예를 들어가며,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들을 하나하나 짚어 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파산은 생각하지도 말고 어떻게 해서라도 개인회생 쪽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 그대로 파산은 앞으로 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인데, 아직 능력 있는 내가 이것저것 해보지도 않고 최악을 선택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였다.
두 번째, 개인회생 인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은행 등 금융기관의 대출 상환 압박이 엄청 심할 게 뻔하니까 그에 대한 각오는 단단히 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세 번째로 신경 써야 할 문제는 개인회생 신청 전에 회사 협력업체의 채무관계를 최대한 잘 정리해 놓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형 말에 따르면, 간혹 개인회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의 대부분이 회사 채무 또는 개인 채무에 대한 채권자들의 심한 반대 때문에 발생한다는 거였다.
즉, 채권자가 자기들의 정당한 채권을 일부분만 받고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법원이 독단적으로 면책해 준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를 형사 또는 민사 소송 등 법정 소송으로 가져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으로 전개될 경우, 각각의 채권자와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개인회생 절차는 진행 자체가 안된다는 거였다. 서너 시간 동안 형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복잡했던 머리가 조금은 정리가 되는 것 같았고,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며칠 후 나는 예전에 상담을 진행했던 법무사에게 연락을 하고 서초동 법무법인 사무실로 찾아갔다. 이제까지 내 나름대로 정리한 회사 채무 및 개인 채무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내가 개인회생 신청이 가능한지 법무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법무사는 당연히 개인회생 신청이 가능하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면서, 개인회생 신청 자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큰 채무 금액인 신용보증기금 대출금(회사 운영자금으로 써왔던 신용대출금 약 2억 원 정도)도 대표이사인 나만 연대보증이 되어 있으므로 개인 채무로 산입이 가능하고, 나머지 채무금액(개인 신용대출 및 카드 사용금액 약 1억 원과 회사 협력업체 외상매입금 약 8천만 원 정도)을 다 합해도 4억 원 내외이므로 충분히 개인회생 신청 자격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개인회생 신청은 무담보 채무금액이 10억 원 미만이면 누구나 대상이 된다는 거였다. 참고로 가까운 지인 즉, 친인척 및 친구 등으로부터 빌린 채무금액과 국세, 지방세 등은 개인회생 신청 대상 채무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내용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그러면서 법무사는, 회사를 20년 넘게 운영해 오면서 이렇게 채무금액 규모(총 4억 원 내외)가 적은 경우는 자기도 처음이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덧붙이면서 내 경우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일단 개인회생 신청자격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법무사에게 개인회생 신청으로 진행하겠다고 답을 하고, 향후 필요한 절차에 대해 물어봤다. 그랬더니 법무사는 내게 “구체적인 변제계획은 세워 둔 거죠?”라고 대뜸 물어보는 거였다. “회사 정리되는 대로 바로 다른 직장 알아봐야겠죠.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라고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법무사는 무척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대표님, 개인회생 절차에서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변제 계획안입니다. 대표님의 변제 의지 표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매월 변제해 나갈 계획이 확실해야 법원에서 개인회생 인가를 내주는 겁니다.”
솔직히 나도 그 부분은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대답할 말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변제계획안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보고 정리해서 말씀드리겠다고 얘기하고서, 대충 회의를 마치고 법무사 사무실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갑자기 터진 코로나사태 여파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리는 바람에 어떻게 회사를 정리해야 할까 고민만 했지, 정작 중요한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