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엄마보다 좋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시터님을 만났다.
도아야, 엄마는 도움 없이 너를 키워보지 않았다. 언제나 큰 도움 속에서 너를 키웠다. 네가 태어나고 2주 동안은 조리원에 있었고, 2주 동안은 산후 도우미님이 와주셨으며, 그 후로는 바로 시터님이 오셨다.
그렇게 네가 태어나고 4주, 딱 한 달이 되었을 때 만난 시터님은. 어쩌면 너에게 엄마보다 좋은 양육자일지도 모르겠다. 도아야, 엄마아빠는 너가 뱃속에 있을 때, 시터님들을 스무 분 정도 만나보며 면접을 진행했었다. 너에게 정말 좋은 분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한 엄마아빠의 최소한의 노력이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지금 너의 시터님은 첫인상부터 아이를 정말 좋아하는 게 느껴지는 분이셨다. 손녀를 키워주시다가 어느 정도 손녀가 자라서 이제 집으로 오셨는데 헛헛함이 생기셔 시터라는 직업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시터님은 우리 집에 오셨고, 정말 말 그대로 너를 금이야 옥이야 잘 돌봐주셨다. 물론, 엄마인 나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으셨지만 너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엄마와 다르지 않았다. 도아야, 나는 좋은 시터님을 만난 것이 네가 건강하게 태어나 준 것 다음으로 내가 받은 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나는 혼란스러웠다. 시터님과의 애착이 잘 형성될수록 너에게 좋은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마음속으로 언제나 너와 시터님의 사이를 질투했다. 너가 나보다 시터님을 주양육자로 받아들이면 어쩌나 언제나 불안해했다. 정말 좁고도 좁은 마음이었다. 스스로도 그 좁은 마음이 얼마나 치졸한지를 알기에 표현하지 못하고 꽁꽁 숨겨놓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시터님이 집에 가신다고 너가 엉엉 울던 날, 엄마한테 안기지 않겠다고 이모~이모~ 부르며 시터님께 손을 뻗던 날,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너가 나를 아는 척도 안 하고 시터님과 노는데만 집중하던 날.. 그런 날들이면 내가 지금 사는 방식이 맞는 건지 내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너와 시터님의 사이를 질투하고 질투하곤 했다.
너가 커가면서, 그래, 모든 것은 너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내 질투하는 마음이 너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마음이라는 것이라고 나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마음이 들게 된 건 아무래도 시터님께서 보여주신 너에 대한 애정이 가장 컸다. 너의 발가락, 손가락 하나도 예쁘다며 웃으시던 표정, 너가 아팠던 주말. 안 오셔도 되는 날인데도 걱정된다며 병원과 집 앞에서 서성이시던 모습, 너의 성장 하나하나를 진심을 다해서 기뻐하시며 추억하시는 말투.. 그런 시터님의 정성 어린 깊은 마음에 나의 치졸한 질투는 힘을 잃고 스러지고 말았다.
그냥 어쩌면 내게도 시간이, 우리만의 모양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엄마인 나 말고도 너를 그만큼 사랑해 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이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안다.
시터님과 네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기쁘고 더없이 행복함을 느낀다. 그저 감사하고 감사드리는 시터님께서 오래오래 너의 곁에 있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