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슨 톰린의 <마더/안드로이드>
예기치 않은 임신 소식으로 두 사람은 혼란스럽다. 대학생인 주인공들에게 부모가 된다는 사실은 축복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불안한 순간에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 빌생한다. 갑자기 안드로이드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는 금방 초토화되어 혼란과 파괴의 현장이 돼버렸다.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와 불시에 그들을 덮쳤고 어찌할 새도 없이 둘은 살기 위해 서둘러 도망친다.
과학의 발전은 인류를 번영시키고 인간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 왔다. 오늘날도 모든 이들이 그 영향력 아래 다양한 혜택을 누리며 산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꼭 좋은 결과만을 안겨주진 않는다. 마치 양날의 검처럼 인류를 멸망시킬 만한 위협적인 무기들도 동시에 개발됐다. 영화 속 로봇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처음에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변해버렸다. 이미 인공지능에게 길들여진 인간들은 결국 자신들이 만든 발명품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는 역사 속에서 무수한 실패를 겪으며 꾸준히 성장해 왔지만 어쩌면 이젠 그 길의 끝인 인류 멸망이 코 앞에 다가온지도 모르겠다.
안드로이드와의 전쟁 속에서 임산부인 그녀는 자주 불길한 악몽에 시달린다. 엄마가 된다는 두려움은 기계들의 반란처럼 낯선 공포일 것이다. 이제 막 성인이 된 그들은 서로를 붙들고 의지하려 하지만 모든 게 서툴고 못 미덥다. 이들의 험난한 피난길은 마치 신혼기의 고군분투와 닮아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다행히 출산에 성공하지만 미국에서 더는 안전지대는 없었다. 그들은 전쟁 속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린다. 아이의 생존을 위해 한국으로 입양 보내기로 한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을 떠나보낸 부부는 희생을 통해 진정한 부모가 된다.
사이언스 픽션에서 왜 사랑이라는 테마가 빠지지 않고 등장할까. 사실 사랑과 과학이 모두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과학은 기술과 혁신을 통해 인류를 끊임없이 발전시킨다. 그러나 더 나은 미래가 단순히 물질적인 번영만을 의미한다면 과연 살아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미래란 사람간의 사랑이 함께할 때에만 완전해진다. 이렇듯 과학영화 속에서 사랑은 기술적 발전의 불완전함을 보완하며 휴머니즘을 지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어떤 위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이자, 발전의 목적이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상기시켜 준다. 과학과 사랑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며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중요한 두 축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과학적 비전 속에서도 늘 중요한 위치를 차지히는 것이다.
안드로이드의 계략으로 남편과 아이를 떠나보낸 그녀는 마지막까지 가족사진을 불태우지 않는다. 이루어질 수 없는 기약일지라도 끝까지 희망을 품고 있다. 절망 속에서도 그녀는 삶의 의지를 꺾이지 않는다. 어쩌면 사랑한다는 건 끝까지 살아간다는 것일지 모른다. 제아무리 로봇에게 이름을 붙이고 그들이 우릴 흉내 낸다 한들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 있다면 그건 바로 사랑일 거다. 태곳적 본능처럼 우리 안에 존재해 오며 인류와 그 여정을 함께해 온 사랑. 때때로 지독한 슬픔과 죽을 만큼의 고통을 안겨 주기도 하지만 우릴 살게 하는 원동력은 역시 사랑만 한 게 없다. 그 어떤 위험 속에서도 살아남게 도와준 신비한 힘이다. 그러므로 결국 인류는 또다시 기적처럼 일어설 것이다. 사랑은 바로 인간의 약점이자 동시에 강력한 무기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