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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현 Feb 20. 2023

자유·권리라는 단어의 오용

매일노동뉴스 기고

폴란드에 가는 기차 안에서 글을 쓴다. 7시간 동안 기차를 달려 도착할 곳은 크라쿠프다. 바르샤바 이전엔 이곳이 폴란드 수도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소금 광산이 있고, 공산주의 시대에 건설된 계획 도시인 ‘노바후타(Nowa Huta)도 있다. 크라쿠프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엔 프랑스어로 오시비엥침이라고 불리는 작은 도시가 있다. 독일어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데, 아우슈비츠로 불린다. 독일 나치 시대의 강제수용소가 이 도시에 있다.



수용소 입구에는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나치가 선전을 위해 사용한 문구라는 것을 몰랐을 땐 ‘노동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말인가? 그런데 왜 명령어로 말하지? 국가나 사업가 같은, 일을 시킬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소리인가?’ 정도로 생각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말 정도로 생각했다.



나치가 이 문장을 사용하기 전에도 이 문장은 존재했다. 소설이나 교회 문헌들에서 문장을 찾을 수 있다. 주인의식을 가지도록, 노동을 성스러운 것으로 여기도록 하는 의미를 가진다. 예수님 말씀 중 하나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의 변형으로 생각하는 견해도 있다.



나치는 이 문장을 이용했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강제수용소에서 사용된 이 문장은, ‘열심히 일한다면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루어지지 않은 희망을 암시하는 느낌을 준다. 강제수용소 피해자 중 한 명은 이 문장을 두고 ‘자유는 화장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말한다.



현재 이 문장은 금기시된 표현이다. 이 문장을 사용해서 문제가 된 경우가 여러 차례 있다. 10년 전 독일 뮌헨의 한 라디오 진행자는 청취자들의 항의를 받아 해고됐다. 토요일에 일하는 청취자들에게 ‘일을 하면 자유로워진다’는 말을 했고, 사람들은 항의했다. 3년 전엔 폭스바겐 사장이 많은 항의를 받은 끝에, 사과했다. 회사의 이익과 주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자 ‘Ebit(‘이자와 세금 이전의 이익’을 뜻하며, 회사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다)는 당신을 자유롭게 합니다’는 말을 연설에서 여러 번 사용했다.



‘문장과 실제가 전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또 들었던 건, 미국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였다. 친구는 미국에서 일할 권리(Right to work)라는 말이 국가와 자본가에 의해 어떻게 오용되고 있는지를, 좋은 이름을 붙여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일할 권리 법은 노동조합 가입 의무를 금지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조합비를 납부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고용되게 해 준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일할 권리 법이 통과된 주들은 고용은 높지만, 저임금 일자리가 많으며, 급여의 평균이 하락하며,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경영진의 급여나 배당금은 일할 권리 법이 없는 주보다 높다. 연방 전체 차원을 봐도 노조 조직률과 단체교섭 적용률이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잠깐 한국에서 벗어나 있으니, 한국 소식에서도 살짝 떨어져 있다. 메일과 SNS를 통해 가끔 접하는 소식은 ‘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게 주 120시간 노동을 허용해야 한다’느니, 파업에 대해 ‘법을 위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엄단한다’느니 하는 소식들이다. 그것은 노동자를 위한 자유나 권리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에 사람들이 어떤 조건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무엇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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