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미 라파스의 <램>
깊은 산속 외딴집, 젊은 부부의 식사 자리에는 스산한 적막이 흐른다. 남자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연다. 이론적으로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어서 미래로 갈 수 있대. 근데 난 미래가 별로 궁금하지 않아. 지금도 충분히 만족하거든. 남편의 거짓말을 잠자코 듣던 아내는 뒤이어 되묻는다. 그럼 과거로도 갈 수 있겠네?
한때 이별의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없던 시기가 있었다. 그 구덩이에서 여러 사람의 발목을 붙잡으며 제 사정을 연신 토로했다. 야단법석 생떼를 부렸더니. 처음에 고개를 끄덕이던 이들도 끝내 고갤 가로저었다. 그들이 뒷걸음칠 때마다 더 큰소리로 내 아픔을 피력했다. 하지만 괴롭다 외칠수록 사방에 구린내가 진동했다. 그래 어딜 가나 슬픈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구정물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다들 내 곁을 떠난 뒤 몸소 느꼈다. 아무도 몰라주는 슬픔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걸.
양을 사람처럼 키운다니. 약속이라도 한 듯 부부는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을 이어간다. 새로운 가족의 등장으로 암울했던 집안은 다시 활력을 찾고, 과거 아이를 잃은 그 자리에 낯선 행복이 찾아왔다. 하지만 억지로 끼워 넣은 자리엔 틈새가 있기 마련이다. 새끼를 빼앗긴 양은 시종일관 부부를 찾아와 괴롭힌다. 그녀는 짜증을 참지 못하고 슬피 우는 어미양을 총으로 쏴 죽인다. 부부는 지난날을 더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 찾아온 불온한 축복에 매달린다. 결국 뒤틀린 평화는 균형을 잃고 쓰러지고 다신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달아나 버린다.
이처럼 거대한 상실은 광적인 집착을 낳는다. 대체할 수 없음에도 그 빈틈에 뭐라도 구겨놓고 싶은 심정으로 위로가 될만한 것들을 찾는다. 하지만 밀어 넣을수록 점점 더 공허해질 뿐이다. 안타깝게도 결핍이란 채울수록 바닥을 보이는 이상한 특성을 지녔다. 나도 그랬다. 분명 나쁜 결말이 기다리는 걸 알면서도 당장 이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기꺼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 고난을 자처하며 사람들을 배신하고 다녔다. 다들 날보며 이상한 애라고 혀를 찼다. 그렇게 발버둥 칠수록 깊은 수렁으로 서서히 빠져갔다. 그녀 또한 내외적으로 고립되면서 미쳐갔다. 비뚤어진 모성애도 어쩌면 위로받지 못한 슬픔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외로움은 사람을 병들게 하므로 벗어나야 하지만. 잔인하게도 과거의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할수록 오히려 더 불행해지고 만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남에게 고통을 줬으면서도 반성하지 않는. 솔직히 잘못은 부끄럽지만 참회나 속죄의 필요를 느끼진 않았다. 심지어 후회는커녕 불쌍한 건 나라며 자기 연민에 빠져, 모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내심 억울해했다. 그렇게 깊게 베인 상처는 결국 뻔뻔한 고집의 자국이 되었다. 어리석게도 여전히 잘못된 걸 알면서도 아직도 내 마음은 그릇된 쪽을 향하고 있다는 거다. 그러므로 죄의식이 결여된 이에게 천벌은 당연히 받아 마땅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부부는 남의 것을 탐한 죄로 벌을 받는다. 누구도 그녀를 이해하지 않으니 절망스러운 비명은 메아리처럼 되풀이될 거다. 혼자라는 악몽 속에 갇힌 이에게 더이상 구원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