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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범 Oct 01. 2023

여전히 우린 서로의 이해가 필요하다

피터 손의 <엘리멘탈>

 

 앰버는 종종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다. 막무가내인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늘 진땀을 뺀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그저 상냥하라며 다그치고 어머니는 얼른 결혼하라고 재촉할 뿐이다. 가게에 평생을 바친 그들의 노고와 애환을 알기에 그녀는 마음을 더 굳게 먹는다. 잘할 수 있다며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가업을 잇는 것만이 삶의 목표라며 자신을 속인다. 하지만 그 열정과 반대로 가게는 점점 엉망이 돼가고 노쇠해진 아슈파의 기침이 앰버의 마음을 짓누른다. 이런 걱정 속에서 그녀는 자주 자신감을 잃는다.


 누가 그랬던가. 효란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이라고. 유독 우리나라는 사람의 기본 도리로서 효도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왔다. 예로부터 효심 지극한 인물들을 위인으로 본받았고 제 아무리 훌륭한 이도 천륜을 어기면 금수만도 못한 놈이라며 손가락질당했다. 돌이켜보면 나도 예외는 아닌게 키워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저리고 눈물마저 핑 돈다. 하지만 스스로 효자라 말하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든다. 해드린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만 하다. 자식도 부모의 마음처럼 늘 부족하고 모자란 기분에 시달린다. 난 분명 그들을 사랑하는데 이 죄스러운 마음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크면 클수록 내리사랑은 어느새 희생에 가깝게 느껴졌다. 나를 위해서라는 헌신은 오히려 부담이 되어 날 괴롭혀 왔고, 큰 빚을 진 사람처럼 나는 늘 불안했다. 그렇게 눈치 보며 자라온 삶은 누구 하나 만족시키지 못하고 행복과는 멀어져 갔다. 주변의 바램과 나의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다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닌 어른이 돼버렸다. 불효한 자신은 도무지 견딜 수 없으니 자유를 포기하고 만 셈이다. 그리고 이 모든 걸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아직도 스스로를 원망하며 살고 있다. 부채감. 그래 어쩌면 죄송한 마음은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없다는 두려움에 근거할지도 모른다. 낳고 길러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부모님께 보답하는 게 자식의 도리라지만, 그렇다고 제 삶을 희생해서까지 봉양하길 바라는 부모는 없을 거다. 하지만 기대는 때로 사람을 망가뜨리기도 하더라.


 앰버의 억누른 불안도 끝내 폭발하고 만다. 일생 견고할 줄 알았던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할 때 그녀 앞에 웨이드가 나타난다. 지하실의 수도가 터지고 거대한 수문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처럼 그녀는 그에게 숨겨둔 진심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한 번도 의심치 않던 그녀의 꿈은 사실 가게를 지키는 게 아닌 가족의 행복이었다. 한번 엎질러진 물을 도로 담을 수 없듯 앰버는 웨이드에게 이끌리고. 이 작은 불씨가 커져서 끝내 파이어 타운의 위기로까지 번져간다. 착한 장녀였던 앰버는 모두를 실망시키기 시작하지만 그녀는 그제야 활짝 웃는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면서 말이다.


 공존과 화합을 상징의 엘리멘트 시티는 실제로 이상적인 세계가 아니었다. 그들이 이끄는 곳도 정작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양한 아름다움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가려진 교묘한 차별과 멸시가 가려져 있었다. 불은 꽃을 태운다는 상식은 폭력이 되어 그들을 분리했다. 웨이드가 유리처럼 반짝이는 그녀의 특별한 재능을 알아보고. 앰버가 그의 지지와 사랑으로 용기를 얻는 것처럼. 이런 불가능한 관계를 가능케 하는 건 진정한 이해와 사랑을 통해서였다. 불의 민족이 고집스럽게 지켜낸 파란 불도 물인 웨이드가 구해낸 것도 그렇다. 우린 서로의 이해 없이는 살 수 없다.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질문의 대답은 재밌게도 늘 하나다. 바로 사랑과 이해. 흔하고 뻔한 결론일지 몰라도 우리에겐 여전히 필요하며 아직도 유효하다. 불 앞에서 피어나는 꽃과 물이 닿아도 꺼지지 않는 불처럼. 까마득한 선입견을 뛰어넘을 수 있는 다정한 상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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