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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현 Feb 20. 2023

독일의 한나들이 말하다 ‘이히 빈 한나’

매일노동뉴스 기고

대학원 공부를 위해 독일에 도착한 지난해 10월1일, 메일을 하나 받았다. 내가 다닐 학교에서 일하는 연구조교 등 임시직 직원들이 파업할 예정이며 연대를 요청한다는 소식이었다. 임시직 직원들의 지금보다 안정적인 고용을 위해 하루 경고파업과 일주일의 파업을 진행했다. 안내에 따르면 노동조합에 가입한 경우 임금 손실에 대한 파업수당을 지급한다.



현재는 주로 2명의 코디네이터가 내가 속한 석사과정 운영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수업과 관련한 안내, 특강 개설, 기숙사 신청, 비자 및 거주허가 도움, 은행 개설 도움, 인턴십 기관 배치, 코로나 지침 안내, 장학금 지급 등 수업부터 생활까지 전반에 걸쳐 지원한다. 각각 세미나와 보충수업도 맡는다. 석사과정 운영을 위한 중요한 업무일뿐더러 많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에 풀타임 정규직일 거라고, 아니더라도 최소한 풀타임으로 일할 거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시간제 임시직 계약을 맺었다.



파업 배경에는 #IchBinHanna(#이히 빈 한나)운동의 영향도 있었다. ‘이히 빈 한나’는 ‘나는 한나입니다’라는 뜻으로, 학생연구직원 등이 겪는 불안정한 고용을 이야기하는 해시태그 운동이다. 한나에 대한 이야기는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독일 연방교육연구부(BMBF)는 ‘한나’라는 가상의 박사학위 과정에 있는 연구직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홍보영상을 제작했다. 연구직원은 연구·수업·학생감독·수업조교·학생상담·행정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영상은 학술 기간제 계약법(WissZeitVG)을 다뤘는데, 이 법은 대학의 임시직 사용을 제한하자는 취지로 2007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박사과정 연구직원과 박사 후 연구직원을 기간제로 각각 최대 6년(의학은 6년·9년)간 고용할 수 있다.



영상은 해당 법은 혁신을 도모하고 젊은 세대에 기회를 준다고 설명한다. 학술 기간제 계약법을 통해 사람이 빠르게 교체되기 때문이다. 영상을 보는 연구직원에게 조언도 한다. 미래를 일찍 계획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직업도 가질 수 있다고. 이 영상은 지난해 여름 우연히 발견돼 이슈가 됐고, 현실 속 한나의 이야기를 담은 해시태그 항의가 이어졌다. 연방교육연구부는 해당 영상을 웹사이트에서 삭제했다.



현실은 영상에서 설명하는 긍정적인 모습과는 다르다. 동일한 부처에서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BuWiN)에 따르면, 45세 이하 연구직원의 92%가 임시직이다. 박사과정에 있는 연구직원의 평균 계약기간은 22개월(이는 평균 4년이 소요되는 박사과정 기간보다도 짧다.)이며, 박사과정 후 연구직원은 28개월이다. 연구 프로젝트의 기간과 계약기간이 다른 경우도 문제가 된다. 짧을뿐더러 연장 여부를 알 수 없는 계약기간은 불안정한 삶으로 이어진다. 외국인 신분으로 독일에 머무는 경우, 거주허가 문제가 가중돼 불안정성은 더 높아진다.



고용관계가 다양해지는 경향은 계속되고 있다. 1인 자영업자, 프리랜서처럼 근로기준법에 포함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동자인 경우의 권리 보호 문제도 심각하다.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수행하는 임금노동과 연구, 학업의 경계도 흐릿하다. 조교·연구원·강사 등을 조직 대상으로 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노동자성을 지속해서 이야기해 왔다. 이들의 활동 덕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개정돼 올해 1월1일부터는 학생 연구원의 산재보험 적용이 가능해졌다.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이 수행하는 연구개발과제에 참여하는 학생연구자는 근로자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겪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지난 11월에는 연구용역 인건비의 일부를 다시 반납하는 관행이 여전하다는 내용의 KBS 보도가 있었다. 근로기준법으로 보호받는 근로자였다면 이와 같은 행위는 강제 임금반납이라 비난받았을 것이다. 노동자 개념에 대한 더 넓은 확장과 이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한 권리 보호가 필요하다. 그것이 현재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방법이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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