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와의 상담 후 며칠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봐도 답이 보이지가 않았다. 20년 넘게 해온 일이 광고 홍보기획, 영상제작 일이었는데 코로나 위기를 맞아 처참하게 실패한 그 분야 일을 다시 알아보고 새로운 직장을 구해서 시작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무 직장이나 알아보고 날 뽑아줄 회사를 찾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코로나 사태로 경제 상황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고, 폐업과 실업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을 선뜻 채용해 줄 회사가 있을 리 만무했다.
몇 날 며칠을 머리만 싸매고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둘째 형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형제들끼리 술 한잔 하며 얘기 좀 하자고 형 집으로 오라는 거였다. 둘째 형은 수원에서 세무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형은 대학 졸업 후 곧바로 대기업에 입사해서 8년 남짓 직장생활을 하다가 세무사 시험에 도전해 보겠다고 선언하며 회사를 퇴사하고, 2년여의 고시공부 끝에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말 그대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남들보다 한참 늦게 시작한 세무사 생활이었지만 17년 넘게 꾸준히 개척하고 키워온 덕분에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올라선 상태였고, 클라이언트들의 신임도 꽤 두터워 세무사 사무실의 수익률도 높은 편이었다.
삼 형제가 오래간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형들은 의기소침해 있는 나를 위로하면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어봤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변제계획안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셋째 형이 대뜸 “그건 걱정하지도 마, 우리 사무실에서 일하면 돼. 월급은 많이 못 주겠지만 그래도 너 생활은 가능하게 해 줄 테니까 일단 그렇게 하는 걸로 하자. 네가 우리 사무실에서 일해주면 나도 좋을 것 같거든. 예전부터 너와 같이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잘됐지 뭐.”라고 얘기하는 거였다. 동생을 생각해 주는 형의 마음은 충분히 알겠지만 그렇다고 내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 셋째 형 비즈니스 형편을 뻔히 잘 아는 나로서는 너무 염치없고 미안한 일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나를 보고는 둘째 형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긴 하네. 일단 거기서 일하고 있으면, 나도 주위사람들에게 부탁해서 네가 제대로 일 할 만한 곳을 알아볼게. 내가 거래하는 클라이언트들에게 부탁해 봐도 될 거 같기도 하고…” 둘째 형이 거래하는 클라이언트들 중에는 제법 규모가 되는 법인도 몇 있어서 나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방안이긴 했다. 형들이 그렇게 선뜻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하니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일단 셋째 형 사무실로 출근하는 방안을 변제계획안으로 해서 개인회생 신청 접수를 해 보는 걸로 결론을 내고,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형들과 헤어졌다.
다음날 법무사에게 연락해서 형들과 협의했던 내용을 설명하고 개인회생 접수를 진행하겠다는 확답을 줬다. 법무사는 향후 일정과 준비해야 할 서류, 그리고 법무사 비용 등을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내주겠다고 얘기하면서, 나에게는 회사 폐업절차를 우선 먼저 진행하라고 당부했다.
법무사가 보내준 자료들을 검토해 보니,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만만치 않았다. 금융 기관별 채무 관련 서류, 회사 거래처별 채무 관련 서류, 그리고 월세 계약서, 중고차 매매 계약서 등 내 개인 자산으로 산입가능한 항목들을 증빙하는 서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법무사 비용은 백오십만 원을 청구했다. 부담스러운 금액이기는 했지만 법무사 도움 없이 나 스스로 처리하기에는 힘든 일이라는 걸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결제해 줄 수밖에 없었다.
회사 정리하는 일은 10년 넘게 같이 일해온 감독이 많이 도와줘서 큰 잡음 없이 해 나갈 수 있었다. 내가 친하게 지냈던 협력업체들은 내가 직접 찾아가서 상황설명을 드리고 양해를 구했고, 나머지 협력업체들은 감독이 만나서 상황설명을 했다. 물론 몇몇 업체에서는 반발이 심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기 때문인지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정도로 몰아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중간중간 미수금이나 중고 물품 판매 금액이 회사 통장으로 들어오는 대로 협력업체들에게 조금씩 나눠서 결제를 해주며 최대한 우리의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회사 폐업신고를 하고 개인회생 서류 준비하는 데에도 거의 한 달 이상이 걸렸다. 그 와중에 거주할 집도 수원으로 옮기고, 시간 날 때마다 셋째 형 사무실에 가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형과 상의하기도 했다. 개인회생 서류 법원접수를 완료했다는 법무사의 연락이 왔고, 별 문제가 없으면 한 두 달 이내로 개인회생 인가가 나온다고 알려왔다. 그 연락을 받으니 3개월여 기간 동안 마음 졸이며 쉼 없이 달려왔던 순간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막막하고 힘들었던 순간들이었던가. 소심하고 겁 많은 나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기에 너무도 오랜 세월을 어렵게 버텨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형 회사로 출근하며 일을 시작한 지 3주 정도 지났을 무렵에 법무사 사무실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법원에서 보정명령이 왔다며 보완해야 할 서류 리스트를 보내주는 거였다.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과 관련한 증빙서류, 휴대폰 통신내역(최근 3개월간 기지국 정보가 포함된 착 발신 내역), 통장거래내역, 그리고 채무 관련 보완 서류들이었다. 법무사 의견에 따르면 현재 내가 근무하고 있다고 제출한 내용(즉 변제계획안)의 사실확인차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다.
법원에서 요청한 보정서류들을 준비해서 송부한 후 2주가 지난 시점에 드디어 개인회생 개시명령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개인회생 개시명령이 떨어졌다는 것은 채권자들의 채권 추심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몇 달 동안 채권 추심 전화에 시달려왔던 나로서는 어깨를 짓눌러 왔던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된 느낌이었다.
법무사 설명에 따르면 법원에서 결정한 월 변제금액은 140만 원 정도이고, 변제 기간은 5년이었다. 일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봤을 때 변제기간도 훨씬 길고 변제금액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월 변제금액이 백만 원을 넘지 않는 편이고 변제기간도 3년 정도인데 내 경우는 그것보다 훨씬 많이 나온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어찌 보면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였다. 나는 변제금액을 줄이려고 내가 가지고 있던 조금의 재산(월세 보증금, 중고차, 보험 등)을 더 줄여보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앞으로 받게 될 급여를 서류상으로 일부러 줄여서 제출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내 능력이 되는 한 최대한 많이 갚아 나가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다. 평소에도 빚지고 사는 것을 못 참아했고, 남에게 도움 주는 삶을 살지 못할 망정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삶을 살아서는 절대 안 된다는 철칙 아닌 철칙을 갖고 살아왔던 나로서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법무사가 보내준 법원 결정문을 받아 보았더니 개인회생 개시결정 이후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채권자 이의신청을 서면으로 받고, 이후 정해진 날짜에 개인회생 채권자집회를 법정에서 갖는다는 내용이 명기되어 있었다. 즉, 채권자집회라는 재판 형식의 법정 출석이 아직 남아 있다는 말이었고, 최종 개인회생신청 인가는 채권자집회 법정 출석 이후에 결정된다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