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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 Apr 24. 2023

10개월의 끝이라 생각했는데, 평생의 시작이었다.

21년 10월 06일, 임신예정일에 만난 너

출산 예정일 40주 0일. 보통은 기준으로 잡는, 그저 참고할 뿐인 그 날짜에 너는 정확하게 세상에 나와주었다.

새벽 4시에 시작된 진통에 눈을 뜨고, 빨간 이슬에 남편을 깨워 아침 7시에 병원으로 가서 듣고 보기만 했던 그 모든 진통 과정을 드디어 직접 몸소 겪은 후 저녁 6시 40분 너는 무사히 나의 품에 안겨주었다.


나는 39주까지 사무실에 나갔다. 일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은 둘째 치고, 사실 뱃속의 아이를 지켜야 한다던가 만날 날만을 고대한다던가 하는 뜨거운 모성애도 내게는 없었다. 그냥 할 일이 그때까지 있었고, 나갈 수 있어서 나갔다.


내 품에 뜨겁게 안겼던 그때, 뜨겁고 말캉한 작은 존재의 체온이 내 체온과 맞닿았던 그때, 내 사랑은 시작되었다. 그게 나의 모성애의 시작점이었다. 출산한 고된 몸과는 상관없이 내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했다. 남편과 밤새 너의 이름을 지었다. (코로나로 함께 있지는 못했지만 카톡 메신저로 밤새 함께 고민했다.) 분별할 도, 새싹 아. 시작을 알아보는 아이가 되기를 라는 남편의 멋진 해석이 담긴 예쁜 이름, 도아.


도아야, 너의 태몽은 바다거북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마치 신혼여행지인 몰디브에서 보았던 그 넓고 맑은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렇게 물고기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내 옆에 많은 바다 거북이들이 있었다. 너무 예쁘다 생각하던 차에 가장 커다랗고 가장 하얗던 바다 거북이가 내 옆에 함께 해주었다. 바로 내 옆에 딱 붙어서 함께 헤엄쳐주던 그 하얀 거북이. 아직도 선명한 나의 바다거북이. 그게 너였나 보다.


도아야, 나는 나의 바다거북이가 되어준 네가 이 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그리고 당차게 헤엄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고, 너무 두려웠다. 나는 네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나는 천국이라 불리는 그 조리원에서 매일 밤마다 울며 잠이 들고 잠이 깼다.  내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 걸까, 이런 엄청난 부담감과 압박감에... 지금 생각하면 뭘 그렇게 까지 생각했을까 싶지만, 아마 출산우울증이 함께 온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꽤나 심각했던 날은, 사무실에서 화재가 나서 탈출하지 못하고 '우리 아기 이제 태어났는데 내가 지금 죽으면 우리 아기는 어떻게 하나' 하면서 엉엉 울며 죽어가는 꿈을 꾸기도 했다. 꿈에서 깨고서도 몇 시간을 오열했었다. 나에게 첫 모성애는 그렇게 뜨겁고 무겁게 다가왔다.


이런 무거운 마음을 덜어준 것은 역시 나의 남편, 너의 아빠였다. 도아야, 아빠는 매일같이 PCR검사를 하고 잠깐이라도 조리원에 와서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무조건 PCR검사를 하고 24시간 이내 음성 판정 메시지를 받아야만 입장이 가능했다.) 내가 마사지나 혹은 교육을 받으러 자리를 비운 시간에도 쉬고 있는 게 아니라 혼자라도 너를 데려와 시간을 보냈다. 그런 모습에 나는 혼자 너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낼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겠다고 안심할 수 있었다.      


입덧도 심했고, 참 여기저기 아팠던 임신 10개월을 지나 맞이한 나의 출산은.. 엔딩이 아니라 이토록이나 무겁고 위대한 시작이었다. 하지만 처음 느낀 그 사랑의 무게가 나는 너무나도 감사하고 벅차도록 기뻤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되었고, 나 자신에 대한 든든한 책임감이 되었다. 내 또 다른 생의 시작이었다. 도아야, 너에게 난 좋은 엄마가 돼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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